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암술 끝에 아끼는 금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는데 연필심이 뚝 부러졌다. 심이 너무 많이 드러나도록 연필을 깎아 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힘을 세게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부주의하지 않았고 경솔하지 않았는데 망가지는 일들이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p.45)
소란은 무사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무사. 없을 무. 일 사. 일 없음. 아무 일이 없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새롭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고, 기대가 무너지는 날이 더 많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시 다음 날을 기대하면 되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나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소란은 그때 자신이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