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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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 익현이는 조교 생활을 했었다. 군대 휴가 차 학교에 들러 익현이를 만났다. 학부때 전공에 관심이 없어 늘 다른 분야 책들만 들고 다니던 녀석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 전공을 그대로 살려 조교 생활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조교 생활이 너무 바쁘다며 투덜대는 녀석과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호출이 왔다. 지도교수라고 했다. 절반도 비우지 못한 밥을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지도교수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지도교수는 세미나에 가 있다고 했는데, 뭔가 중요한 서류를 빠뜨렸나 싶었다. 헐레벌떡 뛰어 나가며 익현이가 말했다.

“개 밥 주러 가야돼.”

1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도교수라는 사람의 전화 한통에 부리나케 뛰어나간 용건은 ‘개 밥’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익현이의 조교 생활은 가관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지도교수의 아파트 도우미였다. 밥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개밥을 주고, 아무튼 시키는 것은 모조리 순종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씩씩거리는 내게 익현이가 말했다.

“원래 그래.”

익현이는 대학원 졸업 후 군에 갔다. 전역 후 바로 취직했다. 취직 직후 다시 익현이를 만났다. 그가 취업한 곳은 지역에서는 유망한 중소기업이었다. 당시가 최악의 취업난이었는데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회사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냐는 물음에 익현이가 말했다.

“교수님이 소개시켜 줬어.”

전역 후 찾아 간 지도교수는 이력서를 만들어 오라고 했단다. 그리고 조만간 OO회사 인사팀에서 전화가 올 테니, 가보라고 했단다. 전화를 받고 찾아간 그 회사의 이사실에는 지도교수가 있었단다. 그 회사의 이사와 지도교수, 익현이가 점심 한 끼를 같이했단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익현이는 그 회사에 출근했다.

“개고생을 한 보답이 있다.”

라며 쓴웃음과 함께 쓴 소주를 들이키던 그 무렵의 어느 날 밤 술자리가 아련하게 기억 된다.

지금 익현이는 그 회사의 과장이 되었고,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

 


“류성문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저분이 어떤 분인가? 평생을 한국 문학을 위해 몸 바쳐 왔고 언제나 후학들에게 학문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온 분이었다. 어려운 제자들에겐 사비를 털어 학비와 책값을 보태주기까지 하던 분이었다.” (p.144)

 

김윤식은 그야 말로 산과 같은 분이다. 적어도 류성문과 같은 그의 후학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 문학의 값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그때에도 홀연히 찬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낸 어른이다. 후학과 제자들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로 인해 류성문은 문학비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문단에서, 교단에서, 출판계에서 이름을 알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류성문이 조교 한혜원과의 정사(情事)를 이어갈 수 있는 것 또한 어찌 보면 김윤식 덕이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해 준 사람이 김윤식이다. 그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익현이는 셈이 빠른 녀석이 아니다. 홀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뒷바라지 하셨다. 익현이 위로 누나만 셋이라 익현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학부 졸업 직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모두 미뤄두고 한 동안 농사일을 하고 여러 마리의 소를 키웠다. 그렇게 가업을 이어갈 줄로만 알았다. 오히려 익현이에게는 그게 더 잘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시 학교로 와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의 대학원 생활은 지도교수 도우미 생활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미련하다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항의하라고 들볶았지만 익현이는 참아 냈다. 그리고 보상을 받았다. 제대로 된 면접조차 생략한 채 지도교수의 얼굴만으로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지금도 익현이가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익현이의 인생에서 그 지도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만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주위에서 보기에 처절하고 불쌍해 보이던 조교 생활 덕택에 지금은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익현이를 제외하고도 그 교수를 거쳐 간 조교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모든 조교들이 익현이가 받은 만큼의 교수의 성심과 성의를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교수가 시키는 일만 잘 했다면 분명 적절한 보상은 주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사회정의 차원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익현이는, 다른 조교들은? 어쨌든 그렇게 최악, 최악이라 노래를 부르던 시기에 그 교수 덕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기이한 것은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을 일문학자들이나 한국의 국문학자들은 왜 단 한 번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p.128)

