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이 영화는 가상 다큐멘터리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랬죠…….” 주름살 짙은 사람들의 회상 속에는 먼지가 많아 천으로 입을 가리던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배경이 미국이니 서부개척 시대의 이야긴가 싶기도 하다. 그들도 말을 달릴 때나 광산에 들어갈 때는 입을 가렸다. 멋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총잡이들의 대결에서는 입을 가리는 천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주름이 짙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안에서 대결하려면 때때로 입을 가리는 일이 필요할 것이었다. 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오로지 ‘옥수수’만 재배 가능한 환경, 학교에서 우주 탐사를 가르치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 속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인터스텔라>에서 서두는 마치 관객에게 내미는 복선과 같다. 작가와 감독은 조각보 중 가운데 조각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한 귀퉁이에서 천천히 바느질을 시작한다. 소재는 같지만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하나 둘 연결되기 시작한다.
 
 


플랜A vs 플랜B
병충해 입은 곡물들은 베어내지 않고 태운다. 불에 탄 토양은 메말라 바람이 불면 모래 폭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어른이 된 머피가 사는 지구는 이제 벗어나야만 할 곳이 되었다. 호호 할아버지 브랜든 박사는 숨을 거두기 전 머피에게 고백한다. “플랜A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플랜A는 지구인들은 새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것, 플랜B는 선발대가 정착해 세포 상태의 지구 생물들을 다시 키우는 것이다. 할아버지 브랜든은 자신과 오빠를 위해 아버지를 우주로 보낸다고 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플랜A가 없는데 플랜B에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 가족이 아프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생판 모르는 지구 반대편 사람이 병으로 죽었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각한 전염병이나 잔혹한 살인을 당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내게 친숙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 흘릴 뿐, 타인의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세포형태로 다른 행성에서 자라나는 생명체에 나는 많은 애착을 느끼진 못할 것 같다. 무조건적으로 후대를 보존해야 할 만큼 인류는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존재일까? 설사 아무 연고도 없는 생명체들을 사랑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면 동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플랜C를 짜볼까.


플랜C
플랜C는 지구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르몽드 세계사의 기온상승 곡선을 보면 10만 년에 한 번씩 지구의 기온은 기온상승 임계선에 닿았다 온도가 떨어지며 빙하기를 맞이한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1만 년 전쯤 기온상승 임계선에 다다르고 이제 슬슬 기온이 떨어지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던 것이 1만 년 전부터 오르락 내리락이다. 이 사항을 두고 책에서는 기온이 2℃ 상승한 시점이 돌이킬 수 없는 임계지점이므로 도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극단적으로 기상이 급변한 지구는 엘니뇨의 발생 빈도가 높아졌으며, 유럽은 폭염에 휩싸이고, 아시아와 미국에 열대성 폭풍이 유례없이 자주 발생했다고도 밝히고 있다. 또한 기온 변화와 그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생물의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예전에 비해 비이상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나, 온도 면에서 보면 아직 최고점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밀물과 썰물 같은 지구의 자연적인 흐름일지도 모른다. 온난화 자체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온난화를 막으려는 우리가 ‘지구 비정상 추진위원회’ 소속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산화탄소 규제 정책을 펴는 것에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높아진 해수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수중도시를 건설하고, 인간이 병충해 입은 곡물도 먹을 수 있게 변하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지 모른다.
 
*르몽드 세계사(휴머니스트, 2008)


​대작의 괴로움
대작의 괴로움은 한시도 쉬지 않고 관객을 몰아붙인다는 점이다. 두 번 혹은 세 번 봐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가끔 등장한다. 감독은 이것도 보여줘야 하고 저것도 인식시켜야 하며, 관객들은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강박증에 빠진다. 그에 반해 <인터스텔라>는 이야기를 되짚어 볼 수 있을만한 간극이 있다. 우주를 유영하는 동안, 파도가 몰아치는 동안, 곡식이 불에 타는 동안……. 이 시간들 속에서 관객들은 다음에 올 장면을 기다리며 있었던 일들을 곱씹는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을 부릅떴던 <인셉션>의 기억은 이 영화에 없다. 여백의 미를 채운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관객은 어느새 철학의 세계를 유영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 박사의 도킹 장면에서 이유는 말해주지 않은 채 ‘혼자서 도킹하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해 나중에는 잠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어째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까? 그가 도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주선이 파괴될지도 모르며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시도를 멈출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계속 살아있으면 이후의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서 였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러나 쿠퍼나 브랜든이 위험 요소에 대해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가 이야기 전개에 문제를 주는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만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쿠퍼를 죽이려 했을 정도로 안하무인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해서 들려주는 말이라고 기껍게 들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거짓말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무시하면서 계속 도킹을 시도했으리라. 이야기에 개연성이 사라진 순간, 돌멩이가 나타나 매끄러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영화 속 결정적인 장면을 고르라면 쿠퍼가 블랙홀에 들어가서 만나는 5차원 큐브 세계다. 큐브 속에는 인류를 구할 재원인 머피의 방이 시시각각 펼쳐져있다. 쿠퍼는 그 중에서 자신이 머피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방에 도달해 신호를 전달한다. ‘STAY’ 처음에 말한 내용에 부합해 있고, 짧은 시간 내에 시계에 암호를 심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머피는 ‘여러 번’ 책이 떨어지는 현상을 겪었다고 말했지만, 쿠퍼가 큐브 속에서 책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뿐이다. 편집에서 삭제된 걸까, 장면의 극대화일까, 러닝타임이 문제였을까? 머피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책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두어 번 보여주는데 5초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 과거의 유령 얘기는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닌가?(내가 놓친 부분이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째서 이런 소소한 일이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앤딩크래딧을 끝까지 보고 나오는 마지막 관객이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성취되지 못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정상인들이 열대여섯 명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일곱 명 정도를 쿨하게 남겨두고 영화관을 나왔다. ‘한번 여행을 떠난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혼자 걸어 나오는 나를 불쌍히 여길 때, 영화관 복도를 걸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배긴스도 프로도도 모험에서 돌아오지만 다시 모험을 떠난다. 샘같이 모험에서 돌아와 정착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지 모른다. <반지의 제왕>만을 예로 들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 ‘여행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배낭을 짊어지고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가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꾼다. 세상에 없는 좋은 장소. 주변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륙, 다른 사회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다녔다면 사람들은 이제 지구를 나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 같다. 에드먼드가 발견한 별의 환경이 악화되면 인류는 다시 모험을 떠나면 되는 걸까. 제 3의 별이 오염되면 또 다른 별을 찾으면 만사형통이다. 우리는 태생부터 수렵과 채집을 일삼는 유목민의 후손이니 어쩌면,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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