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대체 이 중세 중기의 건물들은 왜 이토록 멋스럽지 않고 요새처럼 답답할까? 그것은 당시의 사회 자체가 닫힌 구조‘ 였기 때문이다. 중세 중기의 서유럽 국가들은 이슬람이 지배했던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동유럽의 비잔틴 제국과도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교류를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다. 동서교역이 두절된 상태에서 낙후했던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물들은 더욱 거칠고둔중한 모습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의 자극 없이 오로지 교회 중심적으로 이루어진 예술 양식이 로마네스크였으니 그 예술 양식의 수준은 결코 높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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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예술 작품들, 특히 성경 필사본 등을 보면 제아무리 전문가라누가 이 필사본을 제작했는지 맞추기는 어렵다. 간혹 필사본의 세밀화(미처rminiature)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수도사도 있었으나 그런 작품에서도 필사본을 만든 예술가의 개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중세에는 아직 개인에대한 자각이 없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수도원에 있던 수도사들은 거의 귀 족 계급의 자제들이었으나 그들에게서도 예술가로서 지각, 나아가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찾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 분리된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세 시대의 경제 구조와도 연관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시장 경제를 통해 개인 또는 각 가정이 부를축적한다는 개념은 미처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물품은 각 수도원 내에서 또는 봉건 영주의 봉토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타인의 물건과 구별되는 나만의 물건을 만들어 스스로를 내세우려는욕망이 생길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중세 초기부터 중기까지를 지배했던 둔중한 교회 건물과 수도원들은 1000년경부터 큰 변화 없이 200년 이상 등은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을 고수했다. 중세 사회는 남다른 개성‘이나 변화를유도하기에는 너무도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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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왕조의 작은 르네상스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없었던 중세의 정치 상황, 즉 예술가들을 후원해있는 궁정이 없는 상황에서 예술이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때문에 5-7세기경 서유럽의 예술 수준은 극도로 낮아졌다. 그나마 예술이라 고 불릴 만한 활동은 주교좌 성당과 수도원에서 조금씩 눈에 띄는 정도였다.
수도원은 당시 젊은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거의 유일한 건축 활동 역시 교회 건축이었으므로 장인과 예술가들은 자연히 교회로 모여들었다. 당시만 해도 그림은 건축의 한 부분이었다. 그림은 페널이 아닌 프레스코(회칠한 벽이 마르기 전에 벽화를 그리는 기법)로 그려지는 백발이거나 모자이크였으며, 조각 역시 건축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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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화가들이 실력이나 재능이 부족해서 똑같은 그림을 그린 것은아니었다. 그들은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가 보아도 마리아나 예수임을 알 수 있도록 그릴 필요가 있었다. 그림이나 모자이크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감이나 생동감이 아니라 신앙심의 고취에있었다. 이 때문에 중세 시대의 화가들은 현실 속 장면을 엇비슷하게 그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림이 보여 주고자 하는 세계는 현실이 아닌 정신과 관념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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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만큼 단순한 시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500년부터 1500년까지라는 긴 시간을 중세, 나의 시기로 묶어놓는 것일까? 그것은 이 시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 나의 정신적인니 해도 중세원동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신앙‘ 이다.
뭐는 교회를 중심으로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삶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그 속에서 벌어진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1천 년의 긴 시간은중세‘ 라는 한 시기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기독교 신앙이 중세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자리를 차지하며 예술의 사회적 기능도 함께 바뀌었다. 예술의 미적 가치를중시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과는 달리 중세 예술은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변했다. 이처럼 중세의 예술관은 고대의 예술관과 그 방향이 완전히달랐다.
이러 중세 정신의 경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그림이다. 증세의 그림들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설명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림을 통해 성경 장면을 이해시키는 것, 이것이 ,
‘중세 미술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이이 우이하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중세 미술은 극도로 단순화되었고 몰개성적이며, 어떤 그림을 보아도 다 똑같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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