 

이인서는 김윤식이라는 이름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제 카르텔” (p.80)에 대항하려 한 것일까?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의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고 <말>지에 인터뷰가 실리면서 학계에서 난리가 났다. 언론계나 대중들은 관심이 없었는데, 학계는 뒤집어 졌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적어도 그 분야 학계에서는 김윤식이 임금이었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용안이었다. 젊은 학자의 순수한 비평적 태도였는지, 치기어린 용기였는지 이후에 전개된 이인서의 태도에서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지만 미처 소설적 맥락에서 담지 못한 정황을 놓칠까 싶어 실제 ‘이명원 사태’ 즈음한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기대와는 달리 딱히 책의 픽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소설의 형식을 취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추적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 중 유일하게 김윤식 교수만 실명으로 그리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반증이다. 여전히 김윤식 교수는 학계의 거두다.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읽고도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지적하지 않은 “사제 카르텔”은 그 형성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반복적인 탓에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익현이가 부당한 처우나 지시를 받는 것에 대해 그저 속 좋은 친구라서, 원래부터 착하고 심성이 고운 녀석이라서 찍 소리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원래 그렇게 다들 한다.”라는 쳐다볼 수조차 없이 솟구친 강력한 카르텔의 벽앞에 찍 소리조차 할 수 없도록 압도된 것이다. 그런 카르텔에 균열을 가한(카르텔을 깨부수기라도 한 것도 아닌) 이명원은 매장된다. 이명원을 제외한 다른 학계 인사들은 모종의 합의를 하고 다시 카르텔의 균열을 메운다.

 


“그렇더라도 박사가 학원까지 나가야 한단 말야?”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돼요. 이제 10만 명이 넘는데요. 쉽지 않아요.” (p.62)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되는(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학계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 찾아보면 주위에 그런 박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적채된 박사가 10만 명에 이른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이다. 그래서 박사가 학원에까지 나가 강의를 해야 할 실정이다. 취업난은 교수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익현이는 분명 대학원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낼 것으로 확신이 든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전화 정도, 선물 정도는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교수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카르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교수를 거쳐 간 후학과 제자들은 시멘트를 덧대어 바르고 발라 카르텔을 지탱한다.

 


“그 책은 그래도 지적할 거리도 많지만 유치한 가운데서도 꽤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보이던데, 여성의 심리를 그렇듯 섬세히 그려 보이기도 쉽지 않구요. 아닌가요? 그런 점은 어떠셨는지요?”

“글쎄, 사실 나도 읽지를 못해서……. 그런 부분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작가 생각은 어때?”

“글쎄요, 저도 아직 읽질 못해서…….” (p.87)

 

한혜원도 이인서와 내 친구 익현과 다르지 않다. 류성문과의 잠자리가 어떤 감정의 발로인지, 순수한 사랑인지도 알 수 없다. 책에서는 그런 구차한 감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한혜원 또한 지도교수 부친상에 와서 음식을 나르고 일을 해야 한다. 류성문과의 섹스 뒤, 류성문에게 남겨진 섹스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시나리오를 디밀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한혜원은 가장 천박한 수를 써서라도 본인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평론가, 소설가, 교수랍시고 앉아서 문학이 어떻네 저떻네 떠드는 비평은 천박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달고 있는 명찰에 쓰여진 직책으로 가치가 평가 된다. 이것은 비단 문학계, 타 학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나 라인이 있다. 어느 라인이 동아줄인지, 썩은 줄인지 판단해야 한다. 무리지어 공격하고 수비한다. 입체적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들어 온 자원으로 판단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술자리 안주거리 삼아 뜯고 씻고 맛보고 삼킨다. 그러다 한혜원과 같은 진짜 속물을 만나면!! 깨갱~ 어흠~... 그게 말이야…….

