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에 빛나는 아름다운 성장소설!

이 사회에 진정한 공감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특별한 소년의 우정과 사랑!

 

 

 

   김영하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고통을 외면하고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지 않는 것,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죄악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소통하는 능력, 이른바 ‘공감’의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 때문에 교육 환경에 있어서도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 관계 및 공감을 기초로 한 양육에 보다 무게를 둔다.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감정의 교감이 결여된 채 자라난 아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느껴야 할 안정감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공감이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얼굴이나 몸짓에 떠오른 감정을 읽는 ‘뇌’의 주요 기능으로 인해 작동되는 것이라면? 그 기능에 문제가 있어 공감 불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가진 선천적 능력인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인가. 진위 여부를 떠나 양쪽 어느 쪽에 무게를 두든지 간에 공감 불능은 사회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 앞에서 하나의 장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 감정을 느끼고 읽는 뇌의 기능이 고장 난 탓에 ‘공감 능력 상실’,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살아야 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감정 표현 불능 장애 소년이 살아가는 법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19p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열여섯 살의 소년, 선윤재. 또래에 비해 겁이 없고 침착한 아이라고 포장하기에는 태어날 때부터 웃는 법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탓에 위험마저 느끼지 못해 늘 생명의 위협이 잇따른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질 못하니 사람이 맞아 죽는 걸 목격한 사건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딱히 지능 저하의 소견은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한쪽 능력이 떨어지면 다른 능력이 비대해져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거나 하는 등의 이상적인 소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러하듯이, 자식의 어느 한쪽에 장애를 보이는 경우 그저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 수 있기만을 바랐던 소년의 엄마는 매일같이 주입식 교육에 가까운 감정 학습을 시작한다.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야. 넌 할 수 있어.’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라는 한자를 커다랗게 종이에 인쇄해 가훈처럼, 혹은 부적처럼 집안 곳곳에 붙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식의 온전한 미래를 위해 몸부림치는 부모의 필사적인 마음이 느껴진다.

 

 

-할멈, 왜 사람들이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 12p

 

 

 

  언제나 윤재를 예쁜 괴물이라 부르며 아이를 세상의 속단에 휩쓸리지 않게 사랑으로 감싸준 할머니. 비록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가 보여주는 ‘사랑’조차 그저 학습하고 암기된 감정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존재하는 한 윤재는 감정의 결핍을 장애라고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어느 한 남자의 기괴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즐거울 것 없는 세상에서 미소를 띤 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살의를 느낄 정도로 세상을 증오한 남자,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자신의 비통한 삶을 위로받거나 공감 받지 못하고 살았던 것일까. 그의 잔혹한 칼부림에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때마침 사건에 휘말린 할머니와 엄마가 윤재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쓰러져간다. 그 사건을 지켜보던 자들 모두가, 죽은 할머니와 살아남았지만 깨어날 가능성이 없는 엄마 앞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윤재 역시 ‘이방인’이 되어야만 했다.

 

 

엄마와 할멈은 뭐가 그렇게 우스워서 깔깔댔던 걸까.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린 냉면집을 나와 어디로 향했을까.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 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 51p

 

 

 

 

곤이와 도라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병상에 누워있지만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에는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을 꾸려나간다. 다행히도 건물의 주인인 심 박사가 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집단생활에는 늘 희생양이 필요하듯 학교에서는 그의 처지가 마치 유명세처럼 퍼져 불편한 생활이 연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살 것’을 바랐던 엄마의 바람을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상처를 묵묵히 견뎌나간다. 아니,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에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데 편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부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얽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더 이상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머지않아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바로 곤이와 도라 앞에서.

 

 

-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 139p

 

 

   어느 날 윤재 앞에 찾아온 윤권호라는 교수는 자신의 잃어버린 친아들을 대신해 죽어가는 아내 앞에서 아들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곤이는 바로 그가 잃어버린 친아들로, 놀이동산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이후 여러 시설들을 전전하며 반항적이고 난폭한 아이로 자란 탓에 본의 아니게 대신 아들 역할을 한 윤재 앞에서 날을 세운다. 친아들이지만 사회적인 명성을 지닌 아버지 앞에서 자신은 한참 못나고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린 곤이는 지난 과거에 대한 원망을 풀 대상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윤재였다. 하지만 윤재는 공포도, 분노도, 슬픔도 느낄 수 없기에 곤이의 난폭함 앞에서도 무감각해보일 뿐이다. 감정에 너무 무딘 한 소년과 너무 약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센 척 하는 두 소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사를 통과하며 자라온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서서히 그들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한편, 달리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라는 윤재에게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해 준 소녀다. 몸이 더워지고 맥박이 팔딱거리며, 작은 벌레들이 몸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근질근질한 이상한 기분. 윤재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평생, 절대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감정’이란 것을.

 

 

- 원래 이성에 대한 관심이 그런 거란다.

- 제가 그 앨 좋아하는 걸까요?

말을 맺자마자 아차 싶었다. 심 박사는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요.

-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 170p

 

 

 

자람, 그 무한한 가능성

 

 

   다시 자신이 자라온 어두운 환경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곤이를 붙잡기 위해 윤재는 무모한 곳으로 발을 들인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만큼 난타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곤이를 붙든다. 그는 할머니와 엄마를 죽인 남자의 살인극 앞에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던 사람들처럼,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공감 불능’을 앓고 있는 것은 소년 윤재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던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내 옆에서 깊은 시름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조차 나는 진심으로 공감한 적이 있긴 했던 걸까.

 

 

- (중략) 의사들은 라벨 붙이는 걸 좋아하지. 그래야 특이한 현상이나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거든. 그게 명확하고 유용할 때도 물론 많고.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 214p

 

 

   이렇듯 윤재는 곤이와 도라, 심 박사와 윤 교수를 만난 몇 개월의 시간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그에게 있어 감정을 느끼고 공감을 하는 것은 뇌의 ‘아몬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성장이 지닌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자라나는 중일 테니 말이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진정한 공감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모든 성장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전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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