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미술관 1
랄프 이자우 지음, 안상임 옮김 / 비룡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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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입맛에 맞는 것만 먹고 익숙한 곳에만 들르는 것처럼 안이한 내 독서편식을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현재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의 풍미를 더해줄 거라는 아쉬움이 더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랄프 이자우의 『거짓의 미술관』이 그랬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미하엘 엔데의 뒤를 잇는 독일환상문학 작가라는 이유로 『거짓의 미술관』을 골라 들었지만 미술 작품들에 대한 지식과 진화를 둘러싼 과학과 종교와 사상의 첨예한 대립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갖고 있었더라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컸다.  

<르네 마그리트 '경솔한 수면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가 예술품 도난사건의 중심에 있다. 물론 ‘경솔한 수면자’라는 작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아보는 수고를 해야 했다. 작품에 소개된 예술품들에 대한 사진 정도라도 실어주면 좋으련만 독자의 궁금증은 스스로 해결하라는 불친절한 책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헤르마프로디테’ 조각상이 폭파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유명 박물관의 미술품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파괴되거나 도난을 당하고, 감쪽같이 사라진 미술품이 있던 자리에는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에 등장하는 물건들이 놓인다. 거울, 붉은 이불, 황금사과, 비둘기, 양초, 리본, 모자가 그것이다. 예술품 도난의 시작인 ‘헤르마프로디테’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요정 살마키스와 한 몸이 된 모습을 뜻한다.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관을 둘 다 가진 동물이나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범인이 남긴 지문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감된 알렉스 다니엘스가 바로 완벽한 헤르마프로디테라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세계적인 미술품들의 보험사인 아트케어의 보험탐정인 다윈 쇼우는 이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용의자 알렉스 다니엘스를 심문하게 된다. 하지만 알렉스의 혐의가 벗겨지면서 풀려나게 되고 대립관계로 시작된 알렉스와 다윈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점차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는 파트너가 된다. 


미술품 도난사건 배후에는 수십 년 전 비밀리에 진행됐던 인간 유전자를 이용한 비윤리적인 실험의 의해 헤르마프로디테로 복제되어 고통스럽게 살아온 삶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테오’가 있고, 오만하고 무자비했던 실험을 영원히 봉인하려는 ‘경솔한 수면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효한 대전제’인 진화론의 오류에 대항한 창조론과 지적설계 이론의 불꽃 튀는 대립이 기저에 흐른다. 우리에겐 황우석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 인간 복제에 대한 윤리의식과 인간의 진화과정에 개입하려는 과학의 오만함이 충돌한다. 현생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는 성별 간의 전쟁도 없고,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이 빠르고 생식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스스로 번식할 수도 있는 완벽한 ‘진성 헤르마프로디테’여야 한다는 논리에 집착해서 비밀리에 유전자를 이용한 불법 인간 복제 실험을 했던 ‘인간 유전자 연구소(HUGE)’의 마지막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알렉스와 테오를 비롯한 열세 명의 헤르마프로디테 복제인간이다. 인간 유전자 연구 제한을 광범위하게 폐지하려는 법안이 투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과거에 자행된 불법적인 실험을 지워버리고 인간 유전자 연구를 선점하려는 음모가 깔려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결말 부분...인류의 아름다운 예술품들과 유전자실험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기형의 태아들이 담겨있는 유리병들이 한 공간에 전시된 테오의 기묘한 미술관은 상상만으로도 섬칫하다. 인간 유전자 연구가 활발한 현실에서 과학의 위치가 광기와 치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물론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이론들에 대한 지식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일반적으로 유효한 대전제’에 대한 맹신과 무지함을 경계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랄프 이자우가 말했던 ‘수준 높은 오락과 더불어 사고의 동인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소설의 1차적 과제는 성공적으로 수행한 셈이다. 언젠가 읽어보리라 리스트에만 잔뜩 담아놓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들을 비롯한 자연과학 책들과 미술 관련 책들을 읽어볼 계획이다. 이번만큼은 오랜만에 찾아온 지적 호기심을 내 게으름이 막아서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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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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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고조시키며 몰아가는 슬픔도 없고, 참았다 끝끝내 터진 눈물도 없다. 그러나 나는 버몬트 지방의 가난한 셰이커 교도 집안의 열두 살 소년의 일상을 따라가다가 스무 장도 채 남지 않은 책 후반부에서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에 이런 복병을 숨겨두고 있을 줄 몰랐다. 사과 수확을 앞둔 가을날, 그저 담담하게 지난 여름에 자벌레가 극성이라 사과 싹을 너무 많이 먹어버려서 올해 수확할 사과가 많지 않다는 얘기를 나누던 아버지와 열두 살 아들 로버트 사이의 대화에서 다음해 봄에는 제대로 자벌레를 퇴치하라고 일러주시던 아버지는 자신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한다. 그해 겨울은 가난한 로버트네 집에 지독한 시련이었다.