 


“나는 이 현실이 비단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하위모순이다. 구조와 맞서 고립된 한 개인이 싸울 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희생양’의 딱지일 확률이 높다. 나 자신의 삶이 그것을 증거한다.” (p.223)

 

가수 이승환이 고(故)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가를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수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승환은 이미 친노종북 가수로 찍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계된 행사와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낙인이 찍혔다. 김제동, 윤도현 등 수많은 연예인, 문화·예술 인사들에게 피의 보복이 가해 졌다. 이것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개인의 싸움과는 다르지만 보복의 방식은 유사하다. 이인서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의혹을 제기하고 거듭된 교수 카르텔의 경고와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자살행위에 기꺼이 몸을 던진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인서와 이명원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어느 미친 대학원 조교가 단지 자신의 치기를 들이밀고 싶어 그런 무모한 짓을 하나? 말만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어느 정도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어차피 한 번의 기사에 큰 반향을 기대했던 것은 아냐. 다른 언론에서 전혀 받아쓰질 않는 게 아쉽지만, 김윤식 교수 쪽에선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게 감지되고 있어.” (p.179)

 

월간 <말>지의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이것을 보도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일견 예상된 일이었지만 참담할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표절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물 제비처럼 퍼져나가기 전에 차단되었다. 김윤식 이라는 봉우리를 떠받치는 산자락과 계곡과 산등성이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뉴스도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언론과 권력의 카르텔>은 이전 정권부터 이 구조를 고착화 해 왔다. 밀어붙여 통과시킨 후 만들어 낸 구조의 뿌리가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아 참담한 결과물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받아쓰지 않는 특종을 터트린 김진현 같은 기자는 업계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 표절건 혹시 들어본 적 없어?”

“글쎄? 그런 이야기가 있어? 김윤식 교수면 한국 문학계에서 대통령 같은 사람 아냐? 그 사람이 이룬 학문적 성과는 가히 추종을 불허하잖아. 오늘 신문에도 문화면 톱이더만. 저서가 백 권에 이르렀다며. 감히 범접하기 힘든 봉우리라고.” (p.45)

 

그래도 여전히 김진현 기자와 정세진 사장과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한쪽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인서의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 반드시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판사 사장 정세진은 책을 출간한다.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보도한다. 오늘자 신문 문화면 톱을 장식했지만 쉽게 잊혀진다. 대중이 가진 한계라 봐야 하나?

 

이인서는 책이 출간되고 특종이 보도된 후 갑자기 조교를 그만둔다. 그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이면의 근본 이유는 주지하는 바다.

책을 읽고 이인서의 실제 주인공 이명원씨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지, 그 일 이후 그가 부딪혔던 <카르텔>은 더 굳건해 졌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양의 문제다. 이인서와 이명원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발전한다.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각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암약하는 <카르텔>을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은 반복해서 균열을 만드는 것뿐이다.

내 친구 익현이와 같은 대학원생 조교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조교를 지원할 학생은 넘쳐 난다. 수요 공급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낳는 한국 사회가 더 악랄한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균열을 가하고 가해야 한다. 더불어 대중은 알아야 한다. 찾아서라도 알아야 한다. 우연히 포털 뉴스를 뒤지다가, SNS를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친 작은 사건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혹여 청소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3교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수백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도 도무지 합격 통보 전화가 오지 않는 청춘들의 모습 속에서, 대학과 성적의 서열로 인생 전체를 결정짓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아주 작은 균열을 발견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결국 김진현도 정세진도 책의 출간과 특종 보도를 통해 사회적 목표 달성은 물론 사적 욕망도 채우려 한 것이다. 그 욕망이 욕심이 되어도 상관없다. 자세나 체면은 고루한 껍데기다.

소설 속에 만난 인물들도, 익현이를 비롯한 내가 실제 만나는 인물들도 선악이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렵다. 명확한 악이 구분되면 하다못해 욕이라도 실컷 퍼부을 수 있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선과악의 명징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에둘러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할 것도 없다. 무의미한 일이니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현실에서 무시무시한 카르텔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 기대해보는 수밖에. 어려워 보인다고, 무의미해 보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처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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