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의 기술 1 NFF (New Face of Fiction)
채드 하바크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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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흔히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 홈에서 승부한 타자가 1루, 2루, 3루 그리고 다시 홈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을 읽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야구경기를 더 열심히 보았다. 특히 헨리와 같은 포지션을 갖고 있는 '유격수'를. 더불어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을 느끼고 싶어 지난주 S본부에서 하는 '나는 산다, 김성근 - 9회말까지 인생이다' 를 보며 노력이란 무엇인가? 열정이란 이런 것이다!를 오롯하게 야구를 위해 사는 한 사람을 통해 그의 열정을 보았다.

 

채드 하바크의 첫 데뷔작인 이 소설은 제목에서 어우러지는 것처럼 흡사 야구 소설처럼 보이지만 변화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구력을 가진 작품이다. 헨리, 슈워츠, 오웬, 어펜라이트, 펠라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다섯 타자들인 셈인데 저마다 공격을 하고 있지만 팡팡 쏘아올리는 공이 아웃이 되기도 하고, 1루타가 되기도 한다. 혹은 수비의 실수를 통해 온전한 기회를 얻고 있지만.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투수의 제구를 통해 타석에서 힘껏 치고 있는 타자와 별반 다를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는 자신의 영웅 아파리치오의 <수비의 기술>을 에 있어 자신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로 그의 책을 끌어안으며 실책 없는, 말 그대로 수비의 신(神)으로 거듭나곤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한가지 일에서 와르르 무너지듯 '완벽'에 가까운 헨리의 수비는 어느날 악송구 하나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룸메이트인 오웬에게 큰 상처를 입힐 정도로. 그 이후 그의 수비는 빗금이 갈라지는 것처럼 실책이 많이 나왔다. 야구에 있어서 헨리의 모습이 그렇지만 헨리를 도와준 슈워츠나 그의 룸메이트 오웬, 그들의 학교 총장인 어펜라이트, 어펜라이트의 딸 펠라까지도 조금씩 누수가 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이 승부한 삶은 자신이 목표한데 있어서 예상치 못한 상태로 자신이 공격한 방향의 공은 삶에 있어서 일정부분 '실패'라는 단어를 짊어지고 있었다.

 

완벽했던 송구로 스타우트의 눈길이 반짝였던 헨리 마저도 '완벽'하다는 것이 양날의 칼날처럼 자신의 삶에 있어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펜라이트 역시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같은 큰 바다에 포경선이 승선한 선원같이 그들의 배경에 있어서 그 또한 인생을 항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마다의 시간에서 청춘을 보내는 모습은 책을 읽는 이 순간에도 나도 그들과 같은 고민과 어떤 것에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헨리가 아파리치오를 숭배하듯 채드 하바드 역시 허먼 멜빌의 소설이나 야구를 통해 거대한 배경을 자신의 배경으로 감싸안으면서도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놓았다. 거친 파도와 잔잔한 파도가 음율을 이루듯 화음이 잘 맞아 떨어지는 협주곡 같아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자꾸만 파고 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제구력은 나도 모르게 다섯명의 인물을 통해 그들이 있는 홈에서 나를 발견하게 만든다.

 

헨리, 슈워츠, 오웬, 어펜라이트, 펠라는 다이아몬드 홈 사이에서 어디쯤 서 있을까 라는 물음 속에 그럼 나는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덫대어 다가왔다. 과연 인생이란 자신이 수비하고, 실책해 낸 볼 사이의 방향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수비의 기술>은 글러브에서 빗겨져간 수많은 구멍들을 하나씩 보게 만든다. 성장소설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안한지. 하나의 실수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말고 잘 하는 한가지에 더 집중하라고 하듯이 채찍질하며 또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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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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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접하기 전에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마네가 그린 그의 초상을 보면서 부터다. 핸섬하고 지적인 모습과 그 시대의 화풍이 들어간 모습은 당시 지식인들이 어떤 것에 매료 되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창고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린터라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목로주점>이 가장 유명한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첫발을 디뎠다.

