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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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스릴러/미스터리 장르의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축복과도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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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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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로보텀(Michael Robotham)"이 2008년에 발표한 "산산이 부서진 남자(Shatter)"입니다. 호주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마이클 로보텀"은 영국으로 넘어가서 대필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4년 데뷔작 "용의자(The Suspect)"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이제는 호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범죄소설가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 "조 올로클린"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엄밀히 말하자면 네 번째 작품이 될 수도 있는)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현수교 위에 한 여인이 나체 상태로 투신을 하려고 합니다. 경찰은 여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급히 대학교로 전문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새롭게 강의를 시작하게 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를 데리고 현수교로 갑니다. 얼떨결에 경찰을 따라가게 된 "조"는 우선 투신자살 시도를 하는 여인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다가 갑니다. 하지만 나체의 여인은 현수교 난간위에 서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조"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조"에게 '당신은 이해못해'라는 말을 남기고 나체의 여인은 몸을 날립니다.


왜 자학을 하는 걸까? 어째서 벌거벗고 있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설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진다.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하고 싶은 걸까? 어쩌면 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을 잃었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벌을 줘서 속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협박일 수도 있다. '당신이 나를 버리면 죽어버릴 거예요'라는 식의. 벼랑 끝에 몰린 여자들의 최후의 수단.

아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다.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10대 아이들이라면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여자는 허벅지가 투실하고 엉덩이가 셀룰라이트로 우둘투둘한, 중년에 접어드는 여성이다. 거기다 제왕절개를 했던 흉터 자국도 보인다. 아이를 낳은 어엿한 어머니라는 얘기다.


클리프턴 현수교의 안전망 밖으로 한 여인이 빨간 하이힐만 신은 알몸으로 서 있습니다.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에이번 강에 투신자살을 하려는 그 여인을 막기 위해, 바스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시작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중제자로 불려옵니다.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조"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누군가와의 통화에만 집중 하는 그 여인의 배에는 '걸레'라는 단어가 립스틱으로 쓰여져 있고, 통화를 끝낸 그 여인은 "조"가 어찌해보기도 전에 에이번 강으로 뛰어내립니다. 자살을 막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던 "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얼마 뒤, 한 소녀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현수교에서 뛰어내린 여자 "크리스틴 윌러"의 딸 이며, 자신의 엄마가 자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니, 최소한 현수교에서 투신자살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엄마 "크리스틴"은 심한 고소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조"는 자신의 친구이자 은퇴한 형사 "빈센트 루이츠"에게 도움을 청해서 함께 조사를 시작하고, 자살한 "크리스틴"이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뛰어내렸을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몸에 부츠만 신은 채 죽어있는 또 다른 여인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 전까지 "조"가 제시한 가능성을 묵살하던 경찰들도 두 여인의 죽음의 연관성을 알아차리고 수사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빈센트가 강력범죄 수사의 요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용의자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와 정반대다. 나는 피해자를 알아감으로써 용의자도 알아낸다.

