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 7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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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강연 독서 후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7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마르크스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19세기 자연주의 소설의 효시가 작가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에서 유럽 모더니티의 도시 파리에 거주하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있는 인구 이동의 양상은 농촌 지역의 인력이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시골에서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연인 랑티에와 파리로 상경한 여인이다. 랑티에는 바람을 피우고 제르베즈를 버린다. 아이들과 남게 제르베즈는 세탁부가 되어 열심히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지만, 도시는 홀로된 젊은 여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함석공 쿠포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을 하게된 제르베즈는 이웃집 청년 구제의 짝사랑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여기서 그만 얘기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현실이 흥미롭다. 에밀 졸라가 소설에서 묘사한 시대는 공장의 기계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정황을 담았다. 공장에는 거대한 기계 도입되어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기도 하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공장의 생산 과정에 기계가 도입되어 발생하는 노동자의 소외 현상을 소설에서 발견할 있다. 기계의 도입에 따른 노동자의 대량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이 기계의 출현에 위협을 느끼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펴볼 있는 것다. 소설의 어느 장면에서는 숙련공 구제가 기계와 경쟁을 벌여 승리하는 대목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승리 아니라 근소한 차이였다는 점이다. 잠깐 동안의 대결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있을지 모르지만, 피곤을 모르는 기계 앞에 언제나 월등한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 승리한 경쟁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승리였던 것이다.

 


상품 생산과정의 분업화로 달인 이들 숙련공들은 기계의 도입으로 해고당하면 무용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번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저자 고병권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가지 일에 익숙해진 숙련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나면 존재적 변형 경험하게 된다. 무기력하고 소외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편 소설 목로주점에서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우울증에 다름없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제르베르를 비롯한 주인공들은 돈을 버는 대로 모두 맛있는 음식과 술로 배를 채우며 삶을 소진하고 그렇게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회의 부품과도 같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도시 하층민의 삶은 자본가가 지배하는 삶의 양식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러한 도시 하층민의 일상과 이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세심하게 소설에 담아냈. 바로 시대상이 아마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주목하고 있는 현실과 부합할 같다.

 


 

자본가의 갈망과 절대적/상대적 잉여 가치에 대해

 

이번 일곱 도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동일 관련되어 있다. 노동일은 지난 6권을 떠올려보면, ‘하루 노동시간 의미하며, ‘필요노동시간’ + ‘잉여노동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노동일을 연장하여 많은 잉여수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 노동자에겐 물리적, 생물학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이상 일할 없으며,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휴식과 수면, 영양 섭취, 화장실 이용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활동으로 실제 노동일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욕망 추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자본가가 노동일(혹은 잉여노동)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얻으려는 노력은 곧바로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제약 조건 속에서 자본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잉여노동을 늘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있는 방법은 필요노동 시간을 줄여 잉여노동시간 분을 많이 확보하는 길이 있다. 여기서 필요노동시간을 줄인다는 말은 노동력의 가치 줄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경우는 여러 산업 부분에서 생산성 혁신 통해 동일한 노동시간에도 많은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면 노동시간을 강제로 늘려 얻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대신,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적인 필요노동 시간의 여분을 줄임으로써 추가적인 잉여분을 자본가가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잉여분의 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마르크스는 언급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생산력이 크게 증가해야한다는 전제다. 그래야 생활수단의 가치(: 노동자들의 생활 필수품 가격) 떨어지게 되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질 있다는 점이다.

 


