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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실제로 제겐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질투심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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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신문에서 자신의 비참을 드러내어도 좋다고 허락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의 거대한 비참과 불의에 저항하는 기적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쓴 글들은 모두 그들에 대한 존경과 감탄에서 나온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p.27)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촘촘하게 고통이 전가된다. 제 속도를 고집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욕먹기 십상이므로 사람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몰아붙인다. 더 이상 고통을 전가할 곳 없는 이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 스스로 몸을 던진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으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부질없다. 위로나 용서는 돈이 합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저가로 남의 인생을 망치고도 지체없이 시동을 건다. 산 사람은 달려야 한다. (p.44)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은 광장에서 미경 씨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라고 말했던 여성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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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p.42)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
‘이 책앤‘ 자람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마음을 담아 읽을 것이다. 그러니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책이다. 자람이 말이 완전히 맞다. (p.72)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칠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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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화된 혐오란 그날의 기분, 이유 없는 짜증, 그저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흥분과 화로 인해, 혐오의 이유가 즉각 제조되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시사한다. 일단 여러 군데 혐오를 저질러놓고선, 일관된 맥락이 있다며 그것을 취향처럼 인식하기. 그러곤 자신이 떳떳이 내세울 설득력으로 포장하기.
어쩌면 취향화된 혐오에서 일관된 취향이란 없다.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아집만 있을 뿐. (p.132)

누군가는 여전히 당신의 간절함을 손에 쥐고선 허황된 조언과 평가를 일삼는다. 하지만 당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절실함의 순도와 등급을 제멋대로 매기는 자들 앞에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자기 삶을 지켜내려고 묵묵히 버텨온 이들의 절실함과 그 품위를 비웃지 않는 품격. 당신은 놓지 않을 것이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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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이나 나나 근면 성실했지만 그건 자랑도 자부도 되지 못했다.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시간을 쪼개고 욕망을 유보하며 살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는데도 서른살의 겨울을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라했다.(p.19, <에트르>)

10년이란 세월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긴 시간이지만 뒤돌아보면 몇개의 장면만 기억나는 꿈과 같았다. (p.119, <뒷모습의 발견>)

죽음이 자신과는 거리가 멀고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동갑인 고객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고 어둠속에서 불을 켰을 때 죽음이 바로 거기, 좁고 네모난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술에 취한 미치광이들이 모는 차가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었으며, 주머니 안에 칼을 숨긴 싸이코패스들이 활보하는 거리에서 웃으며 걸어다닌 셈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아슬아슬하게 죽음에서 비껴났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이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보다 죽음이 그림자처럼 발끝에 따라붙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바닥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이 들 것처럼 피곤한데도 지난밤처럼 달게 잘 수 없었다.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던 삶은 완벽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p.140, <이후의 삶>)

책을 보려면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식탁에 나와 미등을 켜야 했다. 똑똑해지고 싶어서도 반항의 의미도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만 잘못 살아왔고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 속의 인물만이 현실의 나를 소리 없이 다독거렸다. 여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이게 나의 실패고 진짜 얼굴이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였다. (p.168, <변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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