지난 봄, 자신의 옷을 놀리는 친구 때문에 학교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오던 로버트는 이웃집 태너 아저씨네 젖소 ‘행주치마’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출산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잔뜩 예민해진 ‘행주치마’는 도와주려는 로버트의 마음도 모른 채 반쯤 나온 아기 송아지와 로버트를 매달고 내달리지만 온 몸이 찢기고 ‘행주치마’에게 팔이 물린 상황에서도 아기 송아지와 ‘행주치마’의 목숨을 구한다. 로버트는 그 후로 일주일이나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다쳤지만 로버트 덕분에 ‘행주치마’와 두 마리의 송아지를 얻은 태너 아저씨는 로버트를 찾아와 예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일 년쯤 후면 새끼돼지를 열 마리쯤 달고 있게 될 암퇘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로버트는 이만큼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로버트는 새끼돼지 피기와 함께 들로 산으로 강으로 다니고 피기는 나날이 살이 오르고 식성이 좋아진다. 그리고 지독한 그해 겨울이 닥쳤다.

늙은 황소 솔로몬과 젖소 데이지, 달걀을 낳는 닭 몇 마리, 고양이 식구 몇 마리, 그리고 로버트의 새끼돼지 피기가 가축의 전부인 로버트네 집은 아버지가 읍내에서 돼지 도축일과 농사일로 아주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았고, 사슴사냥용 총이 없는 아버지는 겨울철 매일 이른 새벽에 사슴사냥에 나섰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빗속에 4시간이나 사슴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결국 기침이 심해져 폐가 안 좋아져 결국 어머니와 따로 침대를 써야할 상황이라 헛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상황까지 갔다. 말은 하지 않아도 로버트네 가족의 하나 남은 선택은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암퇘지로 판명된 피기를 잡는 방법 밖에 없었다. 돼지를 잡는 솜씨가 늘 최고인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와 다름없는 피기를 잡게 되고 로버트는 잠자코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 조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 로버트를 감싸며 말없이 위로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이듬 해 5월. 겨울을 넘기기 힘들 거라 말씀하셨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글을 몰라 투표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아버지는 아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농사일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야 해. 다른 사람의 돼지를 잡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모자를 벗어 들고 남에게 고기를 얻으려 해서도 안 된다.” (145쪽)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지만 늘 가난을 면치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열두 살 아들의 시선에는 애잔함이 묻어난다.

“아빠는 항상 일하세요. 쉴 줄을 모르세요. 더 큰 문제는 마음속에 너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뭔가를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항상 한 발 늦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는 시합을 하는 것 같아요.” (159쪽)

