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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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시리즈의 시작이 되는 이 책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살살 풀어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느 곳에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미궁 속 같은 신화의 세계로 유혹하는 이야기로 테세우스에게 미궁에서 빠져 나올 방법을 알려주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로 문을 연 것이 꽤 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테세우스라는 영웅과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과 영웅에게 반해 조국을 배신하는 공주 아리아드네라는 신화 속 매력적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신한 미노스 왕에 대한 포세이돈의 음모로 인해 황소와 수간을 나누는 파시파에 왕비, 그렇게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라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괴물을 잡으려고 크레타로 잠입해 들어간 아들 테세우스를 기다리는 아테네 왕의 슬픈 결말, 연극과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파이드라까지 이 이야기가 뻗어낸 가지들은 어느 이야기보다 풍성하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유혹하고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의 짐받이를 필자가 뒤에서 잡아주겠으니 페달을 밟아보라고 재차 유혹하는 이윤기를 믿고 신화 속으로 힘차게 들어가 본다.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부제가 얘기해 주듯 12가지 테마로 묶어 신화의 세계로 쉽고 흥미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그림과 조각상들이 이야기에 생명을 입혀준다. 1권에서 소개하는 신화 이야기는 올림포스 산의 열두 으뜸 신들이 주축이 된 이야기들이라 비교적 잘 알려진 친숙한 이야기들이다. 카오스에서 세계가 만들어지고 티탄족과 전쟁을 거쳐 올림포스 신들이 알려진 바대로 제 위치를 찾게 되는 이야기, 아프로디테의 떠들썩한 애정행각, 에로스와 프쉬케의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운 사랑, 아폴론의 다프네를 향한 안타까운 짝사랑,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왕비가 된 사연,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생을 넘나든 애달픈 사랑... 한번쯤 들어봄직한 이야기들로 신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날려주고 호기심으로 끌어줄 만한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이야기에 보태서 신화 속 상징들에 대한 필자의 친절한 실타래는 앞서 만났던 지루하고 골치 아팠던 신화에 대한 기억을 싹 날려버린다.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같은 영웅의 모험담이 있고 에로스와 프쉬케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이야기처럼 운명적 사랑이 있는 매력적인 세계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비윤리적이도 비도덕적인 이야기는 없다. 근친상간은 보편적이고 인간과 동물과의 수간에 대한 묘사도 거침이 없다. 결혼의 서약은 일찌감치 내팽개쳐 버리고 한눈팔고 딴 짓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하다. 배신에 대한 복수는 끔찍하리만치 무시무시하다. 이렇듯 윤리의 개념과 논리의 잣대로 꿰맞출 수 없는 황당함이 묵인이 되는 것이 아마도 신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신화를 처음 읽던 시절의 내게 신화는 호기심의 창이었다. 서양의 문화와 예술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웅장하고 용감무쌍하고 황당하고 에로틱하기도 한 이야기들의 시원이 어디일까 궁금한 마음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그 시절에는 거부할 수 없이 운명적이고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신화를 처음 만난 시기가 그런 이야기에 매료될 나이이기도 했다.^^ 신화 속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의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읽어보는 것도 스스로에게 즐거운 신화 읽기가 될 것 같다. 물론 서양 문화와 예술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신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창으로 신화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다.  


