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대모험 - 2012 제6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9
이진 지음 / 비룡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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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과 아파트, 밤이면 낮보다 더 환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서울, 그 곳 어딘가에는 좁다란 골목 양쪽에 작은 상자 같은 집들이 서로 마주 보고 끝없이 늘어서 있는, 일명 어른들이 벌집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흑과 백처럼 서로 너무도 대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두 부류가 서울이라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무색한 자본주의의 서로 다른 모습이 좀 씁쓸해진다. 누군가는 삶을 위한 투쟁을 위해 싸워야하고, 누군가는 그들의 투쟁이 하찮기만 한 서울의 모습,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원더랜드는 우리 동네에서 2호선 전철을 타면 사십 분만에 갈 수 있는 곳에 생겨난다. 하지만 왜인지 미국보다 더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 집 한 채 값이 일 억이 넘는다는 강변의 아파트도, 동양에서 제일 거대한 샹들리에라는 것이 거꾸로 박혀 있다는 초호화 백화점도, 미국 사람들이 자고 같다는 초특급 호텔도, 원더랜드의 그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내가 사는 우리 동네 뒷골목과 같은 나라, 같은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가 없었기에. (본문 46p)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빈민들을 수용하라'는 옛날 대통령의 명령으로 한꺼번에 지어진 벌집은 공동으로 쓰는 수돗가와 변소에서 아침저녁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공부 좀 못하고 쌈박질 좀 하는 중학교 3학년인 승협에게는 심장 벽에 바늘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한 구멍이 뚫린 채도 태어난 선천성 심장병 환자인 동생 은경이가 있다. 동생 편만 드는 엄마 탓에 승협은 늘 동네북이 되고만다.

승협의 엄마 아빠는 언제나 투쟁 중이었다. 대학생 수만 명이 거리에 나와 데모한 끝에 대통령이 바뀌고, 올림픽도 열렸건만, 공장장들은 바뀌지 않았고 그런 탓에 부모님은 여러 공장을 뺑뺑이 돌 수 밖에 없었다. 방직 공장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부모님은 카 스테레오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투쟁중이다.

질 게 뻔한 싸움을 무엇을 위해서 하고 있는지, 그래서 승협은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한다.

 

승협은 오늘 동양 최고 테마파크 <원더랜드> 완공 초읽기라고 빨갛고 커다란 글씨로 쓰인 헤드라인을 보았다.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신비롭게 빛나는 마법의 성을 찍은 대형 컬러 사진은 승협의 정신을 쏙 빼놓았고, 반 아이들도 쉬는 시간마다 원더랜드 이야기만 했다. 풍성껌 천 개, 쭈쭈바 이백 개, 라면 백 개, 살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기도 버거운 원더랜드 자유 이용권 만원은 승협에게는 너무도 큰 돈이었다.

엄마는 오늘도 심장 재단에 편지를 보냈다. 수술만 하면 95퍼센트 이상의 확률도 깨끗이 나을 수 있지만, 수술비는 집을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털어도 나올 수 없는 금액이었기에, 어려운 심장병 환자 아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해 주는 단체에 엄마는 집안 형편이 얼마나 어렵고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를 구구절절하게 쓴 편지를 제출했다. 나랏돈 빼돌리려고 만든 어용 재단이라는 아빠와 딸내미 목숨 살리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엄마의 투쟁도 시작된 것이다. 승협은 이 모든 것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청룡 열차를 타고 은하철도 999처럼 빛의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골목 길에서, 남이 싼 똥 구린내를 맡으며 라면을 먹어야 하는 지옥 같은 단칸방에서 최대한 멀리. (본문 32p)

 

갈수록 없다고 생각할수록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승협은 부반장 집에서 인기 만화 잡지 <보물왕국>에 들어 있는 응모권을 보내 서른다섯 명만 추첨한다는 원더랜드 무표 초대권을 받게 된다. 대신 가고 싶다는 동생 편을 든 엄마 때문에 화가 난 승협은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한 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은경의 참고서를 버리게 되고, 은경의 발작으로 바늘방석이 앉은 심정으로 승협은 원더랜드에 가게 된다. 원더랜드에 초대된 35명의 아이들은 특별한 경기에 참가하게 되었고, 3등 안에 들면 선물을 받게 된다. 서로를 속이고, 피터지는 경쟁 속에서 1등을 한 승협은 선물이 현찰이 아닌 상품이라는 사실에 심장이 벌떡였다.

 

"돈은 없어요?

"엉? 돈이 왜 필요하냐고!"

"우리 동생 수술비가 필요하다고요!"

"그것 참......"

"여기에는 뭐든 다 있다면서요? 제가 원하는 건 돈이라고요, 돈. 상품 다 필요 없어요. 상품으로 동생 수술시키게요?" (본문 218, 219p)

 

그렇게 승협은 텔레비전도, 제주도 여행권도 아닌 은경의 참고서를 대신 할 백과사전을 택한다. 은경이 꼭 사달라고 했던 풍선과 함께. 지독한 열대야였던 그날, 승협은 꿈과 환상이라는 건 손이 닿지 않는 곳임을 깨닫는다.

 

"원더랜드는 어땠어?"

"별거 없어." (본문 229p)

 

30년 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화려한 불꽃놀이의 폭죽이 아닌 늘 불발탄이기만 한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꿈과 환상의 판타지 세상에 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승협이 욕망이란 별거 아님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벌집에서 사는 승협에서 아파트와 초호화 백화점이 들어선 도시는 꿈과 환상의 도시였으리라. 그러나 그 꿈과 환상의 도시에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또다른 투쟁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승협은 뜻밖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망가진 텔레비전을 두드려가며 보곤 했던 승협에게 1등 상품인 텔레비전은 필요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청룡 열차를 타고 도망치고 싶다는 막연하기만 했던 승협의 꿈은 아파트와 백화점이 즐비한 휘양찬란한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안에 있었음을 승협은 깨닫는다. 결국 꿈과 환상이라는 욕망이라는 것,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게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은 어떤가? 자본주의로 인한 계급사회로 여전히 우리의 삶은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에게 원더랜드처럼 보이는 미국은 현재 6명 중의 1명이 빈민층이라고 한다. 이렇듯 자본주의로 인한 병폐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서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서로를 속고 속이며 욕망을 쫓는 사람들, 그 욕망이 별거 아님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가보다.

개그프로에도 있지 않은가. "~머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지" 그렇게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원더랜드 대모험>>은 욕망이 아닌, 희망을 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청룡 열차 같은 욕망이 아닌, 현실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만들어가는 희망이 필요한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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