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장이 가져다 준 설레임과 서늘함.


『춘분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지나고까지 쓸 예정이라 그냥 그렇게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 실로 허망한 것이다. - p.18


우리나라의 춘분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양력 3월 21일경 부터 청명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한다.(지식백과 참고)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의 책 <춘분 지나고까지>의 춘분이라고 번역한 히간은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이나 추분을 중심으로 앞뒤 각각 3일을 합친 7일간을 말한다. 그러나 히간이라고 하면 주로 춘분을 말하고 이 기간에 일본에서는 히간카이라는 법회를 열고 신자를 절에 참례하고 설법을 듣고 성묘도 하는 풍습(p.18)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은 <춘분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을 지을 때 기간을 정해두고 쓸 예정이었기에 그냥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작 이 책이 제목으로 나왔을 때 아무런 의미가 부끄러웠던지 작품을 읽기 전에 상세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목욕탕에 다녀온 후> <정거장> <보고> <비 오는 날> <시나가의 이야기> <마쓰모토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편은 하나의 옴니버스 이야기처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각 인물이 등장하는 형태는 물론 게이타로를 주축으로 모리모토, 스나가의 이야기가 마치 통속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때로는 탐정소설처럼 추리를 요할만큼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 선생 특유의 느릿느릿한 발걸음과 먹고 살아가기 위한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한 비애를 누구보다 소세키 선생의 어법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내뱉는다. 농담어린 그 말투와 이야기가 자칫 잔잔한 미소를 띄울만큼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 그 속에 스며든 물기는 소세키 선생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예, 당신은 씻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탕에 담그기만 하니까 특히 그렇겠지요. 실용을 위한 목욕이 아니라 쾌감을 탐하기 위한 목욕이니까요." - p.24


"뭐, 간단히 말하자면 이 세상을 원숭이나 마찬가지로 살아온 거지.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분명히 자네보다 열 배나 많은 경험을 쌓아 왔다고 생각하네. 그런데도 아직 이 모양으로 해탈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무학, 다시 말해 학문이 없기 때문이지. 하기야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무턱대고 변화무쌍하게 살아올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 p.37


게이타로는 지금껏 무엇 하나 자신의 힘으로 뚫고 나왔다는 자각이 없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그 밖에 무슨 일이든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해낸 적이 없다. 태어나서 딱 한 번 갈 데까지 가본 것은 대학을 졸업한 것 정도다. 그조차 애써 하지 않고 그저 똬리를 틀고 있다가 대학에서 끌어내준 것 이어서 도중에 꼼짝할 수 없게 된 답답함이 아닌 가까스로 우물을 파냈을 때의 시원한 마음도 몰랐다. - p.88~89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을 마주하다보면 게이타로가 느끼는 것처럼 자신을 우물안의 개구리로 느끼고 불안정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상황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조그만 힘만 가해도 뚫어질 종이 벽을 못내 뚫지 못하고 그 자리 내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무게감과 고독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살며시 스며드는 햇살에 희망을 느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인물은 쾌활하지 못하고 엉뚱하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에 매어 있는 새 같다.


게이타로는 비로소 자신이 위험한 탐정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다구치가 자신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굳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런 짓을 해서 훗날 이용할 남의 약점을 쥐고 있으려는 게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남의 개로 부려지는 불명예와 부도덕함을 느끼고 겨드랑이에서는 괴로운 진땀을 흘렸다. - p.109


소세키의 책 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책 속에 수록된 정혜윤 CBS 라디오 프로듀서의 해설이다. "당신의 눈이 빛을 찾고 있다면 어둠을 포용해야 한다"는 문장이 다. 스나가와 지요코의 사랑은 서로 마주보기의 사랑이 아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르고 그들이 그리는 이상향이 서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만약 스나가가 지요코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할지라도 훗날 그들의 사랑이 오롯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커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자아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함에도 늘 누군가와 함께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갈 것을 갈구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부터 광해군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임진왜란 편,

<역사저널 그날> 4 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기념 서평 이벤트

 
1. 
이벤트 신청 기간
- 2015
 10 20 ~ 10 27일까지 
당첨자 발표 : 10 28 (리뷰 작성 기간 : ~11 15)

 
2. 
모집인원 
- 10

 

3. 참여방법
이벤트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해주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서평단 응모 링크(https://goo.gl/wiEUIv)를 클릭하여 설문지 작성해주세요.

