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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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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간평가단의 마지막 책을 보고 늦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무언가의 마지막에는 후련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허투루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언제나 지나고보면 좀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작년 말 처음 알라딘 서재 문을 열자마자 신간 평가단을 발견하고 신청했던게 덜컥 되어버려서...한마디로 초짜가 리뷰를 하니 많은 답답함과 부족함을 느낍니다. 마지막 리뷰도 늦었습니다만, 부족하나마 좀더 고민을 하고 쓰고 싶었는데, 내공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 제 수준에서 해 볼 수 있는대로 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이 참으로 즐거웠던 것은 꼭 밝혀두고 싶네요. 글을 정말 못쓴다는 것은 제 스스로가 잘 아는 일입니다. 다만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꾸역꾸역 따라왔던 것 같네요. 리뷰를 써본 경험도 없는 저에게 신간 평가라는 기회를 주신 알라딘에도 감사를!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문 분야 책에서 어려운 책들을 많이 만났지만 또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좋은 책들입니다. 리뷰 과정에서 흠을 잡거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쓴 부분도 있을 텐데, 책을 만드는데 참여하신 분들이 혹시나 제 어줍짢은 평을 보고 언짢으셨을 분들이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평한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시간과 노고가 들어가는 일이라 한 마디의 말로 쉽게 평하려고 했던 제가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고 계시는 분들께 또한 고마움과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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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그람시가 남긴 자취에 내가 처음 접하게 계기는 그람시가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썼다는 한편의 이야기였다.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문장이 담겨있는  <생쥐와 >이라는 동화책이었다. 그람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몰랐지만, 감옥에서 썼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다소 싱거워보이기까지 동화책이 과연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건하고 무솔리니에 의해 감옥에 갖힌 지성인이 있었던 글인지 의심스럽고 더욱 궁금증이 생겼던 기억이 있다.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공산주의와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주의를 지지한 정치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어린시절 꼽추와 유사한 신체적 질병을 앓은 적이 있고, 그로 인하여 징집이 면제되었다고 한다. 한편 성인이 되어 토리노 대학에 입학, 언어학과 철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중퇴한 기록이 있다. 개인적인 신체적 장애, 크고 작은 병치레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설립자 명으로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불법 정당으로 지목된 이후 20년이 넘는 감옥형을 받았다고 하며, 남긴 기록은 <옥중수고>라는 제목으로 남아있다. 정도면 인간을 규정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사람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산문들은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을 넘어 행동으로 실천하려 했던 인간의 자취다. 물론 여러 주제에 따라 구분한 글들의 모임이고, 주제마다 대체로 시간 순에 따라 배열을 놓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관성이나 글의 유기성이 하나의 주제 아래 저술된 책에 비해 떨어진다. 여러 군데에서 언론 검열 대한 비판을 하는 것처럼 저자의 관심이나 사안에 따라 일부 중복된 내용이 나오는 것은 감안 하고 읽어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람시의 자체보다도, 책의 편집상 특징에 기인하는 특징이라고 봐야하겠다. 6개의 주제어 아래 주제마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글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사이의 유기성이 다소 떨어지는 점을 제외하고 그람시의 날카롭고 지성적인 면모는 산문 전반에 걸쳐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그람시가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1921)하기 , 1917-1920년에 대부분 씌여진 것으로, 공산주의에 경도된 이데올로기적인 주장보다는 기득권과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사회와 대중을 계몽하려는 의지, 그람시의 지성적인 면모를 보다 보여주고 있다. 그람시가 사회에 대해, 정치나 교육 등에 대해 파악하고 분석하는 대목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교육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 언론 검열제도 비판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그리고 지금도 크고 작은 전쟁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지구촌에서 전쟁에 반대한다는 그람시의 목소리는 우리가 더욱 귀기울여 듣고 생각해볼 있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100 혹은 150 전의 지성인(헨리 데이빗 소로, 프리드리히 니체 )들이 글들만 봐도 당대에 이들이 비판했던 문제점들이 여전히 문제점들로 남아있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나의 좁은 소견이지만 보편적인 삶의 조건, 삶의 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같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특권 계층은 언제나 존재했고, 나머지 계층과는 달리 분명한 대우와 경제적 혜택을 받아왔다. 그람시가 공무원을 비판하면서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하였다(142) 언급한 대목처럼 말이다. 공산주의자로서 그람시는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대목이 많이 보인다. 그람시가 자본주의의 투기적인 속성’(127) 꼬집어 내는 , 부르주아라는 특권 계급의 특권을 유지하고 누릴 있도록 만든 경제적 형태가 바로 자본주의다’(162)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있다. 예를 들어 2003 월마트의 풀타임 조합원 연봉(18000달라) 966배를 받은 월마트의 CEO 스콧의 사례를 들어볼 있다. 스콧은 기본급, 보너스, 스톡 옵션을 합하여 2003 1740 달라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사례는 아직까지는 극히 일부이며 극심한 격차를 보여주는 사례이긴 하지만, 과거 100 전에는 결코 없었던 일이다. 국내에서도 물론 정도의 격차는 아니지만 연봉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정부의 공식 발표자료를 통해서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결국 고용 불안정, 노동 인권 침해와 같이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에 관하여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목은 좀더 나의 피부에 닿는다. 특히 학력이라는 교육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대목을 보면 그람시가 우리 사회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대학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 응시자가 30 수준인데 비해, 이제 한국사회는 매년 박사인력만 1 3천명이 배출되는 사회에 접어들었다. 박사학위가 새로운 상품 항목 처럼 되어가고 있다. 인구가 남한 인구의 20 수준인 중국과 인도와 비슷한 ( 15만명 수준) 미국 유학생 수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높은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이만큼 성장시킨 원동력이기도 하겠으나, 그만큼 제대로 교육의 기회와 같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교육이 그만큼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상품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고등학교 교육마저도 제대로 많이 받지 못하던 시대에 그람시는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한 우려를 했던 것일까. 학위증서라는 것이 부적격인 이들에게도 자비롭게 수여되고, 공공의 공정한 삶을 망치는 상태로 이끄는 유용한 제도가 되어, 불투명하고  부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활용될 있기 때문이다. 또는 노동자들이 흘려 거둬들인 생산성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관료 계층만을 증가시킬지도 모른다.”(83)라고 그람시는 말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매개체는 권력 혹은 특권 계층을 양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서만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해준 글들이었다.

