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오래전 봤던 일본드라마가 보고 싶었던 것이, 리메이크작이 나온다고 해서인지 인간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던 시기여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몇 주 전부터 <라이어 게임>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는 기괴한 가면을 쓰고 나오는 게임 딜러 때문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지만(감상 시간은 주로 밤이었고, 얼굴이 반씩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 가면은 처음 보면 좀 두근두근 한다) 다시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귀여운 가면이라며 웃어넘기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다시 봐서 놀라운 점은 칸자키 나오(주인공. 인간은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며 항상 바보 소리를 듣는다)가 진짜 바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 기억 속에서 모든 문제는 아키야마(역시 주인공. 전직 사기꾼이자 심리학 교수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나오짱의 백마 탄 기사다)가 다 풀었었는데, 다시 보니 나오 짱 혼자서 푼 문제도 있고, 절대 바보로서는 생각해내지 못할 계산식들도 종종 사용한다.(물론 그런 점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퍼주기 때문에 바보라고 불린다) 내 기억의 어떤 부분이 그릇된 정보를 저장했는지, 알 길이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시즌2를 반 정도 본 이후의 일이었다. 클릭 클릭,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 일본 드라마보다 출연진의 외관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기획의도가 역시 마음에 걸렸다.(물론 시청자 각자의 해석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결정되지만 글을 쓰겠다는 포부를 품은 나로서는 어떤 의도로 만들기 시작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여주인공을 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기로 했다’ 이 부분을 읽고, 눈을 깜박인 후 다시 한 번 읽을 수밖에 없었다.(애석하게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주체성이 결여된 인물이 아니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히려 주체성이 너무 강해 평면적인 인물의 전형이라 해도 될 정도다. 드라마에서 그녀를 ‘바보’라고 부르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은 있었던 가 고민하게 될 정도로 비웃음을 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심지 굳은 인물이다.


1, 2회를 봤는데 리메이크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일본의 <라이어 게임>은 게임 대결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 풀어나가 마치 정제된 심리학 실험처럼 드라마 속 세상이 또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각 게임마다 세상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게임이 진행되어 그렇다고 본다. 리메이크작은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나와야 하니 이런 생각은 줄어드리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라이어 게임>은 시청률에 목메는 방송국의 행태와 성공하고 싶은 증권가 애널리스트, 신체포기각서까지 들고 나오는 사채업자들을 등장시키며 냉엄한 현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여주인공인 남다정(김소은 분)이 하 박사(이상윤 분)에게 왜 처음 본 사이에 반말을 쓰냐고 한다던가, 스스로 아버지의 빚을 갚기로 결심해서 게임에 했다는 것 등으로 ‘주체적’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주체성을 돋보이게 하려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기만한’ 인물이 아니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지만 ‘지혜로워서’ 게임에서 이기고 남을 여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그녀의 변신은 일본드라마에선 시즌2 중반을 넘겨서야 나오지만 시즌2를 만들지 않는 이상 극의 반을 넘기 전에는 꼭 나와야 할 캐릭터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그래 뭐, 내 생각이다) 칸자키 나오가 주인공인 이유는 게임을 잘 해서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선을 표방하는 ‘칸자키 나오’나 인간의 욕망을 조종하려 하는 신자유주의 축소판 같은 ‘라이어게임 사무국’이던, 대칭을 이루는 ‘남다정’과 ‘방송국’이든 둘 다 결국 극과 극이다. ‘인간의 속성은 정말 극점에 존재할까?’ 동물과 신 사이, 선과 악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득을 향해 끊임없는 배신을 일삼는 후쿠나가 유지(자기잇속만 챙기는 배신의 캐릭터에서 자기잇속을 챙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절대선과 영합하는 캐릭터로 변모)의 변화가 극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착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악보다 지혜로운 선이 필요하다. 두 번째 보면서야 비로소 보인 그의 존재 의미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낼까?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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