 

4. 당첨자 미션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올려주세요.
서평이 등록되지 않는 경우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면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모르고 있던 심오한 라면의 세계
가와이 단 지음, 신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라멘의 모든 것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해서 라면이나 칼국수, 짜장면, 만두를 즐겨 먹는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먹는다고 하면 주로 마트에 파는 봉지라면이나 컵라면이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라면들이 너무나 다채롭게 나와서 새빨간 국물 라면부터 짜장 라면, 짬뽕라면, 비빔라면, 설렁탕 맛이 느껴지는 라면등 다양한 라면들이 출시되어 있다. 라면을 사러 가면 마트에 한 매대를 장식 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라면들이 있지만 주로 내가 즐겨 라면은 *라면과 *구리라 고민없이 선택해서 나오는 편이다. 라면을 끊일 때도 라면 봉지에 소개된 조리법으로 끊인 후에 라면이 익었다 싶을 때 계란 하나를 넣고 젓가락으로 젓어주면 요리 끝. 푹 끊인 라면보다 면발이 통통한 라면을 더 좋아해서 살짝 익었다 싶으면 얼른 불을 꺼야 한다. 물조절만 잘 하면 빠르고 쉬운 조리법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보통 아침 저녁으로는 먹지 않고 점심 때 남아있는 밥과 함께 먹으면 그만인 라면이 가와이 단이 그려낸 <라면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즐겨먹는 인스턴트 라면과 달리 우리가 만들어 먹는 칼국수나 짜장면처럼 손길이 많은가는 일본 라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라면은 시간도 단축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라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볍게만 생각했던 라면이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끊여내는 라면이 인스턴트 음식으로 소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손길이 들어간 수제 라면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라면의 뿌리는 중국이지만 1871년 청일수호조약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이주 하면서 일본 최초의 라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처음 나온 라면은 우리가 먹는 설렁탕처럼 하얀 국물에 부드러운 면이 들어간 것 같은 형태였다. 그것을 일본에서는 '난징소바'라고 불렀고 당시 요코하마 난징 거리에서 라미엔, 라오민, 미엔챠오, 라미, 라우멘등 다양한 언어로 뒤섞인 지역에서 라면을 그렇게 불렀다가 나중에 라면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어 불리게 되었다.


 

<라면이란 무엇인가>에서 '박학다식 선생'이라고 불리는 운치쿠 유조가 등장하여 라면의 역사, 라면에 올리는 토핑, 라면 육수와 면, 본고장에 따른 라면 여행은 물론 포장마차의 역사와 라면 가게, 프랜차이즈 체인점, 인스턴트 라면에 이르기까지 라면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채롭게 쏟아진다. 각 고장에 따라 맛과 멋이 다른 라면을 소개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라면 속에 들어가는 육수와 면을 끊이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돼지뼈나 닭을 이용해 육수를 끊이거나 가쓰오부시를 이용해 끊이는 라면 국물의 차이점에 그에 따른 라면의 이름이 다르게 불리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실, 초반 까지만 해도 운치쿠 유조가 라면에 만화 특유의 특성상 재밌게 풀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평면적으로 라면을 세밀하게 조사하고 자신의 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다소 운치쿠 유조라는 주인공의 입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유익하지만 평면적인 설명이 계속 반복 되다 보니 그가 등장이 재밌다거나 캐릭터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를 대신하여 취재한 이야기를 세밀하고 담고 담아 라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의 재미를 느끼고자 선택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다는 평가가 나오겠지만 진짜 일본 라면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직접 일본 라면을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라면의 조리법이나 육수나 면발에 대한 이야기가 다각도로 조명된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가 직접 소개한 라면들을 하나하나 맛 보고 싶을 정도로 라면의 종류가 다양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라면 가게에 대한 내용이다. 2012년 기준으로 일본의 라면 가게는 3만 3천여개에 이르고 점점 가게가 줄어간다는 내용과 라면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는 가게의 입지와 인테리어 가게에 나오는 BGM에 따라 손님의 심리적인 마음을 유도한다.


