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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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그 상실감은 몇날며칠 동안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울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차라리 요란스런 울음으로 이별을 했다면 그 슬픔과 상실감과 허무함과 무기력함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최근에서야 깨달은 내게 딥 워터 마을 산자락 낡고 녹슨 트레일러 집에 사는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의 조용한 그리움이 서럽도록 시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얘기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 명의 친척의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 낼 도리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오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의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 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53~54쪽)

 

아기였을 때 엄마를 잃은 서머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여섯 살에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됐다. 낡고 비좁은 트레일러 집이었지만 서머에게는 따스한 보금자리였다. 뚱뚱하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메이 아줌마와 삐쩍 마르고 관절염에 시달리는 오브 아저씨는 서머를 키우기에 늙은 부모였지만 서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이었다. 특히, 폭우로 불어난 물이 골짜기 마을을 덮쳤을 때 아홉 살 메이 아줌마를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어 딸을 살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메이 아줌마는 사람들을 잘 믿고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사랑만 가득한 통’같은 사람이었다.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고, 일찍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꼬마라는 사실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줬던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지난 8월에 밭을 가꾸다 돌아가셨다. 남겨진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는 메이 아줌마 없이 두 계절을 보냈지만 그 그리움과 슬픔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살아갈 의지를 잃어가는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 버릴까봐 서머는 두렵기까지 하다. 아저씨의 슬픔을 위로할 길을 찾지 않는다면 서머는 낡은 트레일러에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들과 남겨지게 될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 날 트레일러 집 마당에 클리터스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과 시시껄렁해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메고 다니는 클리터스는 서머의 학교 친구다. 희한하게도 이 괴짜 녀석은 오브 아저씨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클리터스는 아무 때나 불쑥 찾아와 아저씨와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곤 한다. 클리터스가 모은 괴상한 사진들도 감상하고 12시간 동안 꼬박 퍼즐을 맞추기도 하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 보였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머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치유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마음이 슬픔에 지칠 대로 지쳐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 나타났다고 하며 사후세계니 영혼과의 대화에 대한 오브 아저씨의 관심에 클리터스는 영혼과 대화하는 목사가 있는 심령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아온다. 오브 아저씨의 고물 자동차로 클리터스와 메이 오브 아저씨는 그 심령교회를 찾아가지만 목사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렇게라도 메이 아줌마를 만나고 싶었던 아저씨의 마지막 희망이 꺾이면서 무서운 절망감이 감돈다.

이 여행의 또 하나의 일정이었던 클리터스의 소원인 의사당 방문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의사당을 지나쳐 달리던 오브 아저씨의 자동차가 갑자기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것처럼 오브 아저씨는 절망의 순간에 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붙잡는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 머리 위로 스치듯 올빼미가 날아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올빼미가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었고 이제는 정말 영영 이별이라고 느낀 그 순간, 메이 아줌마가 떠난 두 계절 내내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정작 자신 안의 슬픔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서머의 울음이 터져 그칠 줄을 모른다. 메이 아줌마를 떠나 보내고 슬픔과 상실감과 아무 때나 불쑥거리며 찾아오는 그리움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이 진정으로 메이 아줌마를 자유롭게 떠나보낸 순간이었다.

신시아 라일런트는 절제된 감동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작가다. 문장은 현란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극도의 슬픔이나 기쁨 어느 감정도 넘치는 법 없이 담담하다. 그러나 어떤 글보다 크고 여운이 긴 감동을 준다. 이 작가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감동이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이어져 비슷한 감정선을 건드린다. 슬픔이 배어있는 애잔함 그러나 몹시도 따스함...이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것을 치유해 가는 과정의 열두 살 소녀의 두려움과 그리움을 만난다. 서머만큼 두려웠던 나의 열두 살도 떠올려 본다. 서머도 열두 살의 나도 아주 오랫동안 넉넉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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