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푸른도서관 56
천주하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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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눈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서현이와 선주 이야기에 푹 빠졌다. 암에 걸린 엄마를 병간호 하는 선주의 모습에서 어린시절 나의 모습을 엿보았던 탓에 안쓰럽고 대견한 마음에 애정이 갔다. 힘겨운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서현이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뉴스를 보다보면 성적, 집단따돌림, 가정문제 등으로 자살을 택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생활고에 대한 어려움으로 죽음을 택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삶과 죽음, 누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만 삶과 죽음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희망과 새로운 미래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삶은 때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큰 절망과 고통을 주곤 하지만, 삶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에 버금하는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너무도 쉽게 죽음을 택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눈썹>>은 삶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 첫날, 엄마의 눈을 벗어나자 교복 치마 주머니에게 손거울을 꺼내고, 필통에서 눈썹 그리는 펜을 꺼내 눈썹을 그리는 서현은 물티슈로 몇 번을 지우고 그린 뒤에야 선명하고 마음에 드는 눈썹을 그려냈다. 있는 듯 없는 듯 흐리멍덩한 눈썹을 하고 학교에 간다는 걸 서현은 용납할 수 없었다.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머리를 비춰 가발이 제자리에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서현은 마음이 놓인다.

서현은 연예인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눈썹에 흐트러진 옷매무새하며 귀결이 자국까지 있는 한눈에도 노는 애처럼 보이는 선주와 짝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에 선주 역시 복학한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후 친구들로부터 선주가 집단 패싸움으로 인해 필리핀으로 유학 갔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정확히 1년 4개월 만에 돌아온 학교에 아는 친구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서현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바다에 혼자 떨어진 종이배가 돼서 교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기분, 아니 교실 밑으로 가라앉는 종이배 같은 기분에 그동안 왜 학교를 그리워했는지 의문이 든다.

 

치료가 끝났을 때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면 희망찬 미래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제자리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났다.....오직 병을 이기는 것에만 매달렸더니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본문 88,89p)

 

서현은 오랜만에 친구 소영이와 지연이를 만나 들뜬 마음이었으나,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는 두 사이에서 이방인이 되어 이내 속상해진다. 그렇게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현은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소영이와 지연이는 선주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지만, 서현은 반 아이들의 시비를 막아서주고 병원에 가느라 듣지 못한 중요한 수업 내용을 정리해주기도 하고, 언니와의 다툼에 집을 나온 자신이 겪는 돌발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준 선주에게 마음이 끌린다.

과거에 머물고 있었던 서현은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힘겨워하게 되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선주가 암에 걸린 엄마를 병간호 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으로 인해 힘들었을 가족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이후 함께 병실에 있던 선아 언니의 죽음으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 보게 된다.

 

울기를 두려워 말라. 눈물은 마음의 아픔을 씻어 내는 약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 뜨기 바로 직전이래.

우리가 바로 그 어두운 시간에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는 해만 뜨겠지? (본문 120p)

 

서현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선주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있음이 독자는 충분히 그려낼 수 있었다. 흐리멍덩했던 눈썹이 어느 새 자라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통도 끝은 있게 마련이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기억이라는 게 지워지는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되살아난다. 그게 괴로웠건 행복했던 상관없이 말이다. 신기한 건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떠올라도 조금씩 그 아픔이 무뎌지고, 행복했던 기억은 생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것이다. (본문 160p)

 

텔레비전에서 암 소아병동의 어린이들을 본 적이 있다.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암과 싸우는 아이들과 달리 너무도 쉽게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힘들지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삶을 놓아버린 그들에게는 고통은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삶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자살강대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살아있다는 것은 곧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임을 너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절망과 고통에 자신의 삶을 통째로 맡겨버린다는 것은 너무 무의미하다.

 

<<눈썹>>은 자신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고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서현의 성장통이 그려져 있다. 서현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있지만 암에 걸린 엄마와 가족의 해체로 힘겨운 선주 역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그 절망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친구와 가족이었음을, 우리의 삶에서 가족과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절망과 고통 속에 나를 온전히 맡겨버리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자. 앞으로 내 삶에 펼쳐진 수많은 가능성들 속에 절망과 고통은 어쩌면 너무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황한 바람도 살다 보면 이루어지지 말라는 법 없지만, 한 가지 조건은 있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서 그 가능성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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