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마이클 슈왈비 지음, 노정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이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어두운 검은색 바탕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는 이 책의 내용을 더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야바위 : 교묘한 속임수로 물주가 돈을 따는 노름의 하나.
이런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그렇다.
너무나 교묘해서 결코 속임수인줄도 모르고 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 11조이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겠지만, 과연 그렇다고 믿고도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믿지 않는 분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불평등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되고, 견고해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정착된 농경 생활은 다른 자원의 가치도 뒤바꿔놓았다.
토지, 농업용수, 가축, 노예 등의 값어치가 상승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토지, 물, 그 외 요소들을 빼앗기 위한 공격의 목적에서건, 자신들이 통제하고 있는 자원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목적에서건, 무기와 군사 기술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농경, 전쟁, 운송과 관련된 전문 지식 역시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심지어 철학적 지식과 종교적 지식의 값어치도 높아졌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지식은 흔히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철학, 종교적 지식이야말로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좋은 도구였다.
그렇기에 중세시대 이전에는 교육을 시키지 않으려 했고, 그 이후에 교육은 그들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현실 속의 모든 집단들은 반드시 하향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규정지어져 있다.
말하자면 누군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
누군가 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조직체이 근간에 깔려 있다.
...
이런 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권위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며 따르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규칙에 주의를 기울여라.
지시에 따를 것.
시키는 대로 해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란다.

바로 이러한 교육방식을 통해 배우고 자랐기에 지금의 불평등이 결코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규칙을 어기고,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사회를 발전시키고 안정화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칙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그 규칙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것들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야바위 게임>의 분석을 따라가 보면 '가장 근본적인' 것은 착취로 귀결된다.
...
그러므로 노동 착취는 본질적으로 문제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자원들, 결국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 그 자원들을 생산해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전부터 지금까지는 유효한 정의이다.
아직은 인간의 노동-육체적, 정신적-에 근간한 착취의 질과 양에 따라 부의 축적량이 달라진다.
'얼마나 더 열심히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많은 착취를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얼마나 가져가는가?'말고도 중요한 질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어떻게 가져가는가?'라는 질문 역시 던져야만 한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경제체제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특히 시스템 내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보다는 '어떻게'에서 더 많은 불평등이 야기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가 아니기에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력도 하지 않고 많은 소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떻게'에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를 더욱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숨기느냐에 따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마지막 문단에서 불평등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에 대한 논의보다, 어떻게 불평들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들, 어떤 사회적 동력들을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 불평등으로 인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문제를 진단하다보면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분명 어떤 독자들은 불평등이 유지되는 현상에 해법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임이 너무 견고하게 조작되어 있는 탓에 변화의 여지는 없다고 보일 수도 있다.
...
더구나 사회를 진단함으로써 우울한 결과가 나오는 것보다 나쁜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진단도 하지 않는 일이다.

불평등으로 인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고,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일 것이다.
바꾸고 싶다면 변화해야 한다.
아래의 글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몇년 전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주제로 다룬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큰 이슈가 되었다.
미국 대선에서는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한 버니 샌더스의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번의 이슈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그렇지 않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첫번째 요소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조그만 말뚝에 줄을 매어 놓고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한참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러지 못하는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서는 쉽게 벗어날 수 있음에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코끼리' 대신에 '나'를 넣어보자.
인정하기 싫겠지만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책을 봐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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