살인범들이 반드시 한결같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틴 윌러는 성적 매력이 넘쳐나거나 외모로 남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타입은 아니었을 것이다. 옷을 보수적으로 입었고, 유흥을 즐기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여자가 강압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무슨 말을 했을까? 누구에게 의지하려 했을까?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물리적 힘을 전혀 가하지 않고 말로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부수어 버리는 살인자와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사람들을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다룬 심리 스릴러입니다. 실제로 전화통화만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협박하고 조종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범인은 자신의 특기와 재주들을 총 동원해서 전화통화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박살냅니다. 한 사람의 동선과 주변을 전부 파악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 뒤,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압박을 가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범인의 행동과 수법은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을 미련하게 생각했던 저 조차도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긴다면 나도 당할 수 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합니다. 거기다 이런 짓을 벌인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라면 정말 위험한 살인방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더 증거를 찾기도 어려워지고 범행을 입증하기도 힘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부분이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조금만 눈치 있는 분들이시라면 50페이지 정도 만에 대충 짐작하실 내용들입니다. 이 작품은 '누가', '어떻게' 보다 '왜?'가 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부수어 파멸시키는 범인을 뒤쫓는 우리의 주인공 "조 올로클린"은 한때 런던에서 잘 나가던 임상심리학자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부러워할 미인이자 멋진 성격의 완벽한 부인과 딸이 있는 행복한 가정생활과 심리학자로서의 명성을 동시에 누리려고 할 때쯤 파킨슨 병이라는 불청객의 방문을 받은 불운한 남자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의 환자가 그의 인생과 가족을 파멸시키려는 일이 발생하고, 간신히 위험을 넘긴 "조"는 요양 겸 새출발을 위해 런던에서 서머싯으로 이사를 옵니다. 아픈"조"를 대신해서 그의 아내 "줄리안"이 직장생활을 하고 "조"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하다가 바스 대학에 시간강사 자리가 나서 일을 시작한 첫 날, 기묘한 자살사건에 얽히면서 "조"는 또 다시 위험천만한 범죄에 얽히고 맙니다. 멋대로 경련이 일어나는 팔, 굳어지는 다리, 때로는 사랑하는 이에게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게 굳어지는 얼굴근육 등으로 힘겨워 하던 "조"는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인간임을 느끼며 사건에 집착하지만 범죄 희생자들을 조사해서 범인에게 점점 다가갈 수 록 "조" 자신도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간과해버립니다. 결국 범인도, 피해자도, 그리고 그들과 얽혀있는 다른 사람들도 부서져 버립니다.


"조, 나는 사람이 희망을 모두 잃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긍지, 기대, 믿음, 욕망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지배해. 완전히 장악해버리지.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는 아니야. 그렇다고 심장이 저며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소리도 아니지. 그건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아연히 상상하게 되는 소리야. 가장 강력한 의지가 무너져내리고,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어오는 소리. 너무나 높은 고음이라서 지옥의 사냥개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네게도 그 소리가 들리나?"


호주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중 한명인 "마이클 로보텀"이 쓴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며, 작가가 창조한 또 다른 캐릭터 "빈센트 루이츠"가 나오는 다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은 서로가 메인 캐릭터가 아닐 때에는 조력자로서 작품에 등장합니다. 파킨슨 병에 걸린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과는 반대로 전직 런던경찰국 형사 "빈센트 루이츠"는 시골 출신의 구식 형사입니다. 엿같이 행동하는 범죄자를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발로 뛰는 수사에 최적인 거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 둘은 첫 작품인 "용의자"에서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수사관으로 처음 만나서 시작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The Drowning Man/Lost"이후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그 후로 번갈아 가며 메인 캐릭터가 되는데 "빈센트 루이츠"가 등장하는 "Bombproof""The Wreckage" 등은 전직 형사라는 캐릭터에 맞게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반면 "조 올로클린"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심리 스릴러가 주를 이룹니다.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도 역시 심리 스릴러인데 단지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에 관한 예리하고 통찰력있는 문장들이 상당히 많아서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더 인기가 많습니다.

 

내 몸이 파킨슨병의 메시지를 처음 보낸 건 4년 전이다. 손으로 적거나 타이프 친 메시지는 아니었고, 부지불식간에 손가락이 이따금씩 꿈틀거리는 식의 신호였다. 유령 같은 비현실적인 움직임이었지만 그림자가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현실이었다. 그게 내 뇌가 정신과 헤어지려 한다는 신호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둘의 이혼 절차는 오랫동안 질질 끌며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재산 분배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일 일도 없는데 말이다.

 

올해,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신작 스탠드언론 "Life or Death"로 그동안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던 CWA 골드대거를 수상한"마이클 로보텀"은 골드대거를 수상한 두 번째 호주 작가가 되었습니다.(첫 번째 작가는 또 다른 호주 출신의 거장 "브로큰 쇼어"의 "피터 템플"입니다.) 호주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시절, "마이클 로보텀"은 당시 호주를 들썩이게 했던 탈주범 "레이먼드 존 데닝"과 우연하게 인연이 닿아 친분을 쌓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기행과 도주, 범죄행각, 체포 그리고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같은 또래인 자신들을 이렇게 다른 길로 가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범죄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고스트라이터로 활동하다 이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 느꼈던 의문들과 인간의 어두운 내면들이 범죄소설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디어는 백지에 연필로 그리는 스케치에 가깝다. 선이 덧그려지고 윤곽이 잡히고 명암이 또렷해지면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난다.