개념의 구체적 사례로 마르크스는 특별잉여가치(혹은 추가잉여가치) 제시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특별잉여가치는 특정 기업의 노동생산력이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을 경우 해당 자본가가 추가로 얻는 잉여가치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가정하고 있는 자본가는 사업을 통해 사회에 이익이 되는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공익의 목적이란 없거나 2차적인 목적일 뿐이다. 자본가에겐 우선 이윤이 생겨야 계속 사업을 이어갈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란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합법적으로사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 하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에서 피터 싱어는 우리의 먹거리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더하여 기업의 윤리를 짧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월마트의 사례를 들고 있다. 2003 현재, 월마트의 CEO 리스콧의 연봉은 기본급 보너스, 스톡 옵션을 포함하여 1740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10년이 지났지만, 현재 환율로 계산해보면 200억이 넘는 연봉을 받은 것이다. 당시 월마트에서 일하는 풀타임 정규직 조합원의 연봉이 1 8천달러 수준이었다고 하니, 연봉 격차는 960배를 넘고 있다. 책의 1부와 2 끝에서 각각 언급하는 월마트의 사례를 통해 싱어는 월마트의 저렴한 상품 가격이 다른 누군가에게 비용을 전가한 결과일 있다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모습을 찾아 있다. 대기업에 부품 혹은 물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공급업자들은 대기업의 비용절감 전략의 대상이 된다. 월마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말하는 갑의 횡포는 월마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월마트는 노조를 배제했었고, 4 가족의 조합원이 연봉으로는 빈곤선 이하의 기준이었다. 2005 기록에서 월마트 종업원 자녀의 거의 절반이 건강보험에도 들어있지 않거나 국가 의료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이를 버지니아 유뱅크스의 저작 자동화된 불평등 소개된 현실을 떠올려보자면, 국가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 수혜 대상자에겐 사생활의 노출과 엄격한 규정의 준수를 강요 받는 상황으로 이들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피터 싱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월마트에서 음식을 먹는 일도 상당한 윤리적 문제 내포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강화된 노동과 착취의 진보, 그리고 거인 노동자의 탄생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 노동자의 노동일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특히 노동법이 제정되기 전의 19세기에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15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 출간한 1800년대 후반에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시간 정도 언급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는 8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좀더 줄은 셈이다. 이처럼 생물학적 존재로서 노동자들은 노동일을 연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신 자본가들은 노동의 강도를 높여 노동 생산력을 높이고자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나온다. 채플린은 연장을 들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나사를 조이며 작업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는 다른 생각을 틈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컨베이어 벨트의 속력이 빨라진다. 노동의 강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영화에선 개인 노동자로서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노동 생산력을 증가하는 상황을 보여주었지만,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일함으로써 추가 생산력을 발휘할 있다. 하나의 완성된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사람들을 투입하면 노동의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개별 노동자가 모여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데 거대한 노동자 되어 상품 생산에 추가적인 효율을 발휘하게 된다. 추가 생산력을 통해 추가적인 잉여를 만들어내지만, 추가 잉여가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책에서 여겨 보아야할 지점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바로 이런 지점들이 아닐까. 이번 책의 제목인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표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개별 노동자가 거대한  전체 노동자 일부로서 부품화되는 것이다. 업무의 세분화에 있어서 끝판왕은 소련식 테크노크라시의 사례일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렌 그레이엄은 자신의 저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교양 교육이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한다. 그레이엄 교수가 만난 소련 엔지니어 중에는 제지 공장용 베어링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같은(특정) 기계의 동력 파트나 다른 부품에는 세분화된 다른 학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보인다.

 

경공업 위원회는 기계 종류별로 압축기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전공을 만들었다. 중공업 위원회는 유성 페인트와 비유성 페인트를 다루는 엔지니어를 위한 별도 과정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 농업 위원회는 개별 농작물을 담당하는 농학자, 개별 동물을 다루는 수의사를 키워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다른 기록도 보인다.

 

소련 엔지니어링 교육에서 전공 분야가 급증했던 것은 전통 엔지니어링 분야를 끊임없이 세분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은 관련 전공 수십 개로 나뉘게 되어, 심지어 농기계, 공작기계, 주조 설비, 자동차, 트랙터, 비행기 엔진 세부 전공이 생겨났다. 금속공학에서는 구리와 합금을 다루는 전문가를 따로 양성했고, (…) 엔지니어링 파편화는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서양의 과학사가들이 평가하듯 소련의 지나치게 세분화한 전공 엔지니어 양성은 전체의 일부로서만 기능하는 인력을 양성했다. 중앙 정부에서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구성원들은 아무런 의문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자신이 맡은 업무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은 과도한 전체주의 혹은 독재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북클럽 자본7권의 중심 화두는 노동자들이 모여 협업을 하면서 도출되는 전체 노동자혹은 거인 노동자 존재가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모인 거인 노동자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수가 더해진 산술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무언가 놀라운 일들을 더하여 해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적인 인간은 사회적 인간’, 다시 말하면 인격이 축소된 평균적인 노동자로서 파악되는 인간으로 특정된다. 책의 후반에서는 매뉴팩처의 분업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개별 노동자는 전체 공정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앞의 일만을 전체 공정의 리듬에 맞춰 처리해내야 한다. 따라서 평생 가지 기능을 해내는 숙련노동자 탄생하게 되는 것이 매뉴팩처 분업 시기부터라고 한다. 이런 여건에 우리 몸이 맞추어져 신체의 변형이 일어나고 직업병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시기부터라고 있다. 개별 노동자는 거인 노동자의 일부로서 주어진 기능만을 담당할 , 여기에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가질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상황은 노동자들의 존재, 노동자들의 몸이 자본가의 부속물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특히 마르크스는 이런 양상이 노동생산력의 혁신으로 자본가는 추가 잉여를 얻게 된다는 점과 맞물려 있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바로 지점에 주목하고, 현상을 파악하는 모습이 바로 마르크스가 많은 후대사람들에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유가 것이다. 자본 썼던 마르크스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알게 되고, 동시에 놀라움도 더해간다. 사회 현상에 대한 명민한 관찰이 군데 저서에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만, 전반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현상 이면의 양상,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책을 통해 이렇게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담아 놓을 있었을까 놀라게 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파악해보지 않고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람은 단순히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만하다. 오늘날 자본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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