또한 라면의 가격과 토핑의 숫자에 따라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숫자가 있디. 3과 5가 대표적인 숫자이고 그 다음이 1,7,8이라고 한다. 손님이 드나드는 회전율과 라면 봉지에서 보여지는 색깔 조차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색깔이 따로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장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라면 하나에도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사실을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인 일본 라면에서 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만화 연재를 위해 다방면으로 취재를 했던 가와이 단이 왜 재미를 떠나 만화 속에 많은 글밥을 넣어 만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일본의 라면과 식도락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기에 나중에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1순위로 이 책을 품에 안고 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아이사와 리쿠 상.하 세트 - 전2권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진짜 감정을 오롯하게 알아가는 시간.


 열네 살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사와 리쿠>는 이전에 봤던 만화들과 많이 달랐다. 샤샤삭 가볍게 스케치를 한 듯 연필의 질감이 많이 묻어나 있고 무엇보다 아이사와 리쿠라는 열네 살 소녀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여타의 소녀들과 달리 자기의 감정이 전혀 없다. 수도꼭지를 틀 듯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아이의 감정은 그저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거짓된 행동일 뿐이다. 직장에서 잘 나가는 세련된 아빠와 뭐든지 흠집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엄마가 있지만 가족간의 관계는 리쿠의 감정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서로의 행동이 상대방을 위한 눈속임일 뿐 그 무엇도 세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질적이고 왜 리쿠가 자신의 감정을 오롯하게 느끼지 못하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하며 남들 눈에 띄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마치 수도꼭지를 살짝 틀 듯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음속은 고요하고 차가우누데 눈물을 왜 이토록 따듯할까.

이상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슬픔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슬픈 듯한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고이게 할 수 있었다.  p.3~6

 

 

리쿠의 시선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왜 리쿠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강박관념이 있는 엄마의 시선과 가르침 때문에 리쿠는 스스로 다른 사람과 벽을 두는 것은 물론 타인이 쓰던 물건이나 동물들까지도 거리를 둔다. 마치 누군가가 만진 그 곳에 그녀의 손이 닿는다면 세균에 감염이 되어 자신에게 큰 치명상을 입힐 것 같은 마음이 계속 해서 리쿠의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다.


밖에서 보는 아빠의 모습은 집안에서와 달리 엄마가 아닌 회사 동료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리쿠는 엄마를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새를 새장에서 꺼내 움켜쥐게 만든다. 그것이 내 감정이 아닌 엄마라면 아마도 이렇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 스스로 한 행동을 엄마나 아빠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충동적으로 한 행동으로 오해를 받는 리쿠는 간사이에 있는 고모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게 된다. 자신이 있던 곳과 달리 집안 모두 시끌벅적한 것은 물론이고 간사이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에는 그들이 다가가는 자리 만큼 물러섰던 리쿠는 서서히 그들이 내민 손을 따라 조금씩 발걸음을 좁혀간다.