나는 크리스틴 윌러와 실비아 퍼니스를 죽인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범인이 내 마음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상상 속에서 그려나간 가공의 인물이 이제는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 되어 내 귀에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수수께끼도, 허구도 아니다. 나는 그놈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첫 작품 "용의자"가 국내에 출간된 지 거의 십 년이 지나고 절판이 된 지금에서야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가 출간되었는데 다행이도 나머지 작품들인 "Bleed For Me"와 "Say You're Sorry"가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들이 인기를 얻어서 작가의 다른 캐릭터인 "빈센트 루이츠"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나와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몸이 굳어져가는 불치병에 걸린 심리학자와 인간의 내면을 조각조각 부셔서 파멸로 이끄는 범죄자가 벌이는 추격과 심리전을 다룬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정말로 훌륭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기발하지만 설득력 있는 범죄행위를 바탕으로 영리하고 탄탄한 플롯, 예리한 심리묘사, 현실감 넘치는 상황묘사가 합쳐진 일급 스릴러입니다. 단지 범죄뿐 아니라 운명이, 인간이 어떻게 사람들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그 조각들이 어떻게 연쇄반응을 하는지를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추천사 단골 작가가 되신"스티븐 킹"의 추천사가 못 미더우신 분들도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를 읽고 나면 "스티븐 킹" 형님이 비록 추천사를 남발할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실 겁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 전날 밤이나 중요한 약속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로 후회하실 정도로 책에 빨려 들어가게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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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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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또 한명의 범죄문학의 거장인 '그랜드 마스터',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이 1998년에 발표한 살인청부업자 "켈러(Keller)" 시리즈의 첫 작품 "살인해드립니다(Hit Man)"입니다.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는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에피소드 형식의 단편집인데, 이 작품을 포함한 "켈러" 시리즈 다섯 작품들 한 작품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켈러". 그는 직업상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일을 하는 평범한 중년의 독신남입니다. "켈러"의 직업은 살인청부업자입니다. 일 때문에 여러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여러 사항들을 조사를 한 후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 끝나면 다시 혼자서 한가롭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갑니다. 죽여야 할 사람을 제대로 죽이기만 하면 끝나는 단순한 "켈러"의 일들은 가끔씩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냅니다.

 

어쨌든 켈러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이디스의 정확한 논리를 알고 싶었다면 직접 물어봐야 했을 텐데 시간 낭비 같았다. 더 중요한 점은 켈러가 그 여자를 알 기회를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모든 게 엉망이 될 뿐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내를 죽이기 위해 천 킬로미터를 달려간다면, 매 순간 입을 꾹 다문 이방인이 되는 편이 현명했다. 표적이든 의뢰인이든 다른 누구와든 이야기해서 좋을 게 없었다. 할 말이 있다면 말에게 속삭일 수도 있겠지.

 

살인청부업자 "켈러"는 화이트 플레인스의 저택에 사는 노인에게 살인의뢰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 짐을 싸고 죽여 할 대상이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 대상이 있는 곳을 둘러보고 주변을 맴돌며 죽일 방법을 연구합니다. 사고로 위장하거나 자살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그냥 총으로 쏴버리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타깃을 제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리기도 합니다. "켈러"는 살인청부업자로 오래 일 해왔기에 베테랑이지만 상황이 언제나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죽여야 할 대상과 감정적으로 얽히기도 하고, 어설프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상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부수적인 골칫거리들까지 수습하며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짐을 싸서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켈러"의 삶은 출장을 자주 다니는 영업사원이나 다름없습니다. 단지 그가 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일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이미 직업 경력이 생겨 있더군. 그게 사람들을 없애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관심이나 소질은 필요가 없더라고. 할 수만 있으면 돼. 처음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두 번째도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어. 그렇게 스스로를 규정한 후에야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 시작했지. 총, 다른 도구, 무기 없이 발휘하는 기술.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 알아야 할 것들을 말이야.

