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예술 작품들, 특히 성경 필사본 등을 보면 제아무리 전문가라누가 이 필사본을 제작했는지 맞추기는 어렵다. 간혹 필사본의 세밀화(미처rminiature)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수도사도 있었으나 그런 작품에서도 필사본을 만든 예술가의 개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중세에는 아직 개인에대한 자각이 없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수도원에 있던 수도사들은 거의 귀 족 계급의 자제들이었으나 그들에게서도 예술가로서 지각, 나아가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찾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 분리된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세 시대의 경제 구조와도 연관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시장 경제를 통해 개인 또는 각 가정이 부를축적한다는 개념은 미처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필요한 모든 물품은 각 수도원 내에서 또는 봉건 영주의 봉토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타인의 물건과 구별되는 나만의 물건을 만들어 스스로를 내세우려는욕망이 생길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중세 초기부터 중기까지를 지배했던 둔중한 교회 건물과 수도원들은 1000년경부터 큰 변화 없이 200년 이상 등은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을 고수했다. 중세 사회는 남다른 개성‘이나 변화를유도하기에는 너무도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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