 

뒷표지의 추천사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지만 이 작품만은 그들이 찬양하는 감탄사가 이해가 될 정도로 경쾌하면서도 굴곡진, 동화같은 사랑이야기가 곁들여진 작품이다. 백화점을 떠올리면 이전에 읽었던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2011,톨)과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2011, 펭귄클래식코리아)이 떠오른다.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마치 있었던 것 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복합적인 구조의 백화점에 대한 역사와 유례는 이미 조경란 작가의 작품으로 만나왔지만 세계적으로 처음 지어졌던 봉 마르셰 백화점을 모델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에밀 졸라는 그리고 있다.

 

첫장에서 부터 주인공 드니즈는 두 동생과 시골에서 막 상경하여 처음으로 '백화점'을 바라보게 되고 눈을 뗄 수 없는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에밀 졸라가 그린 공간에 풍덩 빠져 버렸다. 물흐르듯 자연스런 묘사와 실크의 부드러움이 만져질 것 같은 촉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욕망과 따라다니는 시선들. 그중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계층,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이야기까지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눈들이 '백화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으면서 요즘 쓰여진 작품을 읽는 것처럼 그가 말하고자 하는 프랑스 사회상은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대기업과 소상인들의 싸움은 멀티 플랙스 같은 복합 건물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의 힘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자본주의를 통해 상인들은 깨닫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욕망이 터진 동시에 소상인들의 밥줄이 사라진 계기도 동시에 제공해 준다.

 

전체적으로 그의 이야기는 동화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상업성과 사람들의 욕망을 요리 할 수 있는 그들의 사업을 통해 그들이 만드는 백화점의 구조와 그들이 파는 물건들에 대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밥줄을 점점 잃어가면서 분노하게 되는 시선들이 얽혀가는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지 알게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위에서 언급했던 두 책과 함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만난다면 우리가 늘 동경하고 꿈꾸는 세계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가 되면서 시공간을 지나 변함없이 누군가에는 환한 빛이, 누군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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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 세계문학의 숲 18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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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졸라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접하기 전에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마네가 그린 그의 초상을 보면서 부터다. 핸섬하고 지적인 모습과 그 시대의 화풍이 들어간 모습은 당시 지식인들이 어떤 것에 매료 되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창고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린터라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목로주점>이 가장 유명한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첫발을 디뎠다.

 

뒷표지의 추천사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지만 이 작품만은 그들이 찬양하는 감탄사가 이해가 될 정도로 경쾌하면서도 굴곡진, 동화같은 사랑이야기가 곁들여진 작품이다. 백화점을 떠올리면 이전에 읽었던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2011,톨)과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2011, 펭귄클래식코리아)이 떠오른다.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마치 있었던 것 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복합적인 구조의 백화점에 대한 역사와 유례는 이미 조경란 작가의 작품으로 만나왔지만 세계적으로 처음 지어졌던 봉 마르셰 백화점을 모델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에밀 졸라는 그리고 있다.

 

첫장에서 부터 주인공 드니즈는 두 동생과 시골에서 막 상경하여 처음으로 '백화점'을 바라보게 되고 눈을 뗄 수 없는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에밀 졸라가 그린 공간에 풍덩 빠져 버렸다. 물흐르듯 자연스런 묘사와 실크의 부드러움이 만져질 것 같은 촉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욕망과 따라다니는 시선들. 그중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계층,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이야기까지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눈들이 '백화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으면서 요즘 쓰여진 작품을 읽는 것처럼 그가 말하고자 하는 프랑스 사회상은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대기업과 소상인들의 싸움은 멀티 플랙스 같은 복합 건물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의 힘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자본주의를 통해 상인들은 깨닫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욕망이 터진 동시에 소상인들의 밥줄이 사라진 계기도 동시에 제공해 준다.