꼭 십 년 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윤기의 유작인 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올해 안에 끝낼 생각에 1권부터 되짚어 본 것이다. 원래는 지난해의 계획이었는데 해를 넘기고도 막판까지 몰린 상황이 됐다. 게으름은 세밑에 확실하게 날려주고 새해를 맞이하고픈 바램에서 속도를 올리고 있다. 흑백 삽화 몇 장 곁들인 지루한 옛이야기를 듣는 듯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읽은 책 목록에 제목을 올려놓고 그저 자기만족만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 만났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심봉사 개안 후 밝고 환하고 선명해진 세상을 만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머리를 쥐어짜며 읽었던 기존 이야기에 작은 길 하나를 내준 것 같은 책이었다. 책은 십 년 전과 똑같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주워들은 지식들이 조금 붙어 깊이 읽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얘기에 새롭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필자는 1권에서 살짝 언급한 ‘아르곤 원정대’의 모험 이야기를 남겨두고 레테의 강을 건너가 버렸다. 그리스를 여행하다 리바디아 산기슭에서 망각의 샘물과 기억의 샘물이 만나 이룬 아름다운 시내를 만난 필자가 현지의 그리스인에게 이 시내의 이름을 물으니 ‘라이프(인생)’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십 년 만에 다시 읽은 책 한 권이 인생이라는 강물이 훑고 지나는 느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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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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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던 지난 11개월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굳은 위지로 달려들게 되는 12월의 시작, 그 육중한 몸매로 책장의 한자리를 제대로 차지하고 앉아서 언제쯤 눈길이 닿을까 기다리며 벌써부터 고서의 향기를 풍겨가는 책, 언제쯤 저것을 먹어치울 수 있을까 노려만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올해가 가기 전에 해치우기로 겁 없는 결심을 하며「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N.A. 바스베인스의 「젠틀 매드니스」등과 함께 애서가들에게 그 놀랄만한 몸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책 목록에 이 책도 빠지지 않는다.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의 「위험한 책」에 등장하는 바닷가의 책으로 만든 집의 한 부분을 벽돌보다 더 튼튼하게 지탱해주고도 남을 만한, 떨어지는 책에 맞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을 위험한 책의 위상을 보여주는 묵직한 책들 말이다. 이런 책들은 흔히 두 번의 희열을 선사한다. 우선 덩치 값을 하느라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는 가격의 벽을 넘어 우리 집 책장에 들여놓았을 때의 뿌듯함과 책장 앞을 오가며 노려보기를 계속하다가 작정하고 덤벼들어 마지막 장까지 말끔하게 먹어치웠을 때의 그 충만함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가지의 기쁨을 다 맛봤으니 이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를 작성해 보자. 하지만 친절한 안내서가 되리라고 장담은 할 수 없다. 이 방대한 양의 글을 쏟아낸 작가조차도 오류들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포기하노라 공개적인 발언을 했으니 내게 따져 묻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내 안내서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또 다른 ‘이동조사원’이 시정하는 작업을 계속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업그레이드 하길 바란다.

이 책은 우선 여섯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분권이 된 책들은 다섯 권인데 합본의 다섯 번째 이야기인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는 분권된 책 4권에 보너스 스토리로 실렸다 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은하계 곳곳을 여행하는데다 영국이나 노르웨이처럼 경험은 없지만 익숙한 지명도 아닌 생소한 행성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얻게 되는 깨달음에 기준하면 어느 곳을 어떻게 여행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책속으로 여행하고 싶은 히치하이커들을 위해서 간략한 정보만 요약해본다.