사촌동생인 도키 짱이 단호박 같았던 리쿠의 마음을 서서히 두드렸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리쿠가 도키 짱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거짓된 감정이 아닌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만화로 담았다. 무엇보다 메마른 감정의 아이사와 리쿠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으나 이내 그녀의 감정을 담은 문장과 그림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진짜 감정이 무엇이고, 진짜 슬플 때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을 열네 살인 리쿠가 도끼 짱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들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열네 살 소녀인 리쿠가 우리나라 나이로 생각한다면 중학생에 지나지 않을텐데 너무나 빨리 어른의 세계를 파고 들고 있고, 감정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 무감각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소녀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리쿠의 엄마 또한 강박적으로 간사이 지방을 멀리하고 떠나왔음에도 간사이 지방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남편은 간사이 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쓰지 않는 점을 강조했고, 꿋꿋하게 살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보여지는 감정은 무관심이다.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지 않고, 리쿠의 아빠 또한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내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만 애인과의 관계 또한 돈독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인 것은 리쿠가 리쿠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과의 사이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감정의 과잉이 없는 무감각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마지막 눈물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비로소 진정한 눈물을 흘린 열네 살 리쿠의 뜨거운 눈물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운명의 결계


 추석 연휴 내내 나쓰세 소세키 소설 전집 중 아홉번째로 출간된 <문>을 읽었다. 긴 연휴 만큼이나 긴 호흡을 자랑하는 소설이어서 발빠르게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이 아닌 느릿느릿 산책하는 걸음으로 걸어가야하는 책이었다. 올해 초에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서스럼없이 인간 족속에 대해 한 방 먹인 소설이라면 <문>은 문과 문 사이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고 자의적인 선택과 타의적인 선택이 결부되어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낙인을 찍듯 대도시에 살아가면서도 산속에서 생활을 하듯 소스케와 오요네의 일상적인 움직임이 최소한의 동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한적하다. 소스케의 친척이나 이웃에 대해 세밀한 감정묘사가 나오지 않아 그들이 소스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정지을 수 없지만 여러모로 주인공인 소스케는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자식 하나 없이 적적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서로를 의지해서 살고 있지만 서서히 밝혀지는 과거가 두 사람을 깊고 깊은 우물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죄책감 아닌 죄책감으로 가족들과 이웃 사이의 관계 또한 멀리하며 지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두 사람을 묶어 놓았다고 해도 결국 두 사람이 선택한 결정이고 가족과의 사이를 멀리 했음에도 소스케는 그것이 운명이었을 뿐, 자신의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듯한 늬앙스가 느껴진다. 어쩌면 여러번 두 사람 사이에서 가졌던 아이가 유산됨으로서 두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사라졌고 시간이 지나 붉었던 마음조차 희미해졌다. 늘,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지만 소스케와 오요네는 서로의 고독한 마음을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것이 그들의 죄책감인지 사람으로서 느끼는 고독한 기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그의 삶은 대학을 중태하고 관청에 다니는 공무원이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작은 방에 동생 고로쿠를 데리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형이나 형수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위협적이기도 하고 두 사람의 행동이 미덥게 보이지 않는 고로쿠를 보면서 두 사람 사이에 느끼는 감정이 가족간의 느끼는 감정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학교도 중간에 그만두고 친구와 동거했던 여인과 함께 도망쳐 살아가는 소스케의 모습은 오요네를 처음 만나기 이전에는 굉장히 동적인 청년이었으나 그가 한 여인을 선택하면서 자신과 맺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에 대한 문을 닫아버림으로서 그는 스스로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죄책감이 가슴 밑 바닥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홀로 가득힌 세상에서 살며시 문을 열어 놓았다. 집안에서만 맴돌았던 소스케가 이웃인 사카이와 조금씩 교류를 맺는 것이 어쩌면 세상을 향해 빛을 받아들이는 그의 자그마한 희망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왜 나쓰메 소세키가 이 책의 제목을 '문'으로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내 소스케의 정적인 움직임과 고독감,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은 집안의 자제로 자라 모든 세상을 품을 것 같았을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여자를 선택함으로서 자의적으로 닫아버린 모든 문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 열면서 조금씩 열망을 품는 한 사내가 나쓰메 소세키와 너무도 닮아있다. 외국에서 많은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지만 그가 아는 지식만큼 세상을 향해 한발짝 진보 할 수 있었지만 지식인으로서 우유부단했고 스스로 사회를 향한 난 문을 걸어잠금으로서 최소한 자신만은 그대로 보존하며 살아간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그 답답하고 암울했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를 떠나 한 지식인의 근대화를 누구보다 더 발 빠르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 그이지만 실상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해 본다면 이전에 전통을 버리고 서양 문물을 급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에게 강요 아닌 강요로 문을 활짝 열라고 하지만 소스케처럼 문을 열만한 열망이 없었던 것처럼 나쓰메 소세키 역시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추진력과 열의가 가득하지 못했다.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소소한 그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에 가슴을 치면서도 어쩌면 그 시기의 사람들에게 급진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또한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들이 살았던 전통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는 강요일 것이다. 뭐든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조금씩 스며들듯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화는 빨랐고 지식인들은 한층 더 발빠르게 발전되지 못하고 도태되면서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 상황에 맞물려 사회의 문을 가득 닫고 우물안의 개구리로 그저 우물안에 비춰진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면모지만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고독감을 너무나 잘 표현해 냈다. 그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또다른 색채가 아닌가 싶다. 



