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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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다. 전쟁을 쉬고 있는 중이다. ing다. 그로 인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어져 있는 허리는 언제 접붙여 질지 기약도 없다. 대통령께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희대의 명문장을 말씀하셨지만 그 “대박”이 언제 날지는 부연해 주시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횡행하는 나라다. 참여정부 시절 국보법을 철폐하려고 했지만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집권당에서도 밀어붙이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북한, 종북, 빨갱이, 좌익 이라는 말이 주홍글씨처럼 찍혀 버리는 곳이다. 북한이라는 말이 붙으면 겁부터 집어먹는 곳이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오랜 세월 운동권 진영 중 일부는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설을 신봉했다. 그래서 현대 한국사의 거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고 일부 외국의 한국전쟁 전문가의 수정주의 같은 주장을 신봉했다. 휴전 후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구)소련, 중국(당시 중공), 미국의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한국전쟁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해제된 기밀보다 아직 해제되지 않은 기밀이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국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땅에서 벌어졌지만 국제전이었던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이 국제전의 당사국에 더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돈도 되지 않고 큰 성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연구에 뛰어드는 학자는 많지 않다. 그것도 러시아, 중국, 미국의 기록물에 접근하는 것에서부터 당시 각 국가의 군대 편제와 구조, 시대적 상황과 정치·경제·지리·문화적 차이까지 감안해야 하고, 번역을 해야 한다. 군사 기록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한 줄에서 맥락을 읽어야 하는 시각도 있어야 한다. 이 일을 누가 하나? 국가에서 발 벗고 나서서 연구비를 지원하고 국가 대 국가 간의 협력으로 개인 연구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든지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기억의 문제다.

 

 

 

“여당과 언론에서 과거사위원회들의 활동을 말할 때는 거의 부정 일변도였기 때문에 상당수 국민들은 오직 할 일 없이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조직, 운동권 실업자들 먹여 살리자고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조직 정도로 알고 있고, 시작도 끝도 성과도 한계도 알 수 없고 정치적 의도로 만든 구 민주 정권의 유물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p.9)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위원회가 여러모로 파행을 겪게 되었는데” (p.245)

 

 

한국의 역사 중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반민특위 실패>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는 실패했다. 반민특위 위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했거나 돈이 없었거나 반민족행위자가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공격으로 반민특위는 와해되었고 실패했다. 우리 힘으로 우리 민족과 국가, 국민을 배신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하지 못했다. 반민족행위를 했던 자, 그것에 영합했던 자, 그런 놈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자들로 인해 우리 손으로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게 일본에 영합했던 자들이 해방 후 들어선 미군정에 영합하고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다시 기득권을 잡았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은 그들의 안위를 보호하고 부와 명예와 힘을 안겨 줬다. 가진 재산을 다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고, 온 가족이 조선 땅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후손들은 해방 된 조국에서 끔찍한 삶을 이제까지 이어가고 있고, 기회주의자로 평생을 산 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자기 조상이 친일파로 정확하게 밝혀졌음에도 국가가 환수해 간 조상의 땅을 반환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민주정부 10년, 어린 나이였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두 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두 분이 대통령인 것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두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었다. 해방 후, 휴전 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지 못한 과오를 인정하고 일부 사죄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름만으로도 긴 여러 가지 ‘과거가위원회’가 만들어져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수십 년 전 실패한 반민특위가 비로소 21세기가 되어서야 부활 해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는 줄 알고 좋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돌아보니 그렇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에 관련된 책을 쓰고 직접 과거사위원회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드문 학자다. 그의 전작 「전쟁과 사회」를 읽으면서 ‘어? 한국에도 한국전쟁 전문가가 있네?’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책은 여러 권 나왔지만 학술적이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은 많지 않았다. 박명림교수와 서중석교수의 책은 일단 제목만으로도 갑갑하다. 책을 펼치면 더 답답하고. 김동춘의 책은 이전까지 한국전쟁에 관한 한 가장 저명한 책으로 생각되었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견줄 정도였다. 한국인의 눈에서 본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 특히 그 책에서는 한 챕터로 다루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김동춘의 일기? 내지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실패하고 유야무야 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취지, 과정과 한계를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책이다.

 

 

“제도적 청산보다는 인적 청산에 강조점을 두는 한국 사회의 그간의 관행은 극복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은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제도적 청산은 과거의 공권력 범죄를 가능케 했던 법·제도 등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도덕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대중들에게 가시화할 수 있는 인적 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p.203)

“진실화해위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법적으로 강력한 조사 권한이 확보되어야 하며, 자료를 소지한 행정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p.256)

 

세월호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제대로 활동 하지 못하고 있다. 몇 달 후면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은 지 1년이 되는데, 아무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십 년 전의 반민특위와 민주정부 시절의 각종 과거사위원회들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위원회의 활동에 제약이 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권한 자체에 있었다. 강력한 조사 권한조차 없었으니, 한국전쟁 때 쓰던 칼빈 소총을 들고 지금 전쟁이 일어난 곳에 뛰어든 것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정권을 바뀌었지만 군과 경찰의 논리는 변하지 않았고 각종 정보당국의 협조는 참여정부 말엽에 이르면서 노골적으로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강력한 조사 권한과 수사 권한까지 더해졌다면 뭘 해도 했겠지. 그래서 세월호 유족들이 그렇게 조사위원회의 조사권과 수사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양쪽 날개를 다 잃은 상태니 역사는 역시 반복되는 건가 보다.