우선 중심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아서 덴트, 우회로 공사 때문에 집이 헐리는 순간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친구가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초공간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구가 20분 후에 파괴될 거라는 엄청난 소식을 접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목욕가운 차림으로 은하수를 여행하게 될 운명에 처한다. 포드 프리팩트,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의 개정판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 조사차 지구에 파견된 출판사 소속의 이동 조사원이다. 지구인 행세를 하며 지낸지 15년이 지났건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행성에 발이 묶여 지나가는 우주선을 만나 히치하이커를 해서 얻어 타고 떠나고 싶어 하는 참에 지구가 파괴될 순간에 가까스로 아서 덴트와 함께 탈출하게 된다. 자포드 비블브락스, 각각 독립적인 생각을 하는 두 개의 머리와 세 개의 팔을 가진 은하제국의 대통령이다. 은하계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혁명적인 우주선 ‘순수한 마음 호’를 탈취해 우주를 지배하는 진정한 지도자를 찾아 나선다. 다소 충동적이고 난폭하고 제멋대로지만 매력있는 캐릭터다. 트릴리언(트리시아 맥밀런), 아서 덴트가 마음에 들어 했지만 어느 날 가장무도회에서 다른 행성에서 온 자포드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그와 함께 우주로 떠난다. 지구가 파괴된 후 지구를 극적으로 탈출한 아서 덴트와 재회한다. 훗날 아서 덴트가 유전자은행에 기증한 정자를 이용해서 랜덤이라는 딸을 얻게 된다. 이 중심인물들 주변의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로봇 마빈, 행성 하나 크기 만한 뇌를 가진 고급 로봇임에도 레스토랑에서 주차원으로 일하고 우주선의 문을 열어주는 하찮은 일에 쓰이는 신세에 대해서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로봇이다. 시니컬한 철학자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마빈의 캐릭터가 더 멋지게 확장된 시리즈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계속 나왔을 테고 멋진 마빈을 그냥 그렇게 버려두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인물 소개만으로도 벌써 전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온 듯 힘이 든다. 이들이 시공간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여행하는 행성을 대표적으로 몇 군데 꼽아보자면 행성을 주문 제조하는  행성 마그라테아, 그곳에서 지구라는 행성의 노르웨이 피오르드 해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슬라티바트패스트라는 이름의 노인을 통해서 지구가 초지능적이고 범차원적인 존재들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슈퍼컴퓨터였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컴퓨터 말이다. 그리고 초지능적이고 범차원적인 존재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 밖에도 우주의 폭발장면을 보면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우주 끝 레스토랑 밀리웨이스, 전 우주를 파괴하려는 크리켓 행성, 선사시대의 지구, 파괴되기 전의 지구, 지구를 그리워하며 떠돌다 지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서 덴트가 정착해서 샌드위치의 명인으로 살던 행성 라무엘라, 우주의 진정한 지도자라 불리는 노인이 사는 오두막. 시간을 거스르고 앞서가며 우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이 기상천외하고 황당한 여행에 빠져들다 보면 차츰 내성이 생겨서 거대한 우주라는 개념이 시시껄렁해진다. 생쥐들이 주문 의뢰해서 만든 슈퍼컴퓨터 지구 안에서나 어느 행성 어느 시간대 속에서의 구성원들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으려면 우선 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의 구분에 너무 연연하여 기대치를 높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놀라운 과학적인 지식의 경이로움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SF소설, 코믹 풍자소설이 SF의 옷을 빌려 입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구가 폭발하기 전 아서 덴트의 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관료적 행정주의를 꼬집는 장면, 점성술의 점괘에 의거해 지구를 파괴해 버리고 마는 루퍼트 행성의 그레불론인,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바쁜 군상들을 보면서 전 우주를 희롱하는 더글러스 애덤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치밀한 구성과 논리와 개연성을 기대하지 마라.

앞의 이야기 속에 살짝 비친 복선을 뒤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호들갑떨지 마라. 그건 아마도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된 우연의 일치이지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닐 거다. 각각의 인물들의 결말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 정 궁금하다면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광팬이었다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죽음으로 중단된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을 집필하게 된 이오인 콜퍼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권한다. 누가 알겠는가?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세상이 온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히치하이커 시리즈에 슬쩍 끼워 넣어질 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전 은하계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시‘롱랜드의 노래’를 쓴 랄라파에게 접근한 미래의 수정액 판매업자들처럼 어떤 변수가 개입한다면 가능할 법도 한 이야기다.(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참조.)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해서 책, TV드라마, 영화, 연극, 음반, 게임 그리고 타올 사업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시리즈 4번째 ‘안녕히,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는 마감에 쫓겨 호텔에 갇혀서 원고를 썼을 정도라 하니 꼼꼼함과 치밀함까지 요구하기는 힘들 듯도 하다. 그나저나 타올 사업은 분명 대박이었겠다. 지나가는 우주선을 잡아 타고 우주를 여행하길 꿈꾸는 히치하이커의 필수품이 바로 타올이 아니던가. 언젠가를 대비해 슬그머니 솔기가 아주 튼튼한 타올을 미리 챙겨두고 싶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약간의 후유증을 조심하라.

