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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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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Marriage & Morals)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 이순희 옮김

 

 

 

결혼이란 것이 남의 같이 느껴지기만 했던 노총각이 결혼식 전날 읽는 <결혼과 도덕> 참으로 묘하게 다가온다. 앞을 펼치니 문명인들은 성적인 행위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19)라고 대목이 눈에 띈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책이 과연 1872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한 수학자/사상가/저술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책이 맞는지 다시 이름을 확인해본다. 게다가 책이 출판된 것은 1929년이라하니 거의 90 전에 씌여졌다. 책을 계속 읽어 나가다보면 러셀이 흔히 말하는 전복의 철학자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징병 반대 문건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거나, 이와 관련한 벌금 납부를 거부하여 대학 강의권마저 박탈당했으며, 전쟁을 반대하는 글을 써서 투옥까지 사람. 러셀은 흔히 말하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자신이 독자석으로 사유한 결과에 따른 신념을 평생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된지 15년도 넘은 지금, () 관련한 담론은 여전히 껄끄럽기 마련이다. 하물며 100년이 가까운 시간 전에 이렇게 도발적인 결환과 성에 관한 글을 러셀은 아마도 거센 비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니나다를까 책으로 그래도미국에서 개방적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뉴욕 소재 대학의 임용에 취소되었던 전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신념이라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이를 굳은 신념으로 지켜나가려는 자세는 무엇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그리고 러셀이라는 사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눈여겨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러셀이라는 인물은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영국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있다. 최상의 기득권층의 가문 출신이라는 말이다. 특히나 보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 귀족가문, 그리고 기독교 문화의 가운데에서 성장했음에도 이처럼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결혼과 성에 관련한 도발적인 책을 있었던 배경 내지는 환경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흔히 전복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니체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가져다준 영향이 컷던 것처럼, 러셀에게도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게 사건이 크게 영향을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부모, 기성세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되는 것도 부모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아울러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인상은 러셀이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교 자체라기보다 바울의 결혼관에 대한 언급처럼 신이 말한 교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된 교리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바울이 말한 결혼관이란, ‘결혼은 자손의 생산을 주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의 죄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결혼관을 말한다. 여기에 가족이나 자식에 대한 언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러셀의 말에 따르면 바울의 결혼관에는 생물학적 목적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란 오로지 간음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결혼관에는 당시 남자의 시각에서 나아가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수련해야하는 종교인에게 여성 어떻게 비추어졌는가를 있는 대목이다. 바울에게 여성이란 남성의 간음을 피할 있게 도와주는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인다. 흔히 성인 반열에 오른 기독교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양심에 따르고 자유로운 사고를 있었던 러셀의 입장에서 문헌에 근거하여 바라보는 종교인의 이중적인 모습에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역시나 니체와도 같이 러셀은 기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바울이 결혼을 오로지 간음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거나, 간통을 나쁘게 생각하는지 전혀 밝히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기도 한다. “( 바울의) 주장은 빵을 굽는 이유가 사람들이 케이크를 훔치는 것을 막는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흡사하다.” 신랄하면서도 무릅을 치게 만드는 재치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이러한 재치는 러셀의 특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보면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 출신의 지식인들, 특히 신과 종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리차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영향을 사람이 아니었을 추측해본다. 특히 도킨스나 히친스는 모두 영국 출신이며, 어려서 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로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무신론자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보다 영국이 많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지식인들이 만든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일종의 탈선으로 인하여 많은 비난의 화살을 감당해야하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이러한 소수자들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인물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종교에 대해 이렇게나 비판적이고 신랄함을 유지했던 러셀이 낭만적인 사랑 대해 매우 무게를 실어 주고 있는 점은 의외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점이라 있다. 