일반 국민들과 유족들이 보는 관점의 차이도 컸다고 한다. 단순히 관련자 몇 명 처벌하고 국가가 배·보상을 하는 것이 마치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명예가 복권되며 그로 인해 수십 년 고통을 받아 온 유족들의 삶이 회복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괴리를 잘 이용하는 것이 또 수구기회주의기득권세력이다. “봐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지겹다고 한다. 뭘 더 얼마나 국가가 사과를 하고 돈을 줘야 하는 것이냐고!” 씨발.

 

 

사건 이후 목격자의 산 체험을 침묵시킨 문화적 폭력은 유대인 학살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했다.” (p.62)

“난생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하는 그들은 대단한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유족들의 말문이 트이게 하는 일” (p.112)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대다수의 죄목은 좌익, 간첩, 빨갱이 혹은 그들의 협력자였다는 것이다. 이거 말고는 다른 게 없다. 쌀 주고 밀가루 준다고 가입시킨 보도연맹이 대표적인 사례다. 너나 할 거 없이 가입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족쇄가 되어 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군용트럭에 싣고 와 야산이나 깊은 계곡에서 그대로 총살해 버렸다. 이승만의 하야와 4.19이후 거창의 유족들이 대표적으로 국가에 대한 항의를 하고 그들 나름대로 조직을 만들어 오랜 기간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쟤네 아빠, 빨갱이래. 그래서 죽었대.”라는 말이 들리면 마을을 떠나야 했다. 제대로 취직도 할 수 없고, 평생을 빨갱이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다. 혹시 출세해 번듯한 사회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본인의 가족사는 철저히 함구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죽은 듯이.

모두가 공범이다. 누군가 나서서 떠들어 주고, 식자들이 나서서 진실을 밝혀주고, 국가가 나서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하는 일은 정상적인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침묵의 문화적 폭력에 동조했다. 나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죽어지낸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조사 위원들에게는 고통이었지만(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조사 위원도 있었다고 한다) 유족들에게는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가족과 친지들도 쉬쉬 하던 문제를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억울함과 시원함.

 

 

“조사관이 그 분야를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의 학계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를 매일매일 뼈저리게 느꼈다.” (p.299)

“잘못된 역사를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고, 체험자들의 체험을 왜곡하고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p.47)

 

 

앞서 언급했듯이 제대로 된 조사권이 없던 위원회의 활동은 활발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듯이 결국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의의는 기록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유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전하고 교육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처럼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결과가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려 학교에서 교육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부분을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위원회 설립 이전 이런 문제들까지 고려했다면 이후 세대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객관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국전쟁, 특히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전쟁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상태다. 없어도 너무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에 의한 폭격을 주제로 한 연구로 유명해진 김태우의 책「폭격」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저자가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약 10만여 장을 수집·분석했고, 당대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와의 교차분석을 통해 전쟁기 유엔 측과 공산 측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했다. 그 책을 보면 전쟁 당시 미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 단위의 하급문서까지 세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한 학자의 노고를 그대로 느끼면서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런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 누가 하나? 한국전쟁 연구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우리 후손들의 목을 죄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어릴 적에 들었던 ‘골로 간다’라는 말에는 우리 현대사의 비밀이 담겨 있다.” (p.54)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골로 간다’라는 말.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쓴다. TV에서도 숱하게 쓰인다. 국군과 헌병, 아군인 미군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은 ‘골로 끌려갔다.’ 골에서 죽었다. 이 침묵의 공포는 답습된다. 실제로 마을에서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옆 동네, 옆 옆 동네, 옆 옆 옆 동네도 소문은 알았을 것이다. ‘거기 거기 00골에서 또 30명이 총살당했대’, ‘아이구 어쩌나~’ 부모와 아줌마, 아저씨가 하는 수군거림을 들었을 것이다. 00골. 그들에게 ‘골로 간다’라는 말은 가공할만한 폭력이다.

 

 

“권력은 확실히 조작과 망각과 은폐를 먹고 산다. 과거 국가폭력의 은폐는 오늘과 미래의 부정의와 권력 남용, 결국 대중들의 비인간화와 비참함의 씨앗이 된다.” (p.394)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질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다.” (p.434)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이란 바로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밀란 쿤데라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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