아서 덴트가 알려주는 하늘을 나는 기술 ‘땅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되 그 땅바닥이라는 목표물을 놓치는 것’ 그럴싸해 보이지만 2010년 지구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라. 생쥐들이 주문 제작한 슈퍼 컴퓨터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비참해 하지 마라. 로봇 마빈처럼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라고 별거 아니라는 거 이제는 다들 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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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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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채식과 그 반대편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육식? 잡식? 아무튼 둘로 나눠 어느 한쪽에 서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채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라서 두어 달에 한번 닭고기 가슴살을 먹는 정도고 다른 육류며 그 부산물들은 입에 대지 않는 편이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구내식당의 점심 식사 자리와 회식 자리에서 혹은 교류가 깊지 않은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고기는 왜 안 먹어요? 원래 안 먹었어요?”라는 질문을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기분이 좀 좋을 때면 “아기 때부터 하얀 생선살은 받아먹었는데 빨간 고기는 톡톡 뱉어냈었데요. 그러니까 태어나서부터 고기는 입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에요.”하고 대답을 하지만 매번 날아오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에 지친 상태가 된다. 그런 나를 배려한다고 회식 메뉴를 고르는데 자꾸 내 이름이 거론되면 큰 죄를 지은 사람마냥 움츠러들게 된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몇 년을 함께 지내며 자연스레 깨닫게 돼서 나중에는 편해졌지만 말이다. 나 스스로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거나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채식의 장점을 떠벌리고 다닌 적이 없고 단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뿐인데 나는 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걸 어떻게 먹어요?”라는 질문을 안 하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스런 사람 취급하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식상한 질문에 뻔한 대답...하지만 이 상황을 웃음으로 멋지게 날려줄 말을 찾은 건 20대 초반에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였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 지금은 앞뒤 내용도 생각 안 나고 그 방대한 책 속에서 다시 그 문장을 찾을 자신도 없지만 ‘내 뱃속을 동물의 무덤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글귀였다. 예상 질문에 이런 대답을 툭 던지면 한바탕 웃음으로 넘어가곤 했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입장이니 육류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헬렌 니어링처럼 인생의 철학과 목표와 방향이 일치하는 동지 같은 남편 스콧 니어링과 함께 산다면 모를까. 성장기 아이에게도 균형 잡힌 영양을 위한 육류는 필요하고, 남편은 고기의 질을 따질 정도로 육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냄새 맡기도 힘들어하던 고기 요리를 먹지는 않지만 만들어 상에 올리기는 한다.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가 맛있다고 하면 뿌듯해지고, 간도 안 보고 요리하는데 맛이 좋다는 남편의 칭찬에 으쓱해 하는 걸 보면 난 ‘채식주의자’ 특히 헬렌 니어링의 강경한 채식, 자연주의 식사법의 편에 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과 음식과 건강한 삶에 대한 철학을 채식과 자연주의 밥상을 들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헬렌 니어링의 글이 다소 불편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개인이 취향 정도로 생각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내가 이럴진대 방대한 분량의 강경한 어조의 인용문을 읽어가는 내내 살인자 야만인 취급을 참아내야 하는 심기불편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몇 개의 인용문을 예로 들면...

먼저 제 입을 핏덩이로 더럽히고, 제 혀를 도축된 것의 살에 닿게 하다니 대체 인간은 어떤 감정이나 마음, 이성을 가졌는지 의아하다. 움직이고, 지각하고, 목소리를 가진 것들을 죽여 그 시체 덩이를 식탁에 펼쳐 놓고, 그걸 맛좋은 식사라고 말하는 인간이 아닌가? 플루타크 
 

육식을 하는 자여, 그대는 사자, 호랑이, 구렁이를 야만스럽고 흉포하다고 말하면서, 하필이면 자기 손을 피로 물들이누나. 하지만 그런 동물에게는 살해가 생명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다. 반면 그대에게 살해는 불필요한 사치이다. 왜 땅이 그대에게 먹이고 영양을 주지 못한다는 듯이 땅을 기만하는가? 그대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넘치도록 갖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사자와 늑대를 죽이는 것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지 먹기 위함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런 동물은 평온하게 내버려둔다. 그리고 결백하고 길들여진 무기력한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다. 플루타크

 

창자를 창자 속에 묻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탐욕스런 몸이 그 안에 밀어 넣은 다른 동물의 몸을 취해 살찌는 것은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살아 있는 생물이 다른 살아 있는 생물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 피타고라스

