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P138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 P141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 P141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 P149

그러나 베로니카는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멀찍이서 그녀를 알아보았다. 키와 자세만 보고 금세 알아보았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에 자세의 이미지가 늘 따라붙는다는 건 묘한 일 아닌가. - P153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58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61

그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나는 우리 셋에 대해, 그리고 시간의 수많은 역설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람은 가장 젊고 민감한 시절에 상처도 가장 많이 받는다. 반면 끓어오르던 피가 서서히 잦아들고, 감정이 전보다 무뎌지면서 더 든든히 무장을 하고 상처를 견딜 줄 알게 되면,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운신하게 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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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에게 첫사랑의 경험은, 비록 좋게 끝나지 않는다 해도 -어쩌면 그럴 때 더더욱- 삶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삶의 권리를 지지하는 실체가 이곳에 있다는 희망을 준다. - P92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 P94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얼마간은 성취를, 얼마간은 실망을 맛보는 것. - P99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 P99

젊은 세대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려는 마음은 둘째치고 의무감조차 없다. - P107

혼자 살다보면 자기연민과 망상에 시달릴 때가 있다. - P107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리해지지도 않고, 뭔가에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그 사실을 무시해버린다. - P109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 - P118

정리정돈은 노년기에 가장 수수한 충족감을 안겨주는 소일거리 중 하나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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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멀리 내다보는 관점이 가장 의문스러워 보일 때가 종종 있지 - P36

그리고 정신 상태는 행위로부터 추론될 수도 있고. 폭군이 적을 제거하라는 서신을 친필로 보내는 법이 거의 없듯이 - P36

그러나 조 헌트 영감이 에이드리언과 논쟁을 벌이면서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헨리 8세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 P79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 P79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 P80

관계란 무언가의 증거로서 복잡함을 요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대체 무엇에 대한 증거인가? 깊이? 진지함? 그럼에도, 깊이나 진지함을 바치지 않고도 관계가 정말로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 있다는 건 맹세코 사실이다. - P83

그 시절 우리는 자살이 모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임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여겼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노망이 났을 때 취할 수 있는 논리적인 행위, 고통에 맞서서, 혹은 다른 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취하는 영웅적 행위, 실연에 격노해 감행하는 매혹적인 행위(역시나 등장하는 ‘위대한 문학‘). 이 범주 중 어떤 것에도 롭슨의 추레한 이류 행위를 대입한 적은 없었다. - P86

에이드리언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논지가 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 P86

법의 관점에서 정의할 때, 자살한 사람은 실성한 것이다. 최소한 자살을 감행하는 시점에는 그렇다. 법과 사회와 종교 모두 건전하고 건강한 상태에서 사람이 자살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어쩌면 그런 권위의 요체들은 검시관을 부리고 있는 국가의 관할하에 놓인 삶의 본질과 가치가 자살의 논지로 인해 침범당할까 두려워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일시적으로 실성했다는 선고를 받은 이상, 자살하려는 이유 또한 실성한 것으로 간주될 게 아닌가.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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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 P12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 P12

에이드리언은 원칙이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관념에 근거해 우리에게 사유를 인생에 적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했다. - P22

그들은 사춘기의 우정이 갖는 막역한 속성과, 기차에서 마주치는 이방인들의 야수적인 행태와, 싹수가 노란 여자의 유혹에 대해 우리 대신 겁을 먹었다. 그들의 그 노심초사는 우리의 경험을 얼마나 까마득하게 앞서 있었던가. - P24

병적인 불신은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며, 성장하면서 벗어던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는 듯이. 선생들이나 부모들은 자기들에게도 어린 시절이란 게 존재했음을 짜증이 날 정도로 들먹이면서, 그러니까 내 말을 들으란 식이었다. 그것도 다 한때야, 라고 그들은 우기곤 했다. 언젠가는 그런 데서 벗어나게 될 거야. 현실이 뭔지, 현실성이 뭔지, 인생으로부터 깨우치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때 우리는 소싯적의 한 순간이라도 그들에게 우리 같은 때가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투항해버린 연장자들보다는 우리가 삶-그리고 진실과 도덕과 예술-을 더 확실하게 포착했다고 믿었다. - P25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
"윤리학과 정치학과 미학과 실재의 본질과 그 밖의 다른 모든 걸 빼면 말이지." 앨릭스의 재기어린 반격엔 뼈가 있었다.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 다른 모든 게 걸린 근본적인 문제인거지." - P29

인생엔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 P30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가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필 딕슨 선생이 우리에게 해준 말에 따르면 그랬다. 그리고 이제까지 소설과 무관하면서도 그에 준하는 삶을 산 사람은 -롭슨을 제외하면-에이드리언이 유일했다. - P31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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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안에 받쳐질 수 없는 법이다. - P287

어떤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나는 늘 앎과 알지 못함의 사이에 난 틈에, 정보와 이해력 사이에 난 틈에 버려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다. - P288

지식과 본능이 다툼을 벌이면 늘 본능이 승리한다. - P288

아마도 나는 그 노래를 열 살 또는 열한 살이던 해에 내가 끼고 살던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들었던 것 같다. 그 나이는 언어가 고착되는 나이, 시와 노래 가사와 주술적인 기도가 혈관 속 혈액의 솟구침과 통합되는 나이다. - P291

이제 나는 나이가 들어서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장례 지냈고, 상실은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일 때가 너무 많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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