     자본주의 비판: 그람시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간에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으로 언제든 발발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데, 역사상의 모든 정쟁을 자본주의와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제국주의 시대에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19세기 중엽 이태리 관세동맹과 같은 일들은 제국주의의 연장선 혹은 대체물이 자유무역주의나아가 신자유주의 연속성을 갖고 현대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 1918 그람시가 글에서 자유무역주의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는 또한 이미 초기 형태의 신자유주의적인 개념이 적어도 이미 20세기 초에는 잉태되고 있다는 단서로 봐야하지 않을까. 다시 정리해보면 그람시는 전쟁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의 탐욕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저자는 분명히 어떠한 전쟁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 전쟁을 위해 무역보호정책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경영자들과 군수산업의 고용인들 그리고 공포 유포자들의 음로를 피하면서, 모든 가면을 벗겨내 진실을 알리고 전쟁을 피하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170)”라고 주장했다. 그람시의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주의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대중을 계몽하고 사회 변혁을 일으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열정도 고스란히 느낄 있다. 반면 (불공평하긴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그람시의 사상을 고려하면 비판할 만한 점도 많을 것이다. 사회의 문제점 내지는 현상을 과연 계급의 문제로서만 파악하고 평가할 있을까? 다른 설명 방식도 분명히 존재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우매하고 계몽해야한다고 보는 관점도, 현대 사회에서야 교육 기회의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그람시의 시대는 분명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전쟁과 자유에 대해: 1914년에 발발하여 1918 11월에 끝난 세계 1 대전은 4 군인만 1000 명이 사망하고, 2000 명이 넘는 군인들이 불구가 되거나 부상을 당했던 인류 역사상 인명 물적 피해가 어마어마한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승전국 나라였음에도 전후 보상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과 전쟁을 통해 경제가 부흥한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은 상당히 악화되어 가고 있었고, 시대적 상황하에 1922 10 무솔리니가 파쇼단을 이끌고 로마 행진 성공적으로 이끈 ,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는데 배경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있다. 김현우의 저서 <안토니오 그람시>에는 당시 무솔리니 세력의 영향력이 어떠한지 단서가 나와있다. 퇴역군인과 소상인, 소농의 자제들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파쇼단은 국가권력과 독점자본가 집단의 비호 아래 민중들과 사회주의 세력에 대해 무법적인 린치와 방화를 가했다. 1920 5월에 3 명에 지나지 않았던 파시스트 세력이 1922 10월에 이르러서는 30 명으로 성장했다.’ (30) 이와 관련하여 그람시는 전쟁은 모든 위선적이고 상징적인 추상성이 자연적으로 결합된 화학작용이며, 과정에서 모든 민족주의가 만들어진다.”(174)라고 대목은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염두해둔 하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파시스트 정부에 의한 언론의 검열은 당시 매우 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열에 대해 그람시가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검열제도를 운용한다는 것은 언론에서 중국인들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이탈리아인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삭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자유가 그들 체제에는 위협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각종 SNS 구들과 같은 종합 검색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책의 말미에 보면 하원에서 결사와 조합설립 관해 그람시와 무솔리니가 나눈 대화의 일부가 등장한다. 일부분이긴 하지만, 그람시를 공격하는 무솔리니와 여러 의원들의 근거가 희박한 논리에 비해 그람시의 지성이 더욱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 그람시는 무솔리니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결국 20 4개월 형을 받아 수감되게 된다. 그러던 널리 알려져 있는 <옥중수기> 남기고 11 째인 1937 사망하게 된다. 아마도 그람시는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는 공산주의 이론가는 아닐 같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혁명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키아벨리 읽고 있으며, 그람시는 <옥중수기>에서 수차례 마키아벨리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론의 답습을 넘어 그람시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있을까. 앞으로 그람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러한 방향을 좀더 염두해두고 고민하게 것같다.    