헬렌 니어링과 남편 스콧 니어링은 동물착취를 최소화하는 식이요법을 실천했다. 달걀이나 우유나 치즈를 사용하는 요리 또한 없다. 요리책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이 요리책에 소개된 요리법은 야채와 과일과 견과 씨앗에 집중되어 있다. 단맛을 위해서는 꿀과 메이플 시럽을, 간을 위해서는 극소량의 천일염 정도를 첨가물로 사용한다. 조리법은 요리할 때 참조하려고 손때를 묻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너 줄 분량으로 간단하고 단순하다. 육식에 대한 경계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부엌에서 요리에 매여 있는 시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한껏 높였다. 요리를 즐겨하는 부류가 아니라면 요리 시간을 최소화해서 나머지 시간에 음악이나 책을 읽든가 즐거운 일을 하는데 에너지를 쓰자는 페미니스트의 어조로 말이다. 강경하고 극단적인 자연주의 입장은 수용할 수 없더라도 신선한 천연의 재료와 첨가물을 최소화한 식단은 분명 건강한 삶을 위해 차용해 올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요리가 고역이라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부엌에서의 시간을 줄이자는 의견에도 찬성한다.  

 

세상에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요리를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두 종류가 있는데 헬렌 니어링 자신은 요리를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려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요리를 잘하고 싶어 하면서 요리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음식을 식도로 넘겨 뱃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을 놓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배설물을 만들 것에 무엇 하러 마음을 쓰겠소?”라는 잔뜩 거드름 피운 말들보다 조지프 콘라드가 아내 제시 콘라드의 요리책 <소가족을 위한 간단한 요리>(1923) 서문에 적은 ‘좋은 요리라 함은 일상생활에서 소박한 음식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이지, 희귀한 요리를 기교 있게 꾸며 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의 소박함이 더 좋다.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 해줄만한 방대한 양의 인용문들은 수천 권에 이르는 도서관 서가의 요리관련 서적들 속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빈틈없이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이 보인다.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고, 땅에서 나온 먹거리로 건강한 삶을 살고, 여가와 휴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삶의 틀에 갇히기보다 삶이 존중되는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데만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낸 니어링 부부의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난 그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함만 배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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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순전히 ‘책읽기’라는 단어에 이끌려 읽은 책이다. 닉 혼비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없이 겨우 작가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대충 훑어보니 독서일기인 듯해서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지나치지 못하고 큰 기대 없이 집어 들었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영국의 인기작가 닉 혼비가 미국의 문화 서평잡지 <빌리버>에 3년 가까이 연재한 칼럼을 모은 리뷰모음집이다. 닉 혼비의 목록에 등장하는 책들 중 몇몇 작품들을 빼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생소한 책이었고, 클래식이든 팝이든 체계가 없는 나로서는 음악광인 닉 혼비가 비유 속에 넘치게 담아내는 음악이야기들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보르헤스의 주석만큼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무수히 많은 괄호를 등장시켜 넣어두는 바람에 원문을 이어읽기 위해서 시선이 분주했던 상황도 책읽기를 힘들게 했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 책을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속 시원하게 꼬집어주고 유쾌하게 비틀어주는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닉 혼비의 글맛 때문이었다. 그것도 질질 끌면서 겨우 읽어낸 것이 아니라 아주 유쾌하게 읽었으니 닉 혼비의 작품들로 이제 건너가볼 작정이다.
 

