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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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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고자 끝없는 학대와 통제를 자행한 부모. 그들은 과연 인간일까
감옥에서 탈출한 모드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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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사람은 무엇에든지 익숙해지는 법이거든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거든

문명이란 전달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만일 뭔가를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어.

누구나 뭐가 됐든 문젯거리를 끌어안고 사는 법이니까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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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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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고생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

분명히 페리라는 것은 좀 불가사의한 느낌을 주는 교통수단이다. 비행기를 탔다가 내리면 ‘자아, 이곳은 이제 다른 장소다‘ 하는 단호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페리라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고나서 그곳에 실제로 적응하기까지는 기묘할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걸린다.
그리고 거기에는(특히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강한데),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일종의 서글픔이 따라다니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런 걸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우리처럼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인간은 자신의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다이어트든 신체 단련이든, 자신의 신체를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해서 방향성을 정해 자기 관리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의 고유한 체계나 철학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그 방법이나 철학이 보편적으로 타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어떤 조직에도 속하는 일 없이 혼자서 꾸준히 살아왔지만, 그 20여년 동안에 몸으로 터득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이 조직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물론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이 조직에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어수룩하지 않다. 분명히 일시적으로는 개인이 조직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조직이 승리를 거두고야 만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철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두는 것이 좋다고(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낫다)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청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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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것은 대체로 검소하고 과묵한 작업이다. 일찍이 조이스 캐럴 오츠가 "조용하고 단정하게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런데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불가사의한 체험이다. 이를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과는 인생 그 자체의 색깔도 조금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종교적인 체험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뭔가 인간 존재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이따금 자신을 알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 보려는 내재된 욕망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단편소설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깊이 의존해오는 압도적인 것,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것은-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지만- 없다. 그만큼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반반‘을 차지하는 면도 장편소설에 비하면 훨씬 적다.

예술이라는 것은 다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 작품의 작품성이 높다는 것과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이 불을 댕기게 한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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