사실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 고등학교에서 직업에 대해 해주던 말과 달라. 진로는 준비하는 게 아니야. 중간에 우연히 그 일에 대비하게 만든 사건들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로는 자기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거장 "로렌스 블록""켈러" 시리즈 첫 작품인 "살인해드립니다""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부터 "켈러의 은퇴"까지 총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각 단편들은 각자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교묘하게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마치 장편소설 한권을 읽은 듯 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로렌스 블록"은 살인청부업자인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켈러"를 평범하고 흔한 중년의 남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살인이란 그저 직업일 뿐입니다. 작가가 소설 속에 표현하는 살인이나 주인공 "켈러"가 자신의 직업인 살인청부업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켈러"는 뉴욕의 괜찮은 아파트에서 사는 중년의 독신남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라고는 자신의 상사라고 볼 수 있는 화이트 플레인스의 노인과 노인과 "켈러"사이의 연락책이자 이런저런 일들을 대부분 처리하는 실무자인 "도트"뿐입니다. "켈러"는 일반적으로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살인청부업자들처럼 터프하거나 과거의 깊은 상처로 우울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대신 쉽게 감성적이 되고 자주 자기 연민에 빠지는 캐릭터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날 때 마다, 자주 그곳에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사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대상이나 그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며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얽혀서 일을 포기할까 고민도 합니다. 심지어 자연사를 기대하며 시간을 끌어볼 생각도 합니다. 평소에는 궁금해 하지 않던 의뢰인이 누군지, 왜 죽이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하다가도 순식간에 냉정히 사람을 죽이는 "켈러"의 모습만이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가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인정해야겠는데,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는 아마 악당일 것이다. 별로 악당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뉴욕 독신남의 표본 같았다. 혼자 살고,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사 들고 집에 가서 먹고, 세탁물은 빨래방에 가져가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타임스 십자말풀이를 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여자들과 끝이 뻔한 관계를 시작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이 벌거벗은 도시에는 팔백만 가지 이야기가 있었고 대부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으며 그의 이야기도 그랬다. 화이트 플레인스에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받고, 가방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점만 빼면.

반박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악당이다. 사건 종료.

 

범죄문학계의 거장 "로렌스 블록"은 자신의 대표 캐릭터인 무면허 탐정 "매튜 스커더"와는 다른 "켈러"라는 킬러를 창조해서 청부살인이라는 범죄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이지만 이 작품에는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묘사는 거의 없습니다. 살인이란 행위는 짧은 한두 줄의 문장으로 표현되거나 어떤 경우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로렌스 블록"은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이런 삶과 인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물론 죽음도. 그리고 살인이라는 행위도 미화하거나 멋지게 그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켈러"의 이야기와 그의 시선, 감정을 따라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그에게 공감을 하거나 동화되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바로 냉정히 사람을 죽여버리는 "켈러"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의 감정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지극히 하드보일드적인 시선이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가끔 하는 짓이었다. 낯선 도시의 전화번호부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보는 것이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희귀한 이름이 아니다 보니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다른 도시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자기 자신, 진짜 자신을 찾았다.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는 처음 언급한 대로 단편 10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입니다. 그러나 수록된 단편들은 일반적인 미드의 에피소드들처럼 연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단편집들과는 달리 읽고 나면 장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로렌스 블록"은 처음 "켈러"를 창조했을 때만 해도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데, 이미 다섯 편의 "켈러" 시리즈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장편소설인 시리즈 네 번째 작품 "Hit and Run"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편집인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만족감을 느끼게 한 단편집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제가 단편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잘 읽지 않는데 이 시리즈는 국내에 또 출간된다면 무조건 사서 읽을 것 같습니다. 뭐, "로렌스 블록"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이 형님의 글솜씨에 대해 알고 계실테니 그저 사서 읽어 보시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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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파커 시리즈 Parker Series 1
리처드 스타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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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자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Donald E. Westlake)"가 1962년에 필명인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로 발표한 "사냥꾼(The Hunter)"입니다. 이 작품 "사냥꾼"은 범죄문학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캐릭터인 "파커(Parker)"가 처음 등장한 작품으로, 2008년에 발표한 "Dirty Money"까지 총 24편의 시리즈로 이어져 왔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사냥꾼"은 "리 마빈"이 주연한 "포인트 블랭크"와 "멜 깁슨"이 주연한 "페이백"의 원작으로도 유명합니다.