닉 혼비는 잡지사 편집위원들과의 의견 충돌로 여러 번 연재가 정지된 상황임에도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근질거리는 손끝을 참지 못한다. ‘내게 맞지 않는 책을 고집스럽게 보는 것과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잡지 <빌리버>의 신념과 ‘맞지 않는 책만 끝까지 읽고 그것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영국 스타일’이 충돌한 것이다. 닉 혼비는 기회만 있으면 <빌리버>의 편집위원들에게 투덜대고 비아냥거린다. 흰옷 입은 신흥종교집단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건조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정한 집단으로 보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편집위원들의 기준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자신과 맞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런 것들이 편집 과정에서 걸러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대로 잡지에 실린 걸 보면 독자들 또한 그런 비꼼과 비틂을 닉 혼비 스타일의 유머로 재미있어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늘 ‘구입한 책 목록’보다 ‘읽은 책 목록’이 단출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혹은 축구시즌이라 책을 많이 읽지 못했노라 인간적인 이유를 들어 변명하는데 찌질하지 않고 당당하다. 물론 그 안에는 ‘절대 혹평은 사절한다.’는 잡지<빌리버>의 원칙 때문에 읽고도 제목과 작가를 언급할 수 없었던 책이 있었노라 슬쩍 밝히기도 한다. 만약 서점에 가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내 서재의 읽지 않은 수백 권의 책으로는 겨우 9~10년 정도밖에 버틸 수 없으니 안전을 기하기 위해 책을 사들여야 한다는 닉 혼비의 말은 책을 읽어내는 속도가 책을 사들이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책벌레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출판사에서 떠안기는 추천 책들, 동료나 지인들이 추천하는 책들, 가족이나 친구가 출간한 책까지 넘쳐나는 작가라는 위치에서도 이렇게 책 욕심이 채워질 줄 모르니 오로지 내 주머니 털어야 책을 들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책 욕심은 늘 허기지고 목마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읽지 않고 쌓여가는 책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가끔씩 돌아보게 되는 것이 내 독서의 유형과 방향이다. 지나치게 관심분야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낯선 분야의 책에도 도전을 해서 독서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독서의 넓이와 깊이에의 끝없는 욕망이랄까... 우려 섞인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 때면 늘 가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길을 기웃거려 보게 되는데 가끔 새로운 기분을 맛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포기하거나 잠시 머물다 다시 원래의 익숙한 길로 돌아오곤 한다. 익숙한 길에서 곧바로 평화를 되찾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가 찜찜하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처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것이 끈적거리며 달라붙은 기분이 든다. 닉 혼비도 이런 비슷한 고민을 거쳐 해답을 제시한 부분들이 보인다.   
내 독서 지도가 1900년경 대영제국의 지도와 비슷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의아해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보다시피 내 무식함의 영역을 아주 조그맣게 침략하는 정도가 전부다. 매년 또 한 권의 고전소설이 이곳을 점령하고, 새로 나온 문학인의 전기가 저곳을 격퇴시키고 있다. 솔직히 말해, 더 멀리 보낼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온갖 반란과 도주 시도를 막는 데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17쪽) 

닉 혼비가 평소 읽지 않던 SF를 읽으려고 시도하다 바보가 된 느낌을 떨쳐버리면서 적은 글은 통쾌한 느낌마저 든다. 최근 자연과학 도서를 읽어보려고 시도하다가 뭐가 뭔지 모르는 글이 목침 수준의 두께로 위협하는 책을 만지작거리며 좌절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삼키지 못할 책이 분명하니 깔끔하게 털어내고 나도 나 자신의 한계와 이제 화해하련다.  

나는 나 자신 그리고 나의 한계와 화해했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그것들을 보라. 재치 있고 우스운 소설들, 군사정보기관과 노숙자들에 대한 논픽션. ...(중략)... 이 정도면 균형 있고 건강에 좋은 식사다. 부족한 비타민은 없다. 나는 시금치가 아니라, 구운 캥거루 고기나 초콜릿을 바른 개미요리에 해당하는 책을 찾고 있었던 셈인데,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보고 캥거루 고기에 끌려본 적이 없으니, 책에 해당하는 것도 삼키지 못하는 일이 놀라운 것 없다.(228쪽)

