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는 자아와 타자의 비대칭적 차이와 더불어 시작한다. 윤리적 또는 도덕적인 것은 서로에 대한 적절한 질서지음 또는 서열 매김에 기초한다. - P39

아이히만은 타인 또는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또한 ‘행위‘할 능력, 또는 더 잘 말하자면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도 없다. 예컨대 그에게는 어떤 것을 말하기‘란 언어놀이를 하는 것과 동일했다. - P40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 P41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의 윤리를 실천할 수 없었다. - P41

폭력은 차이를 지우려 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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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전설은 언제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으로 인하여 실패작이라는 혐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신비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5%의 미완성으로 그 신비로움을 더해가듯이 석불사 석굴의 세 동강 난 천장덮개돌은 석굴의 난공사를 더욱 실감케 해주는 아름다운 상처인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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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남김없이 알고자 하는가
본디 바탕이란 있지 않은 것
이러한 법의 성품을 이해한다면
곧바로 노사자불을 보리라 - P152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수 없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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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와 말, 이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인간의 복수성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인간들이 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은 서로 그리고 자신들에 앞서 왔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또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들 다음에 올 사람들의 필요를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인간들이 다르지 않다면 현재 존재하고 과거에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과 구별되는 각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하거나 행위를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 P28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의 행위의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료들과 어울리게 해주고, 공동의 행위를 하게 해주며, 그 재능―새로운 어떤 일을 착수하는 능력 (새로운 것의 시작으로서의 탄생)이 없었더라면 마음의 욕망은 물론이고 정신의 생각으로도 결코 들지 않았을 일과 목표를 위해 나서게 해준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행위한다는 것은 탄생성의 조건에 대해 인간적인 응답을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탄생을 통해 본질적으로 복수적으로 존재하는 신참자로서 또 시작으로서 이 세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탄생의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모든 ‘행위‘는 단순지 행태나 도착적 행동에 불과할 것이다. - P30

인간은 어머니가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날에 단 한 차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탄생을 해야할 의무를 부여한다. - P31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각각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출생시키고 세계를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변형시킨다. 더욱이 이러한 산출은 항상 이미 공동의 프로젝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복수적인 세계,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1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 P37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 - P39

‘차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가 없다고 아렌트가 생각한 것은 옳았다. 그렇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만일 우리 모두가 똑같다면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차이가 없다면 결국 인간의 복수성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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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와 민족을 넘어서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인간됨‘ (humanness)의 원리가 존재한다 - P17

아렌트는 인간성이 마치 인간의 본질로서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을 거부한다. - P18

긍정적 의미의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일상적 믿음이 잘 드러나는 예인 양심의 문제에서도 아렌트는 회의적이었다. 양심에 바탕을 둔 시민 불복종의 경우에도 아렌트는 양심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증될 수 있는 정도의 보편성을 지닌다는 믿음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 P18

아렌트에게는 양심이 인간에게 본연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적 여건에 이미 제약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이상에 대해서도 그것이 구체적 삶과 충돌을 한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렌트는 분명히 말했다. - P19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106쪽). 그런데 세 번째의 무능성은 곧 판단의 무능성 (inability to judge)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단 능력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판단이란 사유와 의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아렌트는 이해하고 있다. - P20

말은 우리를 현실과 연결시켜준다. 나치스가 언어규칙을 만든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말은 현실의 힘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히만이 상투어를 사용하고 판사들이 그의 말에서 공허감을느꼈을 때, 판사들이 그에게서 바란 것은 사실에 충실한 언어였다. 공허하다는 것은 현실의 힘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의식에 가득 찬 상투어들은 아이히만이 현실의 힘을 느끼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아이히만으로 하여금 심지어 죽음의 힘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 P22

말의 유용성은 말이 현실을 알게 하여 사람에게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아렌트는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 P22

상투어나 관용어 등은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실-말-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써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P22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야기는 이론과는 달리 현실의 힘을 반영하는 일상 언어를 사용한다. 일상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자격을 갖춘다. 구체적인 현실의 힘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 설득력을 가질 자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구체와 보편의 양 측면의 힘을 동시에 반영할 수 있다. - P23

아렌트에게 있어서 정치적, 법적 윤리적 이론화 작업의 주요 범주는 ‘인간의 복수성‘ (human plurality)" 또는 다원성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의 복수성이 없다면 인류 또는 인간성이란 말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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