출근길 차량행렬들로 가득한 조지워싱턴다리 위를 한 사내가 걸어갑니다. 구겨진 정장에 구멍난 구두는 그 남자를 더욱 궁색하게 보이게 했지만 야수같은 그의 몸에서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다리 건너편까지 태워주겠다는 운전자의 친절에 욕으로 화답한 후, 끝내 걸어서 뉴욕에 입성한 그 남자는 자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위해 운전면허증을 위조, 은행을 돌아다니며 사기를 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복수해야할 대상 중 한명인 자신의 아내를 찾아냅니다.


"난 수면제를 먹어." 그녀가 웅얼거렸다. "매일 밤 먹어. 약을 안 먹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 계속 당신 생각만 해."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끝장낼까, 그런 생각?"

"아니, 당신이 죽어가던 순간. 그때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수면제를 잔뜩 먹으면 되겠네."

그가 제안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의 범죄자 "파커"는 원래 계획되어 있던 건수가 엎어지고 난후, 우연히 만난 "말 레스닉"이 제안한 불법무기거래 현장 강탈계획에 참여합니다. 제대로 한탕을 끝낸 일당은 돈을 나누고 다음날 각자의 길로 떠나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말"의 계략에 넘어간 "파커"의 아내 "린"이 "파커"를 배신하고 그의 배에 총을 쏩니다. 몇 개월 후, 운 좋게 살아남은 "파커"는 아내 "린"과 "말"에게 복수하기 위해 뉴욕으로 옵니다. 우선 "린"을 찾아내서 그녀를 이용해 "말"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던 "파커"의 계획은 "린"의 죽음으로 살짝 틀어져 버립니다. 한편, 죽은 줄만 알았던 "파커"가 살아서 뉴욕으로 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말"은 자신이 속한 조직 아웃핏에 도움을 청하지만, 조직은 혼자 해결하라는 결정을 내리고 "말"은 조직원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호텔에서도 나가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안그래도 별것 아닌 남자였던 "말"은 조직의 보호구역을 잠시 떠나게 되어 더욱 쉬운 "파커"의 먹잇감이 되고, "말"을 찾아낸 순간 "파커"는 갑자기 "말"이 강탈해서 아웃핏에 상납한 8만 달러 중에 자신의 몫 4만5천 달러도 포함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억하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우리에겐 세 가지 대안이 있네." 그가 손가락을 꼽으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를 돕거나, 혼자 해결하게 내버려두거나, 조직에서 내쳐버리는 것. 내 생각에, 지금 당장은 두 번째 안으로 가야 할 것 같군. 이 문제는 자네 혼자 해결하는 게 어느 모로 보나 좋을 것 같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시 한 번 찾아오게. 그때 좀 더 얘기해보고 첫 번째 안으로 갈지 세 번째 안으로 갈지 정하면 되니까." 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차가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지금은 그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야."