「캉디드」의 텍스트와 주석 사이를 미친 듯이 뒤적이다 씁쓸한 감회를 적은 글은 보르헤스 전집을 읽다 마찬가지로 주석과 텍스트 사이에서 지쳐 지금 1년 넘게 쉬고 있는 내게 희망을 준다. 닉 혼비는 ‘문학가’이니 캉디드를 어쨌든 소화해야겠지만 ‘독서애호가’인 나는 보르헤스를 지금 당장 집어던져도 될 자유가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문학가’인지, 아니면 그저 독서애호가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그리고 나는 독서애호가가 더 재미있게 산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문학가는 「캉디드」같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문학가로서의 함량이 약간 미달되기 때문이다. 반면 독서애호가는 뭐든 원하는 대로 읽어도 된다.(261쪽)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통해서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알토란 같은 조언을 들었다. 당분간은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닉 혼비의 조언에 충실히 따를 예정이다. 우선 첫 번째로 몇 장을 읽어도 머리와 가슴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고 빙빙 떠다니던 책을 과감하게 집어 던졌다. 평소 같았다면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두 번째는 도서관 서가에서 읽어 보리라 마음먹었던 책을 지나칠 때면 왠지 채무감 비슷한 감정에 한숨을 푹푹 내쉬곤 했었는데 이제 그 앞을 당당하게 지나다닌다. 세 번째 나와 맞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평을 하고 싶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는 <빌리버>의 의견에 동의한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내게는 적절한 시기에 아주 잘 만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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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몰입해서 책을 읽고 있다면 그 책 제목이 궁금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어떻게 해서든 표지를 훔치고, 책을 배경으로 누군가 인터뷰를 하거나 서재에서 찍은 사진을 만나면 인물은 관심 밖이고 실눈을 뜨고 배경이 되는 책꽂이의 책등을 훑는 습관이 있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서재부터 살피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에 유별난 관심을 보일 것이다. 남의 독서일기가 궁금하고 서재가 궁금하고 유별나고 미친(?) 책사랑에 함께 마음이 파르르 떨리며 공감한다. 내 책꽂이에 책에 관한 책이 꽂히기 시작한 것은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과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로부터였다. 지금도 이 두 권은 내 책꽂이에서 무척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집안 구석구석 책이 쌓여가다 책 무게를 못 이겨 책장이 부러져 버리고 현관기둥을 따라 높아져 가다가 현관문까지 막아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려 더 이상 한권의 책도 사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집을 통째로 마을 도서관으로 기증한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주인공인 『도서관』(데이빗 스몰 그림/사라 스튜어트 글)은 아이에게 가장 신나게 읽어주는 그림책이고, 바닷가 모래 언덕 위에 자신의 장서들을 벽돌삼아 시멘트로 발라서 집을 지은 카를로스 브라우어의 광기도 이해할 수 있다. (『위험한 책』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전작주의자의 꿈』의 조희봉씨처럼 한 작가의 전작에 몰두하기도 했었고, 『탐서주의자의 책』은 진하게 공감하고 나에게 독서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배움이 있는 책이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궁정식 사랑과 육체적 사랑으로 나눈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마치 내 것처럼 자주 인용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희귀본 거래상의 세계를 알게 해준 릭 게코스키의 저서와 꾸준히 읽어온 『장정일의 독서일기』,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읽기』,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가장 최근에 읽은 닉 혼비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런던스타일 책읽기』까지 책에 미친 사람들의 독서일기를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부러워하는 재미가 아주 그만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주책없이 늘어지는 것도 병이 아닌가 싶다.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책과 가까이 하는 것밖에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었던 선비들 틈에서 그의 책 사랑이 얼마나 지나쳤으면 ‘책에 미친 바보’라는 별칭이 후대까지 전해졌을까 싶은 이덕무와 책을 사들이느라 가산을 탕진한 최한기의 뒤를 잇는 책에 미친 사람들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수대에 걸친 문중문고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문태갑, 제대로 된 한국어사전이 없음을 한탄하며 사전수집과 연구에 몰두하는 국어학자 박형익, 집안 대대로 천주교 서적과 인연이 깊은 송명근, 괴테 사랑이 넘치는 독문학자 최두환 레기네 부부처럼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처럼 묶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꼬장꼬장한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볼 수 없으니 마냥 부러워할 따름이다. 이렇게 책이 가업이거나 본업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비해 본업을 따로 두고 책과의 사랑에 빠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언뜻 보이는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매달 지출하는 책값 때문에 불필요한 취미나 지출을 줄이게 되고, 한 무더기씩 책이 들어올 때마다 책들의 공간 마련을 위해 고민을 하는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나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한정된 지출을 내 책과 아이 책의 비율 맞추기로 고민하다 결국 아이 쪽으로 기우는 내 모습의 씁쓸함은 이 책에 소개된 몇몇 책쟁이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만화 만드는 꿈을 잠시 접어두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려는 만화 마니아 박지수, 책과 조금 멀어져서 화천 우체국장으로 철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의 농산품 판매에 힘을 쓰고 있는 ‘전작주의자’ 조희봉, 가업인 목재상이란 직업과 책을 통한 세상 공부에 몰두하던 목재상 김태석처럼 취재 후 근황을 물으니 사는 게 바빠서 책과 조금 소원하게 지내고 있더라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책에 미쳐 책에 둘러싸여 일생을 보냈다는 책쟁이들의 성공신화(?)만 보여줬다면 한번 읽고 고귀하게 모셔만 두는 책이었을 텐데 평범한 책쟁이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와 어우러져 서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불문학자 민희식 교수의 인문학 경시 풍조를 개탄하는 말은 계층 간 세대 간 담을 쌓고 편 가르기를 하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가 유독 인문학 경시풍조로만 생긴 현상이 아닐지라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한숨이 새어나온다. 내 그릇이 모자라 턱없이 높고 험한 산이라 오히려 지나치게 중시했던 인문학의 친근한 접근로를 찾고 있는 중이라서 더욱 깊이 다가오는 말이다.

