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 손석춘 묻고 경제학자 유종일이 답하다 이슈북 6
유종일.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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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쉽게 되지는 않겠죠. 적어도 25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p.19)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를 제목으로 하는 책에서 하는 말이다. 경제민주화가 희망인데 적어도 25년쯤 걸리다니……. 그 동안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유종일씨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경제학자이다. 국가기관이나 연구소 재벌에서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왔고 지난 18대 대선에서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화두로 들고 나온 경제민주화를 주구장창 외쳐왔던 학자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잠시 경제정책을 세우는 데에도 일조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지난 재보궐 선거와 총선 때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공천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민주당은 그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야인으로 살고 있는 정치 후보생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동안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외쳐오고 정책을 만들기도 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적어도 25년 쯤 걸린다니 뭔 소린지 궁금할 것이다.

25년이 수치적으로 정확한 기간을 예상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경제민주화 자체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개발독재세력과 이에 맞선 반독재 민주세력 사이의 투쟁의 산물이었거든요, 정치제도가 승자독식 제도고요. 그러다 보니 사회 경제적 약자 등 다양한 집단의 관심과 이해를 반영하기 보다는 여야가 지역주의를 이용해서 기득권을 구축하고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정치의 틀이 되고 말았어요." (p.120∼121)

 

나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 속살을 이처럼 일목요연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작은 책을 읽고 나서 왜 87년 세대가 이번 대선에서 그런 투표를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평론가, 전문가들이 나와서 말을 쏟아냈지만 단 한명에게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작은 책에서 야인으로 살고 있는 유종일이라는 경제학자를 통해서 해답을 얻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 책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는 알마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이슈북]중 번호가 06이다. 몇 권이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알찬 내용임은 분명한 것 같다. 페이지는 두껍지 않지만 굵직하다.

유종일 교수의 말대로 결국 ‘그들만의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극도로 비이성적이고 주술적인 심리의 장(場)이 되어버리는 대선판에서 결국 이번에도 ‘그들만의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온갖 아양과 입마른 칭찬으로 애면글면 비위를 맞추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들만의 리그였다.’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이런 제도는 승자독식 제도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치라는 게 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권력싸움 위주의 정치가 된 거고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죠.” (p.20)

 

87년 이후 같은 형태와 구조로 한국의 정치는 이어져 왔다. 25년의 기간 동안 한국 정치가 발전했는지 정체했는지 후퇴했는지는 각자가 생각해 볼 몫이다. 분명한 것은 물리적 형태로 87년 체제가 여전히 유효하고 그것이 정치판 전체를 움직이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며 직선제와 소선거구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정치구조 혁신안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어차피 여당이든 야당이든 87년 체제 하에서 국회의원 뱃지 달고 들어온 사람들이기에 자신에게 뱃지를 달아준 체제와 구조를 혁신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던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유종일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의 정치는 승자가 모두 독식하는 구조다. [The winner takes it all - 이긴 자가 다 갖는다] [The loser standing small-진 자는 찌그러져 있을 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표를 던진 48%의 표심은 그냥 공중분해 되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표면적으로는 여당이 승리했다. 점유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득표수는 오히려 야당이 많았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폐해요 한계다.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정치적 민주화가 몇 년 사이 많이 후퇴한 것이 자명한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어떨지 더욱 걱정이 된다. 이대로 양당 구조로만 선거를 계속해서 치러야 하는 것인지, 진보 정당은 이미 엎어진 상태이고 아무리 좋은 후보가 나와도 양당 구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하다고 말한다.

 

경제민주화라는 것 또한 구조적인 문제가 선행되지 않는 한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조적인 문제.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이 “오늘부터 경제민주화를 할 테니 이렇게 이렇게 합시다!” 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민주화도 87년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자리 잡혀 있지 않는 마당이니 경제민주화의 전문가가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적어도 25년이 걸린다.”라고 한 말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양당에서 지지고 볶고 왔다갔다 권력 랠리가 계속 반복된다면 ‘어차피 선거 끝나면 말짱 꽝이야~~, 선거 때나 굽신거리면 돼~~, 어차피 나는 뱃지 달고 있는데 뭐’ 정치인들은 이런 생각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선거에서 졌지만 진 쪽을 지지한 48%의 표심을 받아들여 생산적이고 정책을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부자들 세금 더 내게 하고 비정규직 일자리 조금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구조적인 전환을 주장한다.


“아주 포괄적인 개념이고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자본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 넘어서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p.36)

 

자본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모든 것의 해결책이고 빨간약인 양 생각해 왔다. 아니, 그렇게 배워왔고 들어왔고 인식해 왔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하지 않으면 뭘 하자는 말이지?

