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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우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운명의 결계
추석 연휴 내내 나쓰세 소세키 소설 전집 중 아홉번째로 출간된 <문>을 읽었다. 긴 연휴 만큼이나 긴 호흡을 자랑하는 소설이어서 발빠르게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이 아닌 느릿느릿 산책하는 걸음으로 걸어가야하는 책이었다. 올해 초에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서스럼없이 인간 족속에 대해 한 방 먹인 소설이라면 <문>은 문과 문 사이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고 자의적인 선택과 타의적인 선택이 결부되어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낙인을 찍듯 대도시에 살아가면서도 산속에서 생활을 하듯 소스케와 오요네의 일상적인 움직임이 최소한의 동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한적하다. 소스케의 친척이나 이웃에 대해 세밀한 감정묘사가 나오지 않아 그들이 소스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정지을 수 없지만 여러모로 주인공인 소스케는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자식 하나 없이 적적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서로를 의지해서 살고 있지만 서서히 밝혀지는 과거가 두 사람을 깊고 깊은 우물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죄책감 아닌 죄책감으로 가족들과 이웃 사이의 관계 또한 멀리하며 지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두 사람을 묶어 놓았다고 해도 결국 두 사람이 선택한 결정이고 가족과의 사이를 멀리 했음에도 소스케는 그것이 운명이었을 뿐, 자신의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듯한 늬앙스가 느껴진다. 어쩌면 여러번 두 사람 사이에서 가졌던 아이가 유산됨으로서 두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사라졌고 시간이 지나 붉었던 마음조차 희미해졌다. 늘,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지만 소스케와 오요네는 서로의 고독한 마음을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것이 그들의 죄책감인지 사람으로서 느끼는 고독한 기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그의 삶은 대학을 중태하고 관청에 다니는 공무원이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작은 방에 동생 고로쿠를 데리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형이나 형수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위협적이기도 하고 두 사람의 행동이 미덥게 보이지 않는 고로쿠를 보면서 두 사람 사이에 느끼는 감정이 가족간의 느끼는 감정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학교도 중간에 그만두고 친구와 동거했던 여인과 함께 도망쳐 살아가는 소스케의 모습은 오요네를 처음 만나기 이전에는 굉장히 동적인 청년이었으나 그가 한 여인을 선택하면서 자신과 맺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에 대한 문을 닫아버림으로서 그는 스스로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죄책감이 가슴 밑 바닥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홀로 가득힌 세상에서 살며시 문을 열어 놓았다. 집안에서만 맴돌았던 소스케가 이웃인 사카이와 조금씩 교류를 맺는 것이 어쩌면 세상을 향해 빛을 받아들이는 그의 자그마한 희망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왜 나쓰메 소세키가 이 책의 제목을 '문'으로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내 소스케의 정적인 움직임과 고독감,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은 집안의 자제로 자라 모든 세상을 품을 것 같았을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여자를 선택함으로서 자의적으로 닫아버린 모든 문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 열면서 조금씩 열망을 품는 한 사내가 나쓰메 소세키와 너무도 닮아있다. 외국에서 많은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지만 그가 아는 지식만큼 세상을 향해 한발짝 진보 할 수 있었지만 지식인으로서 우유부단했고 스스로 사회를 향한 난 문을 걸어잠금으로서 최소한 자신만은 그대로 보존하며 살아간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그 답답하고 암울했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를 떠나 한 지식인의 근대화를 누구보다 더 발 빠르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 그이지만 실상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해 본다면 이전에 전통을 버리고 서양 문물을 급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에게 강요 아닌 강요로 문을 활짝 열라고 하지만 소스케처럼 문을 열만한 열망이 없었던 것처럼 나쓰메 소세키 역시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추진력과 열의가 가득하지 못했다.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소소한 그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에 가슴을 치면서도 어쩌면 그 시기의 사람들에게 급진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또한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들이 살았던 전통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는 강요일 것이다. 뭐든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조금씩 스며들듯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화는 빨랐고 지식인들은 한층 더 발빠르게 발전되지 못하고 도태되면서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상황에 맞물려 사회의 문을 가득 닫고 우물안의 개구리로 그저 우물안에 비춰진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면모지만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고독감을 너무나 잘 표현해 냈다. 그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또다른 색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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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케는 더 이상 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전 영국에서 온 키치너 원수를 관청의 동료가 오늘 신바시 근처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런 사람이 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는 그런 사람으로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가거로부터 질질 끌고 온 운명이나 또 그 그연속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눈앞에 전개될 미래를, 키치너라는 사람의 미래와 비교해보니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현격했다. - p.42~43
그들은 사회라는 존재를 일상의 필수품을 공급하는 곳 이상의 의미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뿐이고, 그들은 또 그 서로의 존재만으로 족했다. 그들은 산속에 있는 마음으로 도회에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복잡한 사회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사회의 활동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험에 직접 접촉할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려 도회에 살면서도 도회에 사는 문명인의 특권을 버린 듯한 결과에 이르렀다. 그들도 자신들의 일상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이따금 자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싫증이 난다거나 어딘가 불만스러운 마음은 털끝만치도 일지 않았지만, 서로가 머리로 받아들이는 내용에는 자극이 결여된 뭔가가 숨어 있는 듯한 희미한 호소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매일 같은 도장을 같은 가슴에 찍으며 긴 세월을 질리지도 않고 살아온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가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 p.168~169
소스케는 아주 짧았던 그때의 대화를 일일이 떠올리 때마다 그 하나하나하가 거의 무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담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두 사람의 미래를 새빨갛게 뒤덮었는지를 신기하게 여겼다. 지금은 그 붉은색도 세월이 흘러 옛날의 선명함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태운 불꽃은 자연스럽게 변색되어 까매졌다. 두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어둠 속에 가라않았다. 소새케는 과거를 돌아보며 일의 경과를 거꾸로 되돌아보고는 그 담백한 대화가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짙게 채색했는지 가슴속으로 철저하게 음미하면서 평범한 사건을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 p.184
세상은 가차 없이 그들에게 도의상의 죄를 짊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들 사진은 도의상 양심의 가책을 받기 전에 일단 멍한 상태에서 그들의 머리가 멀쩡한지부터 의심했다. 그들은 그들의 눈에 부도덕한 남녀로서 부끄럽게 비치기 이전에 이미 불합리한 남녀로서 불가사의하게 비쳤던 것이다. 거기에 변명다운 변명은 전혀 끼얼들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그들은 잔혹한 운명이 변덕을 부려 죄도 없는 두 사람을 급습하여 장난 삼아 함정에 빠뜨린 것을 원통해했다. - p.189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향도, 생각할 문제의 실제 내용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막막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굉장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불난 집에 위로하러 가기 직접에 세밀한 지도를 꺼내 동네 이름과 번지수를 자세하게 알아보는 것보다도 훨씬 못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