헛간에서 잠을 자던 아버지의 늦은 기상 아니,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깊은 잠... 로버트는 그 정적을 향해 내뱉는다.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그리고 아버지가 아침마다 하던 집안일을 다해놓고 어머니와 이모에게 읍내에 가서 장의사를 모셔오겠다며 담담하게 집을 나선다. 아주 어른스럽게 모든 일을 처리하고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알리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옷을 꺼내 입는다. 엄마가 오래전에 만들어준 양복은 작고 아빠의 양복은 너무 컸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러나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아직 5년이나 융자금을 더 갚아야 우리 땅이 되는 가난한 농부의 현실의 짐을 지기에는 너무나 어린 열세 살 로버트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모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로버트는 딱 한번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른다. 아버지의 양복바지와 작업구두 아버지의 셔츠를 입은 광대 같은 모습에 화가 나 “하느님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합니까? 사는 게 지옥 같아요.” 그리고 의젓하게 장례식을 마치고 늙은 이모와 엄마를 집안으로 모셔다 놓고 나머지 아버지가 하던 저녁 농장일 들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홀로 찾은 아버지의 무덤가.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바로 성실하고 근면했던 돼지 잡는 사람, 내 아버지 헤븐 팩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일찍 철이 든 이 아이가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기억들을 얹어서 책을 읽는다. 모든 책이 누구에게나 다 한 가지 맛일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기억에 따라 책은 밋밋할 수도 찌릿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내 슬픈 이별의 기억을 얹어 펑펑 눈물을 쏟으며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있다 하니 서둘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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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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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그 상실감은 몇날며칠 동안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울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차라리 요란스런 울음으로 이별을 했다면 그 슬픔과 상실감과 허무함과 무기력함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최근에서야 깨달은 내게 딥 워터 마을 산자락 낡고 녹슨 트레일러 집에 사는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의 조용한 그리움이 서럽도록 시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얘기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 명의 친척의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 낼 도리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오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의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 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53~54쪽)

 

아기였을 때 엄마를 잃은 서머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여섯 살에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됐다. 낡고 비좁은 트레일러 집이었지만 서머에게는 따스한 보금자리였다. 뚱뚱하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메이 아줌마와 삐쩍 마르고 관절염에 시달리는 오브 아저씨는 서머를 키우기에 늙은 부모였지만 서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이었다. 특히, 폭우로 불어난 물이 골짜기 마을을 덮쳤을 때 아홉 살 메이 아줌마를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어 딸을 살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메이 아줌마는 사람들을 잘 믿고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사랑만 가득한 통’같은 사람이었다.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고, 일찍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꼬마라는 사실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줬던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지난 8월에 밭을 가꾸다 돌아가셨다. 남겨진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는 메이 아줌마 없이 두 계절을 보냈지만 그 그리움과 슬픔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살아갈 의지를 잃어가는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 버릴까봐 서머는 두렵기까지 하다. 아저씨의 슬픔을 위로할 길을 찾지 않는다면 서머는 낡은 트레일러에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들과 남겨지게 될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 날 트레일러 집 마당에 클리터스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과 시시껄렁해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메고 다니는 클리터스는 서머의 학교 친구다. 희한하게도 이 괴짜 녀석은 오브 아저씨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클리터스는 아무 때나 불쑥 찾아와 아저씨와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곤 한다. 클리터스가 모은 괴상한 사진들도 감상하고 12시간 동안 꼬박 퍼즐을 맞추기도 하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 보였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머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치유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마음이 슬픔에 지칠 대로 지쳐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 나타났다고 하며 사후세계니 영혼과의 대화에 대한 오브 아저씨의 관심에 클리터스는 영혼과 대화하는 목사가 있는 심령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아온다. 오브 아저씨의 고물 자동차로 클리터스와 메이 오브 아저씨는 그 심령교회를 찾아가지만 목사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렇게라도 메이 아줌마를 만나고 싶었던 아저씨의 마지막 희망이 꺾이면서 무서운 절망감이 감돈다.

이 여행의 또 하나의 일정이었던 클리터스의 소원인 의사당 방문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의사당을 지나쳐 달리던 오브 아저씨의 자동차가 갑자기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것처럼 오브 아저씨는 절망의 순간에 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붙잡는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 머리 위로 스치듯 올빼미가 날아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올빼미가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었고 이제는 정말 영영 이별이라고 느낀 그 순간, 메이 아줌마가 떠난 두 계절 내내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정작 자신 안의 슬픔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서머의 울음이 터져 그칠 줄을 모른다. 메이 아줌마를 떠나 보내고 슬픔과 상실감과 아무 때나 불쑥거리며 찾아오는 그리움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이 진정으로 메이 아줌마를 자유롭게 떠나보낸 순간이었다.