유종일 교수는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이 되는 경제체제라고 말한다. 국가경제 자체가 자본이 주인이 되는 것.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주체가 국민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년 넘게 군림해 온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로 멘붕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본다. 더 잘 살고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

한국의 경제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전체 역사의 중요한 샘플일 것이다. 전형적으로 국가주도적 성장을 이데올로기로 삼고 재벌에게 무한한 특혜를 던져 공룡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공룡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판이다.

삼성! 삼성! 백날 욕을 해도 자식이 삼성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도 이러한 체제에서 형성된 것이리라.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는 곳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하지 말자고?

 


“제가 강조하는 참여경제 중에 노동자 경영참여, 구체적으로 저는 종업원 대표에게 이사 추천권을 주는 방안을 제시.” (p.57)

“구글, 종업원 소유주가 외부투자자보다 10배 많은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주식에 의결권 가중치는 부여. 고어텍스 종업원주식소유제에 의해서 종업원들이 주식의 과반수를 소유하고 있어. 뉴질랜드 세계 1위 유제품 수출업체 폰테라, 키위 수출업체 제스피리도 출자지분 100퍼센트를 농민이 갖고 있는 협동조합 기업. 이탈리아에서 제일 잘사는 지역인 볼로냐 시의 경우 협동조합 경제비중이 45퍼센트. 캐나다의 퀘벡 주 30퍼센트.” (p.53∼54)

 

실제로 유종일 교수의 주장대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의 소유를 오너 1인이 독식하지 않는 글로벌 기업이 많단다. 나는 몰랐다. 얘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고 뉴스에서는 애플 제품만 까고 그러니까 알 수가 없었다.

노동자 경영참여와 더불어 협동조합에 대한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생산자와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어 비슷한 정도의 가중치로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형태.

큰 기업이 아니면 잘 안 될 것처럼 지레 짐작하여 겁을 먹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신선하면서도 걱정되는 경제 형태이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도전하고 감행해보기 보다 이리저리 재보는 것을 먼저 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유종일 교수의 대안이 언제쯤 먹혀 들어갈지 솔직히 비관적이다.

더군다나 삼성의 서슬은 날이 갈수록 시퍼렇게 날 세워져 가는데 말이다.

 


“경제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p.131)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경제민주화는 결코 한판의 승부가 아니라고! 과정은 긴 호흡으로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판은 한 번에 엎어야 한다. 어차피 구조가 엎어지지 않는 한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외국의 경우도 단 한 번의 과정으로 경제민주화를 정착해 나간 경우는 없을 것이다. 준비하고 무엇보다 외국의 사례를 국민들이 좀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 또한 비관적이다. 현재 언론의 모양새가 엉망이니 말이다.

 


“고용안정성이 있으면 ‘덜 받더라도 일하겠다’고 할 거고, 고용안전성이 없으면 ‘더 줘야 일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죠. 그런데 우리 시장은 구조가 잘못 되어 있으니, 거꾸로 제도를 통해서 시장을 개혁해나가자는 겁니다.”

덴마크에서는 비정규직의 경우 급여와 휴가비, 복지비 등은 정규직과 똑같이 받고, 추가로 비정규직에게만 주는 15퍼센트 상당의 보상금과 주말과 국경일 휴가비 3.5퍼센트를 더 받게 되어 있습니다. (p.60)

 

덴마크에서 실제로 정책으로 실시되고 있는 비정규직 처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구구절절 옳은 정책이다. 고용안정성이 있으면 좀 덜 받더라도 일하고 고용안정성이 없으면 더 줘야 일한다는 생각.

그런데 이것도 한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워낙 칼바람 부는 곳이라서.

 

유종일 교수는 경제적 담론. 특히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단순히 선거철에 홍보용, 표심잡기용으로만 쓰이다 선거가 끝나면 바로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나 재벌의 경제연구소, 국가에서 운영하는 경제기관 등에서 말하는 경제지표와 전망 경제민주화에 대한 담론이 전부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진보적 경제연구기관을 설립하고자 한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어느 정도 일이 진행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잘 사는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나팔수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각종 세금이 오르고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뭐 산 것도 없는 것 같은데 4,5만원이 나오는 물가폭탄 속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 정말 피곤하고 괴롭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부르짖던 경제민주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만들고 의견을 수렴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유종일 교수 같은 사람들이 만든 경제기관이나 연구소에서 정확한 국가 경제 상태나 제대로 알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더 빠른 일인 듯싶기도 하다.

 

이젠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운영하는 시대가 하루속히 오기를 고대해 본다.

2138년에도 [경제민주화]는커녕 지금보다 더 팍팍해져 있는 사회라면 배명훈의 소설 「총통각하」에 등장하는 ‘동면하는 남편’처럼 차라리 나도 동면이나 해버릴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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