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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꼭꼭 씹어가면서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과자라서 나만 아는 곳에 숨겨두고 몰래 먹고 싶고, 조금씩 아껴가며 야금야금 먹고 싶은 과자처럼 그런 책이다. <멀고도 가까운>을 쓴 리베카 솔닛을 나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의 서평을 통해서 알았다.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서평만으로도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어쩌면 내 생각을 이렇게 시원하게 짚어주고 있는지 하며.
안타깝게도 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전미비평가 협회 상 최종 후보로 올랐다는 그녀의 최신작 <멀고도 가까운>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 책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때부터 시작해서 쓰게 된 '회고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회고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그저 '어떤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시작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의 집 마당에 있는 살구나무에서 따 온 산더미 같은 살구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로 간에 이해가 부족한 두 모녀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 <나니아 연대기>, <눈의 여왕> 등의 책 이야기에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이야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 저 멀리 아이슬란드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 경계 없이 뻗어나간다.
마치 <천일야화>에서 셰에라자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타래처럼 줄줄 풀어져 나오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또 다른 밤이 이어지도록 듣고 싶었다.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대하여'처럼 읽기에서 쓰기까지, 고독에서 연대까지를 이야기한다. 그녀가 말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리지만 나는 '나병 이야기'에서 뻗어 나온 '연대'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나병은 특정 박테리아 감염에서 생기는 병이다. 실제로 생각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치료도 되지만 치료가 끝난 후에도 환자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는다. 브랜드라는 학자는 그 이유가 '무감각'때문임을 밝혔다. 나병이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 고통 또한 느낄 수 없는 환자는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가 손, 발을 베이고도, 화상을 입고도 고통을 느낄 수 없으니 결국에는 그 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느낄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사회적 연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제목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말처럼 물리적인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감정이입을 통한 정신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이 연대다. 내전으로, 혹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의 국민들, 식량과 물 부족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 고국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살 만하게 만들 것이다.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p.157~158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p.160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