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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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삶을 찾아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다!

아름다운 스토니브리지에서 치유의 힘과 삶의 희망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아름다운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을 그리며 한 편의 시를 쓴 적이 있다. 고달픈 현실을 뒤로 하고 고향 혹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떤 이상향의 세계로 돌아가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게 만드는 이 시는 먼 이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퍽 인상적인 시 중 하나였다. 아일랜드가 고난과 시련의 꽤 복잡한 역사를 지닌 섬이란 사실을 잊을 만큼. 어쩌면 이 땅의 자연이 간직한 평화와 낭만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넉넉한 힘을 지닌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메이브 빈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그 겨울의 일주일>에서도 이러한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와 따뜻한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누구나 돌아가고픈 고향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 아일랜드.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주일을 선물합니다,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스토니브리지. 여름엔 아들에게 천국 같은 곳으로,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연중 대부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고 쓸쓸한 편이지만 절벽 길을 따라 걸으며 모래밭이 펼쳐진 해안과 들쭉날쭉 솟은 검은 암벽면을 바라보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절경을 품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이곳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이별과 상처를 겪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소설이다. 성장을 하고 나면 누구나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을 꿈꾸듯, 편물공장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시골 농부와 결혼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새롭고 자유로운 선택의 길이 펼쳐져있는 도시로 나아가고픈 열망을 품는다. 치키, 눌라,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치키는 자유분방한 미국인 청년 월터 스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을 떠났지만 현실은 고달프고 이내 이별을 맞는다. 눌라 역시 드루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미혼모의 처지가 되어 더블린으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고 악착같이 벌어 키웠지만 아이는 자랄수록 사고뭉치에 그녀를 실망시키기만 한다. 울라는 똑똑하고 계산이 분명하여 더블린으로 가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해 커리어를 쌓고 있었지만, 상사의 불순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월터 스타를 따라오는 기회는 안 잡는 게 더 좋았을 거예요." 치키가 후회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너는 편물공장에서 승진을 했겠지. 미친 농부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을 테고, 그애들 직장을 찾아주려고 애를 써야 했을 거야. 나는 네 결정이 훌륭했다고 생각해. 너는 결단을 내리고 일자리를 달라고 나를 찾아왔어. 이십 년 동안 우리는 잘 지냈고, 그렇지? 네가 여기 뉴욕으로 온 건 잘한 일이었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그 근방에서 가장 큰 저택의 주인이 될 테고.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구나." / 36p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75p

 

 

   저마다 후회와 상처로 얼룩진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던 때, 치키는 고향 스토니브리지의 미스 시디의 권유로 그녀의 스톤 하우스를 매입해 호텔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듣는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바쁘고 복작거리는 환상의 세계에 불과했던 뉴욕에서의 생활을 접고 스토니브리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편 놀라는 사고만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친구인 치키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블린을 떠나 치키가 있는 스톤 하우스에 가게 된 리거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그곳에서 치키의 일을 도우며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치키의 조카인 올라 역시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스토니브리지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그럴 듯한 호텔로 만드는 데 일조하며 점차 이곳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달아났어." 치키가 말했다. "네 엄마도 달아났고, 나도 달아났지. 너도 달아났고. 언젠가는 멈춰야 해. 지금 멈추도록 하자." / 81p

 

"응, 여긴 생각하기에 좋은 장소야. 바닷가에 나가면 더 작아진 기분이 들거든. 내가 덜 중요해지는 것 같고. 그러면 모든 것이 알맞은 비율을 되찾게 되지." / 127p

 

 

 

   이렇듯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향인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호텔로 개조하는데 동참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며 평화로운 일상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 그 사이 호텔 스톤하우스는 치키를 중심으로 드디어 첫손님들을 맞게 된다. 전혀 친해 보이지 않는 예비 고부관계의 위니와 릴리언, 존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유명 배우 코리 살리나스, 의사 부부인 헨리와 니콜라, 회계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청년 안데르스,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되어 오게 되었지만 어딘지 못마땅해 보이는 월 부부, 은퇴한 교장으로 타인에게 친절과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넬 하우, 사랑의 상처를 떠안고 온 프리다까지.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이 스톤 하우스에 속속들이 모여든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역자는 이 소설이 마치 '고즈넉한 합창곡' 같다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음색, 다른 선율과 리듬이 합쳐져 불협화음마저 하나의 화음으로 융화해낸 합창곡처럼 소설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을 듣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마도 메이브 빈치는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거창한 계기보다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참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듯하다. 앞서 예이츠가 그러했듯, 메이브 빈치가 그러했듯 어쩌면 아일랜드라는 곳이 우리를 그렇게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안데르스, 제발 그만. 생각해봐. 내가 싫어하는 건 네가 아버지의 사업에 뛰어든다는 그 자체가 아니야. 네가 그 일을 싫어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는 사실이야. 하지만 너는 다른 건 해볼 생각도 하지 않잖아. 네가 결정할 문제지 그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야. 네 인생이지 그 사람들 인생이 아니야. 너는 네 인생에 대해 뭐든 할 수 있어." / 309p

 

 

 

 

 

  이 차가운 겨울, <그 겨울의 일주일>을 통해 복잡하고 아픈 상처들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치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한결같이 다정하고 넉넉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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