신시아 라일런트는 절제된 감동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작가다. 문장은 현란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극도의 슬픔이나 기쁨 어느 감정도 넘치는 법 없이 담담하다. 그러나 어떤 글보다 크고 여운이 긴 감동을 준다. 이 작가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감동이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이어져 비슷한 감정선을 건드린다. 슬픔이 배어있는 애잔함 그러나 몹시도 따스함...이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것을 치유해 가는 과정의 열두 살 소녀의 두려움과 그리움을 만난다. 서머만큼 두려웠던 나의 열두 살도 떠올려 본다. 서머도 열두 살의 나도 아주 오랫동안 넉넉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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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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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72세의 은퇴한 도서 비평가 오거스트 브릴은 47세 된 딸과 23세 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 소니아는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위는 5년 전에 딸을 버리고 떠났고, 손녀의 남자 친구도 이라크에서 죽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딸 미리엄은 강의와 로즈 호손의 전기를 집필하는 일에 빠져 있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던 손녀 카티아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이라크에서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본 후 그 충격으로 학교도 휴학하고 집에서 영화감상에만 몰두하고 있고, 브릴은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소니아와의 기억 속으로 생각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집필, 영화감상, 이야기 만들기...세 명 모두 각자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마취제 혹은 자가 치료의 방법들을 하나씩 마련한 셈이다.

브릭은 브릴의 불면의 밤에 만들어낸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오언 브릭은 아내 플로라 곁에서 잠이 들었지만 엉뚱한 장소에서 눈을 뜬다. 9.11 테러도 이라크전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연방파와 반대파 사이의 내전에 휩싸인 또 다른 미국이다. 믿기 힘든 상황에서 이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임무가 브릭에게 주어진다.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오거스트 브릴을 암살하라는 지령이다. 이 자가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서 오언 브릭과 이 전쟁을 만들어 냈다는 설명이다. 황당한 상황에서 군인도 아닌 직업 마술사인 자신에게 이런 황당한 임무가 내려졌지만 브릭은 살인을 할 생각도 없고 단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명령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 달의 기한을 얻어 다시 아내가 있는 또 하나의 미국으로 돌아온 브릭은 이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지만 아내는 이 상황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웹사이트에서 암살지령과 일치하는 오거스트 브릴이라는 실존인물을 확인까지 한 상태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었던 브릭 앞에 다시 다른 세상의 존재들이 나타나 총구를 들이댄다. 낯선 사람을 죽일 수 없었던 브릭은 아내를 처가에 보내고 결국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전중인 다른 세상인 미국에서 온 첫사랑 버지니아는 브릴을 찾아가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얘기를 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브릴과의 약속이 잡혀있는 전날 밤, 쾅!! 연방파의 폭격으로 버지니아와 오언 브릭은 죽고 만다. 

<어둠 속의 남자> 이야기 구조의 기초는 16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사상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어쩌면 폴 오스터의 전 작품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야. 많은 현실이 있는 거야. 단 하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상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 세상과 반(反)세상, 세상과 그림자 세상. 각 세상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누군가가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각각의 세상은 마음의 창조물이라, 이 말씀이야. (96쪽)

희망이 있는 방향과 희망이 없는 방향을 놓고 이야기의 결말을 고심하던 브릴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브릭을 죽이면서 자신의 인생은 캄캄한 어둠을 벗어나 회색빛 희미한 희망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죽을 것이냐 이 괴상한 세상과 함께 굴러갈 것이냐를 고민하다 비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괴상한 세상이 굴러가는 동안 살아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고통스런 기억과 슬픔과 자기 비난의 상처만 가득한 이 집의 불면의 밤은 이제 서서히 치유되어 가고 있다. 키티아는 할아버지 곁에서 몇 시간째 귀한 잠을 자고 있고,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는 남편이 내뱉은 ‘끔찍한 사람’이란 말을 자신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인 것 마냥 상처로 끌어안고 살고 있는 미리엄은 로즈 호손의 전기를 끝냈다. 브릴은 오늘만은 함께 외출해서 거한 아침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다고 되뇌어 본다.     