러셀에 따르면 낭만적인 사랑이야말로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강렬한 기쁨의 원천’(71)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낭만적인 사랑에는 열정과 상상력, 그리고 배려심을 바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 관계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라고 가중치를 두고 있기에 상당히 흥미롭다.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보면 종교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망을 억제하는 도구를 만들고 사람들을 강제해왔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나 러셀이 말하고 있듯이 성에 무지한성인이 결혼할 경우, 이혼이 성행하고 행복한 결혼이 어려울 있다라고 하는 대목은 크게 동의하게 된다.  특히 대해 비정상적인 관념을 통한 죄의식 종교라는 제도를 통해 주입시키게 드러날 있는 재앙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사유하고 있다. 좀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러셀의 책에는 기독교에서 싫어할만한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다. 종교가 하나의 제도로서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므로  러셀은 인간의 해석을 거친 종교제도와 관습에 대해 의심하고 반문한다. 러셀이 바라보는 인간관은 아마도 완벽한 혹은 완벽한 악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모호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라는 것을 굳이 나눌 있다면, 요소가 혼재한 인간성이 그가 말하는 인간의 모습일 같다. 인간이란 존재의 욕망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억압하고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을 길들이고 관계를 맺어가는 일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점과 강점을 알고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와 같은 어떤 제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억합하기 시작하면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잘못된 성교육 혹은 관련 주제를 회피하고 은폐하는 경우가 이러한 위험성을 안고있다는 말이다. 러셀의 논리는 현대인들에게 상당부분 맞지 않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명 사회에서 인간이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잘못된 성교육 언급하고, “성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혹은 생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인간이 누릴 있는 기쁨’, ‘쾌락 금지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선견지명과도 같은 사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노총각의 결혼 전날 읽는 <결혼과 도덕> 흥미로움과 혼란스러움이 섞인 짦은 여정이었다. 크게 수긍을 하게 되는 논리와 노총각을 당황스럽게 만들만큼 앞서가는주장들, 독실한 종교인들이라면 불편해했을 종교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사실들로 인하여 흔히 이야기하는 결혼의 현실 견주어 보게 된다. 우리의 결혼문화에는 불합리한 점이란 없을까. 결혼이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이 계속 이어진다. 버트런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 읽으면서 어떤 지식이 아닌 배우게 점이 있다면, 바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힘이라고 있다. 인습적인 가치들에 대한 의문제기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바라볼 있을 가능하기 때문이다. 책은 90 전에 지식인이 주장한 새로운 견해들 대한 흥미로움과 기존의 가치관과 모순되어 보이는 내용들로 혼란스러웠던 여정이었다. 책에는 새롭고 튀는저자의 견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낭만적인 사랑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목에서와 같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읽을 있었다. 아울러 결혼식준비가 아닌 결혼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번쯤 결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61-62면 ) 과거 카톨릭 종교에 대한 비판의 근거
“교황 요한 23세는 근친상간과 간통 외에도 수많은 죄악을 범한 것 때문에 처벌을 받았고, (…) 성 아우구스틴은 1171년에 시행된 조사 과정에서 어느 한 마을에서 열 일곱 명의 사생아를 둔 것으로 밝혀졌으며, 스페인의 수도원장 성 펠라요는 1130년 정부를 무려 70여 명이나 두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리에주의 주교인 앙리 3세는 1274년 65명의 사생아를 둔 것 때문에 해임되었다. (…) 중세의 저작에는 사창가나 다름없는 수녀원과 수녀원 구내에서 자행되는 무수한 영아 살해와 성직자들의 고질적인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근친상간이 어찌나 성행했던지, 성직자는 어머니나 누이들과 동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엄격한 법력이 거듭해서 공표되었다.”

(71-72면)
“결혼은 부부가 반려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아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의 긴말한 구조의 일부를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낭만적인 사랑을 기초로 한 결혼은 바람직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적어두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고 결혼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친밀하고 다정하며 현실적인 사랑이다.”

(83면) 러셀의 재치가 담긴 신랄함/비판
“가장 먼저 교육을 통해서 미혼 여성들을 우둔하고 무지하며 미신에 의존하는 여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교육은 교화의 관리하에 있는 학교들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다. (…) 하지만 나는 권력 남용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경찰들과 의료진들을 거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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