 

전체적으로 그의 이야기는 동화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상업성과 사람들의 욕망을 요리 할 수 있는 그들의 사업을 통해 그들이 만드는 백화점의 구조와 그들이 파는 물건들에 대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밥줄을 점점 잃어가면서 분노하게 되는 시선들이 얽혀가는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지 알게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위에서 언급했던 두 책과 함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만난다면 우리가 늘 동경하고 꿈꾸는 세계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가 되면서 시공간을 지나 변함없이 누군가에는 환한 빛이, 누군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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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한옥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뾰족뾰족하고 유럽풍의 창이 나있는 집을 좋아한다. 늦은밤, 창에 비쳐진 불빛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불빛이 모이면 마치 화려한 샹글리에를 켜높은 것처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느껴졌다. 조안 해리스의 <젠틀맨 & 플레이어>는 제목만큼이나 표지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마치 정전이 된 것 같은 마을 속에 오직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뫼비우스띠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체스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왜 이렇게 표지를 디자인 했을까 할 정도로 이 책의 느낌과 잘 맞아 떨어진다.

 

계급의 차이에 대한 소설을 몇번 접해보긴 했지만 이처럼 냉소적이며, 엘리트주의와 주인공이 느끼는 이질감, 쾌감, 타인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문체를 접해보지 못했다. 영화를 처음 볼 때 낯선 이질감과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되었다. 오래된 전통의 세인트 오즈 월드가 어린시절 하층민이었던 스나이드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성인이 된 스나이드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곳에 첫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가장 고지식한 집단인 학교를 대상으로 그녀의 욕망이 시작되고 서서히 무너뜨릴 수 없는 아성을 깨트려버리는 위험한 일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책은 시종인관 타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감정이 배제되어 있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글도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감정이 배제된 이성적인 모습, 기계 같지만 자신에게도 냉철한 모습의 글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의 영향인지, 아니면 요즘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그런쪽으로 흘러가기에 나 또한 그 시류에 이끌려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차가운 문체에 이끌리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 조안 해리스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그녀의 경험담이 묻어나는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와 더불어 견고한 성처럼 틀안에서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들의 성격이 묻어나는 그들의 모습을 숨가쁘게 그려내고 있었다. 체스를 연상시키는 권력에 대한 욕망, 침범할 수 없는 엘리트 의식이 그들의 머릿속에 팽배해있고, 그들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사람이거나, 계급이라면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간극을 소설에서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조선시대나 왕과 왕비, 기사가 살고 있는 중세시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현대에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를 조안 해리스는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고 주인공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고 들어가 그들을 흠집내려 하고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위험한 게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이 소설은 스릴러를 결합해 더욱더 밀착력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 더욱더 견고해지는 틈바구니에서 스나이드는 어떻게 그것을 끊어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을 읽고 나면 속시원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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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모던 클래식 52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슴도치의 우아함>으로 유명한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의 신작 <맛>은 제목만큼이나 심플한 표지, 얇은 두께로 시선을 사로 잡는다. 티비를 틀면 각가지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듯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을 저자는 어떻게 표현할까. 미각, 냄새,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산해진미들이 마구 펼쳐지겠지 라는 추측과 달리 <맛>은 주인공의 삶을 다룬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인생 최고의 맛을 찾는다'지만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린 맛을 찾으려면 결국 자신이 먹었던,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먹는 것'을 탐하고, 그 영양분으로 인해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곧 잘 먹기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건지? 라고 묻지만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라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평가인 그는 어느날, 단 이틀 밖에 살지 못한다. '맛'이라면 최고로 평가하는 그가, 그의 입을 통해 품평하고, 글을 통해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런 그가 돌연 남은 여생을 기억 속에 잊혀져 버린 맛을 찾아 떠났다.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오늘 내가 찾으려 애쓰는 무언가는 아마도 이 대비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단순하고 강한 고기의 노골적인 맛과 필요 이상의 탐식에 공모한 달콤한 맛 사이의 놀라운 대비. 예민한 포식 종족인 인간이 지닌 모든 인간성의 역사가 탕헤르에서의 이 식사로 요약되며 반대로 인간성의 역사는 이 식사에서 쾌락의 기이한 능력을 설명해 준다. - p.26

신의 영역이었던 '불'을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전해 받은 인간은 그것으로 위해 많은 것을 영위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동안 날 것으로 먹었던 것을 익혀먹고, 끓여먹고, 다양한 재료를 어울러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예전에 먹었던 '맛' 을 떠올리면 절로 침이 흐르는 것처럼 누군가로 인해 먹었던 추억과 음식의 풍미, 식감으로 전해지던 맛. 누군가를 통해 먹던  그 맛의 매력. 밥의 매력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지겹지 않은 어머니의 손맛, 20년 동안 단골이었던 마르케의 레스토랑, 이모의 채소밭, 삼촌의 식탁,할아버지의 포도주 등 삶을 살아오면서 먹었던 수 많은 맛 중에서 잊지 않았던 '맛'들을 기억하며 미식가의 그것처럼 맛의로드를 떠나, 삶의 종착역을 향한다. 자신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삶들을 돌이켜보고, 그의 지인들, 가장 가까웠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얽힌다.
 