폴 오스터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치는 항상 높다. 상대적 비교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오직 자신의 전작들이 비교 대상이 될 뿐인 그런 작가다. <달의 궁전>으로 그와의 첫 만남 이후로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래, 10년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혀서 어물쩍 넘어가는, 새삼스런 평가도 쑥스러울 정도로 스타일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작가와 독자 사이가 되겠다. 그런데 폴 오스터가 변.했.다. 그 조짐은 <브루클린 풍자극>에서부터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껏 발표했던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을 총출동시켜서 단순히 팬서비스 차원의 fan book이라고 생각했던 <기록실로의 여행>은 한 시대를 총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전환점을 삼으려는 계획된 의도였을까?

천권이 넘는 책을 쌓아두고 한권씩 읽어나가며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아서 연명해나가다 결국 아파트도 잃고 자발적으로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가는 <달의 궁전>의 포그, 유산으로 상속받은 거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남아있던 전 재산을 도박으로 잃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거대한 벽 쌓기 노동에 시달려야했던 <우연의 음악>의 짐 나쉬, 중력에 반하는 공중부양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견뎌야했던 <공중 곡예사>의 원더보이 월트. 하지만 <어둠 속의 남자>의 독특한 인물 브릭을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끈질기게 쫓아가 끝장을 봐야 하는 묘사와 서사의 치밀함은 환상과 실제의 혼동을 가져온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가 폴 오스터를 통하면 왠지 일어날 법하고 그럴듯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된다는 게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힘이다.

<브루클린 풍자극>의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이야기에 이은 <어둠 속의 남자>의 치유와 희망... 인간적이고 따스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폴 오스터 특유의 치열한 글쓰기에 살짝 김빠진 느낌도 든다. 난 반댈세~를 외치고 싶지만 난 아직도 폴 오스터의 소설에 배가 고프다. 다음 작품에서 확인해 볼 일이다. 지금 나는 지난여름에 출간된 폴 오스터의 신간 한글번역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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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1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조민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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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묵혀뒀던 이 책을 기억해낸 것은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를 읽는 중이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이 자신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작가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는 이 이야기와 자살을 원하는 주인공과 자살을 허락할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우나무노의 <안개> 사이에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였다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메타 픽션에 대한 충실한 예를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전형적’이라는 단어에 우나무노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장르의 형식에 대한 회의와 소설도 인간의 삶처럼 시간과 공간 속에 노출되어 유기체처럼 성장하고 변화해가야 한다는 우나무노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 <안개>가 아닐까 한다. 장르에 의해 구분지어지고 틀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 혁명가적 글쓰기를 펼쳐 보인 작품이다. 우선 스페인어로 소설을 의미하는 ‘노벨라(novela)라 불리기를 거부한 우나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니볼라(nivola)라고 명명한다. 우리말 번역자는 ‘소셜’이라 번역했다. 그 안에 작가 스스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허구적 인물과 실제 인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불멸과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꾀한다. 세르반테스나 세익스피어가 돈 키호테나 햄릿을 통해서 살아남듯이 말이다.