“인문학은 학문의 학문입니다. 상상력, 독창성, 창의력을 길러주지요. 답이 하나이고 그것을 맞히는 식의 교육은 진정한 실력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은 위험합니다. 한국의 교육은 잘못돼 있어요. 언어, 수학을 잘하면 대학입학시험에 유리하고 음악, 미술은 아예 평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답을 주고 강요합니다. 잘못이에요. 그것은 극단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회나 정치는 포용력이 없어요.”

 

재밌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가르치는 윤태규 선생님의 놀이로 귀결되는 독서론은 지금 당장 아이를 놀이터로 내몰아야겠다는 공감을 불러온다. '만 권의 책을 3대에 걸쳐 대물림하는 집안에서 학자가 나온다'했는데 다행히 책 욕심 많고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책을 대주고 있는 내 뒤통수를 한대 치는 말이다.   

“앉아서 책읽기보다는 골목에서 뛰어노는 게 낫습니다. 삶은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살기 때문이죠.” ‘종이와 활자’는 결국 삶이 말라비틀어진 게 아니겠는가.

책에 대한 이야기처럼 질리지 않게 매력적인 이야기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의 책읽기가 궁금한 관음증적 호기심에 이끌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즐겨 보는 편이다. 국민 일인당 한해 독서량이라든지 인문학의 경시 풍조에 대한 이야기들이 딴 세상 이야기인양 엄청난 독서량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책쟁이들이 넘치는 책동네에 살고 있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늘 부러움을 동반하고 다니며 때로는 과한 욕심에 가랑이가 찢어지기도 하고 가끔씩은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된 28명의 책쟁이들은 한 달에 수십 만원어치의 책을 사들이고 그 책들에게 방을 내주고 골방으로 쫓겨나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 ‘왜 사는가’와 ‘왜 책을 읽나’가 동어반복인 사람들, 상식선에서는 결코 이해 못할 책에 미친 사람들이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메모해 둔 발터 벤야민의 글을 입으면 딱 맞는 옷이 될 이 책의 책쟁이들의 행복한 해피엔드를 기원하며 옮겨본다.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 발터 벤야민. 수집가의 특성에 대하여...

1)수집가는 원래 학자는 아니었지만, 수집활동을 통해 얻어진 박식함과 전문성으로 학자가 될 수 있다. 2)수집가는 고급한 학술적 연구자들에게 “백안시당하는 경전외적 사물들에 시선”을 주고 “이름 없는 자들과 그 이름 없는 자들의 솜씨의 흔적을 보존”함으로써, 대중예술(문화)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고, 예술이나 문화가 천재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3)수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정열적인 사람들로, 공공 박물관은 독창성 측면에서 절대 개인적인 수집가를 넘어설 수 없다. 4)수집가는 가난한 사람이다(부자였던 사람도, 결국은 가난하게 된다). 그러나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지만 “꿈속에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백만장자이다. 5)수집가는 광적인 낭만주의자이기보다 냉철한 자본가일 수 있으며, 위대한 수집가는 보물을 보존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의 수집물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고 싶은 노출증을 동시에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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