     그람시는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살아있는 사람은 삶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람시에게 무관심한 사람 자신의 삶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며 따라서 진심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증오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무관심을 증오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라!’라는 강렬한 메시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책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참여하라> 같은 호소의 100 버전이라 있다. 그람시는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무능함을 방치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주변 상황과 사회 부조리에 눈감은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50)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이 바로 우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선거를 해야한다고 떠들지만, 선거에 참여한 사람들도 선거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얼마나 것인가.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이라도 당선되면, 선거 운동 당시 걸었던 공약은 모두 잊는 모양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간답게 지켜내기 위해 시민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의 활동을 주목하고 견제해야만 한다. 우리가 다시 무관심 속에서 지내게 때가 바로 우리의 삶이 또다시 정치인 자본가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에서 그람시는 시민으로서 우리 각자가 정치적인 것을 그람시는 의도하고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 여기서 정치적인 이란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 나오듯, ‘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스스로 지킬 있는 으로서의 정치적인 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삶에 직접 관심을 갖고참여하라라는 것이 그람시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그람시의 외침은 우리가 진실로 살아있는 삶을 살기위해 각자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일깨우는 목소리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도시에는 이방인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시민일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무관심은 무기력이고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27면)

“나는 살아 있고 삶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32면)

[파업 투쟁에 참여해 패배한 피아트 노동자들에 대한 변론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무능함을 방치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주변 상황과 사회 부조리에 눈감은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50면)

[검열제도에 대해]

“검열제도를 운용한다는 것은 언론에서 중국인들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이탈리아인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삭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의 자유가 그들 체제에는 위협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119면)

[공무원을 비론한 관료에 대한 비판]

“더 중요한 사실은 공무원들이 국가 안에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점이다. 그 국가는 공무원들의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이고 무책임한 전횡을 통해 시민들을 억압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다.”(142면)

“이탈리아 민족의 통일에 대한 일상적 연대기를 시와 낭만적 서술로 다소 무리하게 꾸민다는 것은 아직 우리 역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150면)

→ 우리의 역사 서술은 현재 어떠한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전쟁을 반대한다`에서]

“부르주아라는 특권 계급의 특권을 유지하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든 경제적 형태가 바로 자본주의다.”(162면)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간에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으로 언제든 발발할 수밖에 없다.”

“경제 전쟁을 위해 무역보호정책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경영자들과 군수산업의 고용인들 그리고 공포 유포자들의 음모를 피하면서, 모든 가면을 벗겨내 진실을 알리고 전쟁을 피하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170면)

“전쟁은 모든 위선적이고 상징적인 추상성이 자연적으로 결합된 화학작용이며, 이 과정에서 모든 민족주의가 만들어진다.”(1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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