자, 그럼 ‘소설 구조를 혁명적으로 전복한 20세기 스페인 문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우나무노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혁명적인 글쓰기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책은 빅토르 고티라는 인지도 낮은 작가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이름 있는 작가가 그렇지 못한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쓰는 서문의 전례를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 읽다보면 이 빅토르 고티라는 인물이 <안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즉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에 뒤통수를 맞게 된다. 고티의 서문에 이어 능청스럽게 시침 뚝 떼고 우나무노의 서문이 이어진다. 고티의 의견으로 인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 고티의 목숨은 자신의 손 안에 있다며 조용히 으름장을 놓는다. 빅토르 고티의 실체를 앍고 보면 정말 살떨리는 협박인 셈이다.^^ 이 소셜의 에필로그는 아우구스토 페레스의 애완견이었던 오르페오가 맡았다. 보편적 소설의 끝부분에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소개하는 관례를 깨고 이 소셜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아우구스토 페레스를 제외한 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다고 공표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아우구스토의 순수한 사랑을 조롱한 두 남녀 에우헤니아와 마우리시오의 댓가를 치루는 결말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서문과 에필로그만을 두고는 ‘혁명적’이라는 단어에 미흡하다. 아우구스토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순수한 아우구스토의 사랑이야기는 지루하고 진부하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부모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직업적인 피아니스트로 일하는 에우헤니아를 스치듯 본 이후로 아우구스토는 사랑에 빠져서 그녀에게 한결같은 구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에우헤니아에게는 마우리시오라는 애인이 있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마우리시오는 결혼을 요구하며 취직하기를 바라는 에우헤니아에게 순간만을 모면하며 단지 붙어있을 뿐인 한심한 인간이다. 아우구스토는 빚 때문에 끔찍하게 싫어하는 피아노를 치는 에우헤니아에게 순수한 의도로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 집을 그녀에게 돌려주지만 아우구스토의 진심은 에우헤니아에게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백수 애인과 결별하고 아우구스토의 진심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아우구스토와의 결혼을 허락한 에우헤니아는 결국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한심한 마우리시오와 도주를 하며 아우구스토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실연의 아픔과 무엇보다 조롱당한 듯한 모멸감으로 괴로워하던 아우구스토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자살에 관해 인상적으로 다뤘던 우나무노 선생의 수필을 떠올리고 살라망카로 우나무노를 찾아온다. 야릇한 미소로 아우구스토를 맞이하는 우나무노는 자살을 실행하려는 문제를 상의하러 자신을 찾아온 아우구스토의 속내를 꿰뚫으며 아우구스토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들려준다. 아우구스토는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죽은 존재도 아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는 대답이다. 아우구스토는 우나무노의, 혹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환상의 산물일 뿐인 소셜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우구스토와 우나무노 사이의 설전이 오가고 오히려 허구의 실체인 아우구스토가 자신에게 허구의 존재를 부여한 우나무노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흥분한 우나무노는 아우구스토가 죽도록 결정하고 선고를 내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끔찍한 선고...다시 살기를 간청하는 아우구스토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우나무노...집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토는 우나무노의 선고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가이면서 14개 언어에 능통한 석학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한 우나무노의 철학적 사유가 이야기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거린다. 햄릿이 환생한 듯한 우유부단한 사색가 아우구스토에게 색깔을 입혀주는 데 아주 그럴 듯한 옷이 된다. 존재 의지와 불멸에 대한 갈망은 아우구스토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니까 허구의 실체인 나는 죽어야 하는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를 창조해 주신 우나무노 선생님, 당신도 역시 죽을 것입니다. 당신 역시도 원래 있었던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입니다. 신은 당신을 꿈꾸는 것을 중단할 것입니다.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네, 비록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죽을 거예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것입니다. 모두가, 모두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나와 같은 허구의 실체들! 나와 똑같이! 모두가, (292쪽)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내 생애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일 내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 산다면 단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허구적인 삶의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는 책 페이지에서 뛰쳐나와, 아니 나의 생애를 읽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서--지금 이 순간 내 생애를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의 --뛰쳐나와 영원한 영혼으로써 영원히 고통 받는 영혼으로써 내가 왜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왜? (294쪽)        

이 작품은 191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현재의 소설들에 비하면 파격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당시만 해도 ‘전복’이나 ‘혁명’이란 단어가 튀어나올 만큼 획기적인 선구자였을 법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메타픽션, 상호텍스트성, 하이퍼텍스트...뭐라 부르든지 간에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존 파울즈, 오르한 파묵, 밀란 쿤데라, 폴 오스터 등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자주 쓰이는 이 기법이 시대가 원하는 자연스런 변화였을지라도 우나무노에게 빚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아우구스토 페레스를 통해서 우나무노를 기억하는 것으로 일부의 빚을 탕감 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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