나는 졌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을, 아버지 없는 내 어린 시절의 메마름이 터질 듯한 새로운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었을 이 가슴 아픈 일화를 머릿속에서, 꿈속에서 얼마나 되풀이했던가······. 슬로우 모션처럼 순간들은 좌절된 욕망의 고통스러운 화폭 위에 차례로 나타난다. 질문, 대답, 기다림, 그리고 전멸. 그의 눈속에서 빛은 타올랐을 때만큼이나 빨리 꺼진다. - p.22

왕처럼 맛을 풍미했던 한 요리비평가의 오만한, 미움, 욕망, 호기심, 싫증, 애정, 미움......음식에 쓰이는 재료처럼 그가 삶에서 남기고 간 흔적들의 감정들과 그로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짧은 시선은 다채롭게 그가 지내왔던 여정들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을 찍듯, 촤락촤락 뷰파인더가 넘어가는 소리는, 째깍이는 시계처럼 그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으며 최고의 맛을 추구해온 왕은 오만하게도 자신이 추구하는 맛 이외에 느껴지는 소박함, 알싸한 아픔을 느끼지 못한채 찬란하고, 화려함, 자신의 혀를 통해 느껴지는 미각만을 믿고 생활해왔다. 그런 그가 찾은 최고의 맛은 기억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찾는다.

어린 날의 맛.

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향토(terroir)'라는 단어만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서야 '향토'가 어린 시절이나 마찬가지인 신화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가 땅에 뿌리박은 전통의 세계와 지방색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공포를 맛보기 이전에 존재하던 결코 끝나지 않을 마술적인 몇 해를 견고하게 만들고 객관화하고자 하기 때문임을 안다. 흐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세계가 영속하기를 바라는 맹렬한 의지만이 '향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지나간 모든 인생이며 조상들의 의례와 토속 음식 속에 침전된 맛과 냄새와 흩어진 향기의 집합체이며 모래로 금을, 시간으로 영원을 만들려 했던 환상의 기억을 담은 도가니다. - p.58

이십 몇년을 살아가면서 먹었던 수 많은 맛 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음식? 맛이 있다. 처음으로 먹었던 석류, 달짝지근한 감초, 은은한 박하향이 나는 은단. 이 세가지 맛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위의 세가지 맛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통해 맛보게 되었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위해 남겨주시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석류를 따서 먹었던 새콤하고 달콤한 맛은 어떤 석류를 먹어봐도 그 옛날 먹었던 석류의 느낌과는 이질적으로 달랐다. 시중에서 파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석류를 구분하고, 중국산 감초를 감별하는 것처럼 한 번 먹었지만 잊을 수 없는 맛이 존재한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글을 읽고 나서 이야기에 공감했던 이유는 사람은 결국 처음 느꼈던 '맛'을 잊지 못하고, 삶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행보는 결국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찬란했던 음식일지라도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순박하고, 소박했던 것을 찾기 때문이다. 일종의 어머니의 손맛같은 것이다.

뮈리엘 바르베리가 외국인이 아닌 우리나라 소설가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물음이 들었을만큼 <맛>은 서양의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다른 책과 다른 각주가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라 새로웠다. 요리책을 보는 것처럼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 찾는 단 한가지 맛을 통해 찾는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행보는 여타의 소설과 다른 맛이 느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과 인간의 삶이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그녀는 뗄 수 없는 그것들을 단순하게, 때로는 복잡하게 어우른다. 읽을 때 보다는, 읽고 나서 리뷰를 쓰면서 더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이 <맛>의 묘미. 먹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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