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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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씨와 함께 나온 방송에서 처음 본 김정운씨의 인상은 정말 별로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심술이 가득한 인상도, 파마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하무인. 자기가 모조리 옳다는 투로 말하는 방식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영남씨도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분야가 인문학 도서와 클래식 음악, 서양화, 동양화였는데, 그런 소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바로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 받은 고바야시 타끼지의 「게 공선」이 너무 재미있었다. 진행을 한 여자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와 주제였다 해도 나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김정운씨를 TV에서 보지 못했다.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인물이었던 터라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몇 년 만에 김정운씨를 만났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서로 목소리 높여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남는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p.161)

 

 

역시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알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 나온 김정운씨보다는 훨씬 나았다. 별로 싫지 않았다. 물론, 김정운씨가 쓴 책 한 권 읽고 당장 김정운씨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 그가 쓴 글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면이 많이 사그라진 것 같다. 오히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책에서 보였다면 나는 더 싫었을 것이다. 출판사에 책을 다시 보내줬을 것이다. ‘이 책 도저히 못 읽겠어요. 가져가세요.’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일견 선입견을 가지고 계속 김정운씨를 판단한 것이 아닌 가 싶었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가 내린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은 꽤 정확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소통의 문제는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제오늘일도 아니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더 골치 아픈 문제다. 나는 술을 마시는 식당에 갈 때마다 이것을 강하게 경험한다. 너무 시끄럽다. 특히 막창집, 삽겹살집 같은 곳. 가족단위로 식사를 위주로 하러 오는 식당은 덜하다. 오로지 술을 먹기 위해 가는 곳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아저씨들이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공공연하던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식당 안에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자욱한 고성방가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소 노래방이나 나이트가 시끄러워서 싫어하는 내게 이런 식당은 정말 최악이다. 굳이 듣기 싫어도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탓에 옆자리에서 펼쳐지는 질펀한 욕지거리와 하소연을 모조리 들어야 했다. 그런 고성방가의 대부분은 욕이다. 욕. 말끔하게 차려 입은 아저씨들이 어떻게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집에서, 직장에서, 출퇴근길에서 하지 못한 욕을 술과 함께, 담배 연기와 함께, 옆자리에서 자신의 고성방가를 참아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욕을 쏟아낸다. 정말 남은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사회 곳곳에, 사람 각자마다 공격성과 분노와 적개심이 넘쳐나는 것일까?

 

 

“왜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내 주된 관심이다.” (p.273)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이것이 궁금했다.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재미를 추구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삶의 화두로 가지고 있음에도 넘쳐나는 강의요청에 헬기까지 타고 다닌 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비판을 약간 가하기는 한다. 그런데,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처럼 잘 나가는 교수, 강연자들은 많은 돈을 받으면서 헬기를 타고 날아다녀 재미를 추구할 시간이 없을 테지만, 당장 다음 달 닥쳐 올 대출이자와 원금, 각종 세금과 공과금, 연말정산이라고 해봐야 토해내야 할 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는 김정운씨의 재미와는 많이 다른 것일 테다.

 

 

“맛있는 게 뭔지를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재미와 행복이 뭔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p.63)

“결국 나와 같은 철없는 중년들의 ‘김혜수의 가슴’에 대한 열광은 소통 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인 것이다.” (p.66)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하지만 누가 재미없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적당한 돈을 벌고, 적당한 집에 살면서, 적당한 정도로 쉬고, 적당한 정도의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소수다. 애면글면 노력하고 온갖 수를 다 써도 매달 살아내는 것에 힘겨운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어린 시절부터 큰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운씨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리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고 논물을 쓰고 임상을 거쳐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김정운씨가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는 중에 빈소에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라는 이름이 적힌 화환이 있었다.

 

 

 

 

큰고모가 다니는 교회가 서울의 광림교회인데, 김정석 담임목사의 동생이 유명한 김정운교수라는 것이었다. 뜨악!!!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해 넘긴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란다. 그러고 보면 책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인임에도 종북세력을 향해 비판을 하시는 정정함을 보인다는 잠깐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잠깐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다는 점이 언급되는 데, 갸웃했다. 광림교회 하면 한국의 대형 교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교회인데, ‘아주 잠깐 어린 시절 가난했었나 보다’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김선도 목사고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고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 휘말렸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저자인 김정운씨도 싫어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정당함도 없다. 최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p.69)

 

 

앞서 언급한 술집에서의 고성방가와 똑같은 맥락이다.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향한 가학성은 자폐증으로 치환된다. 심각한 일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니 취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줄담배를 피워낸 후가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현상은 분명 사회적 자폐증이다.

 

 

“충족되지 않는 감탄의 욕구는 욕구좌절이 된다. 욕구좌절은 심리학적으로 뒤집어져 분노가 된다. 적개심이 되고 공격성이 된다. 아,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주는 곳이 단 하나 있다. 룸살롱이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밤마다 끝없이 외친다.” (p.321)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

 

 

어머!! 오빠~! 멋있다. 대단하다~! 술도 잘 마신다~ 노래도 잘 하네~ 우와~

아저씨들이 어디서 이런 말을 듣나. 그나마 한국 중년 아저씨들의 욕구좌절에 의한 공격성과 적개심이 테러나 폭력적 일탈로 분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유흥업소의 아가씨들 때문일 것이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게 칭찬과 감탄을 듣기 위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고 결제를 한다.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 (p.325)

 

 

맞다. 감탄하려 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 선 나를 향해 아내가 칭찬을 하고 감탄을 하면, 단번에 사라진다. 현관의 도어록을 누르기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다 죽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가도 아내의 감탄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진다. 맞다. 생각해보니 나도 감탄을 갈구하고 감탄에 목말라하며 살고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들도 그렇다. 솔직하게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맞는 말이다.

나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만큼 아내에게 그렇게 했느냐 생각해 본다. 부족하다. 오늘 저녁 도어록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쏟아낼 감탄을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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