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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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암술 끝에 아끼는 금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는데 연필심이 뚝 부러졌다. 심이 너무 많이 드러나도록 연필을 깎아 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힘을 세게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부주의하지 않았고 경솔하지 않았는데 망가지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p.45)

소란은 무사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무사. 없을 무. 일 사. 일 없음. 아무 일이 없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새롭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고, 기대가 무너지는 날이 더 많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시 다음 날을 기대하면 되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나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소란은 그때 자신이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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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통이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다 소용없는 건 아닐 거라고•••. 고통을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거기 있고, 다만 거기 있음을 같이 안다고 말해주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고 위로를 전하는지도 몰랐다. (p.533)

좋은 일들만 있기를 기원해. 살면서 교훈 같은 거 안 얻어도 되니까. 좀 슬프잖아. 교훈이 슬픈 게 아니라 그걸 얻게 되는 과정이. 슬픔만한 한 거름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기왕 슬펐으니 거름 삼자고 위안하는 거고••• 처음부터 그냥 슬프지 않은 게 좋아.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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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지금까지 흔히 광대한 ‘바다‘로 비유되었다. 항해의 키잡이나 배가 ‘사전‘이고 ‘편찬자‘라고도 말해왔다. (...)
그러나 취재를 통해 내게 떠오른 ‘말‘의 이미지는 ‘모래‘였다. "말은 소리도 없이 변한다." 말은 항상 변화한다고 겐보 선생은 말했다.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바람에 의해 표면에 생기는 모양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문.
겐보 선생은 계속해서 변하는 ‘사막‘의 경치를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필사적으로 캔버스에 모사하려고 스케치를 되풀이하는 화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림붓을 휘두르지만 사막의 경치는 순식간에 모습을 바꿔간다. 그래도 계속 그린다. 화가는 어느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그래도 사막의 경치를 쫓아간다. 발버둥칠수록 모래에 빠져드는 ‘개미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줄도 모르고.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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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배적 논리에 익숙해서 그 논리가 계속 틀리더라도 흔들리지 않지만,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비판하고 조롱한다. 새로운 시도에는 언제나 시행착오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의 실수를 자신이 옳다는 증거로 삼는다. 논리는 힘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자기 의견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지배 논리에 의존하고 열광하기까지 한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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