***


소스케는 더 이상 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전 영국에서 온 키치너 원수를 관청의 동료가 오늘 신바시 근처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런 사람이 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는 그런 사람으로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가거로부터 질질 끌고 온 운명이나 또 그 그연속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눈앞에 전개될 미래를, 키치너라는 사람의 미래와 비교해보니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현격했다. - p.42~43


그들은 사회라는 존재를 일상의 필수품을 공급하는 곳 이상의 의미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뿐이고, 그들은 또 그 서로의 존재만으로 족했다. 그들은 산속에 있는 마음으로 도회에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복잡한 사회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사회의 활동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험에 직접 접촉할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려 도회에 살면서도 도회에 사는 문명인의 특권을 버린 듯한 결과에 이르렀다. 그들도 자신들의 일상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이따금 자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싫증이 난다거나 어딘가 불만스러운 마음은 털끝만치도 일지 않았지만, 서로가 머리로 받아들이는 내용에는 자극이 결여된 뭔가가 숨어 있는 듯한 희미한 호소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매일 같은 도장을 같은 가슴에 찍으며 긴 세월을 질리지도 않고 살아온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가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 p.168~169


소스케는 아주 짧았던 그때의 대화를 일일이 떠올리 때마다 그 하나하나하가 거의 무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담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두 사람의 미래를 새빨갛게 뒤덮었는지를 신기하게 여겼다. 지금은 그 붉은색도 세월이 흘러 옛날의 선명함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태운 불꽃은 자연스럽게 변색되어 까매졌다. 두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어둠 속에 가라않았다. 소새케는 과거를 돌아보며 일의 경과를 거꾸로 되돌아보고는 그 담백한 대화가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짙게 채색했는지 가슴속으로 철저하게 음미하면서 평범한 사건을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 p.184


세상은 가차 없이 그들에게 도의상의 죄를 짊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들 사진은 도의상 양심의 가책을 받기 전에 일단 멍한 상태에서 그들의 머리가 멀쩡한지부터 의심했다. 그들은 그들의 눈에 부도덕한 남녀로서 부끄럽게 비치기 이전에 이미 불합리한 남녀로서 불가사의하게 비쳤던 것이다. 거기에 변명다운 변명은 전혀 끼얼들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그들은 잔혹한 운명이 변덕을 부려 죄도 없는 두 사람을 급습하여 장난 삼아 함정에 빠뜨린 것을 원통해했다. - p.189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향도, 생각할 문제의 실제 내용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막막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굉장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불난 집에 위로하러 가기 직접에 세밀한 지도를 꺼내 동네 이름과 번지수를 자세하게 알아보는 것보다도 훨씬 못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