자신을 배신한 아내와 동료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남자의 여정을 담고 있는 "사냥꾼"은 너무나도 유명한 캐릭터 "파커"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걸작 범죄소설입니다. 최고의 하드보일드 소설 캐릭터들을 꼽을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필립 말로""루 아처""샘 스페이드""매튜 스커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커"는 앞에 언급한 캐릭터들과 한 가지 큰 다른 점이 있습니다. "파커"는 범죄자입니다. 은행이나 현금 수송차량을 주로 터는 프로페셔널 범죄자. 그는 한탕 멋지게 끝낸 후 휴양지의 호텔에서 생활하며 즐기다가 돈이 얼마 이하로 떨어지면 그때야 다시 한탕을 계획합니다. 패거리 없이 그때 그때 다른 프로 범죄자들을 불러 모아 일을 처리하고 돈을 나눈 후에 깨끗이 그곳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번엔 일이 틀어져 버립니다. 6년 전 조직원일 당시 만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멍청한 짓을 저질러 조직에서 쫓겨난 "말"의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이 일이 틀어져 버린 시작점이라면 그 끝은 아내 "린"의 배신이었습니다. 벨트 버클에 총알이 박히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파커"는 자신을 배신한 두 명을 찾아 복수 하기위해 뉴욕으로 가서 급기야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전국적인 조직인 아웃핏에 싸움을 겁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파커"의 행동들은 너무도 냉정해서 차갑게 느껴집니다. 복수의 순간에서 조차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살인행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주저없이 죽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끝냅니다. 친구로 삼기엔 찝찝하지만 적으로는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할 남자입니다. 복수극으로 시작하고 중반까지 "파커"의 복수 행위들을 따라가긴 하지만, 이 작품 "사냥꾼"의 백미는 전국적인 범죄조직 아웃핏에게 자신의 돈을 받기 위해 싸움을 거는 "파커"의 모습과 그후의 행동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웃핏을 찾아가서 자신의 돈을 돌려달라는 "파커"의 말을 조직의 간부들은 일개 강도 나부랭이의 정신나간 헛소리로 치부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점점 "파커"가 정신이 나갔을지 몰라도 냉철하고 강인한 실력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아웃핏은 당황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파커"라는 남자와 엮이게 되는 악연의 시작일 뿐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누구는 그걸 갱단이라 부르고, 깡패나 매춘부 들은 아웃핏이라 부르더니, 당신은 조직이라 부르는군. 부디 이런저런 명칭으로 불러대면서 실컷 즐기길 바라겠소. 나야 당신네들이 그걸 적십자라 부른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그게 나한테 4만5천 달러를 빚졌으니, 좋든 싫든 간에 당신네들이 그걸 갚아야 하는거야."

카터의 차가운 미소가 다시 입술로 돌아왔다.

"이보게 친구, 지금 자네가 어떤 상대와 싸우려 드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건가? 전국적으로 우리 조직에 소속되어 밥을 벌어먹고 사는 고용인 수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은 가나? 얼마나 많은 도시에 얼마나 많은 지부가 있고, 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역, 얼마나 많은 주를 얼마나 많은 임원들이 관리하고 있는지 알기는 하나?"

파커가 어깨를 으쓱했다.

"체신부만큼이나 큰가 보군. 그렇다면 예산도 많으니 내 돈을 돌려주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아닌가?"


전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범죄소설계의 거장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는 많은 필명으로 엄청나게 많은 범죄소설들을 써냈었습니다. 그리고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하면서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얻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작품들 중에는 많은 걸작 소설들이 포함되어 있고, 전설적인 캐릭터들도 창조해냈습니다. 그 캐릭터들 중에는 케이퍼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_운 빼고는 모든 것을 갖춘 절도 전문가 "도트문더(Dortmunder)"와 냉철한 프로 범죄자 "파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미국 문화계에서는 천천히 전통적인 영웅상에 반하는 반영웅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주자 그룹에 바로 이 작품 "사냥꾼"의 주인공 "파커"도 있습니다. 냉철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해치우고 오로지 자신의 원칙만으로 살아가는 나쁜놈 "파커"의 인기는 엄청났고 많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얼마 전 "테일러 핵포드"감독이 연출하고 "제이슨 스타뎀"과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한 "파커"도 이 시리즈인 "Flashfire"를 영화로 만든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양식이 있다. 그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조용하고 단순하지만 곧 바뀌게 될, 그런 양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파커에게도 삶의 양식이 있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양식, 그러나 그것도 바뀔 것이다. 이제 곧.


제가 이 글에서 어쩌구 저쩌구 평가하기도 죄스러울 정도의 대가가 써낸 걸작 작품 "사냥꾼"은 속도감과 긴장감이 정교하게 조율된, 정말로 훌륭한 범죄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포인트 블랭크"와 "페이백"을 이미 오래전에 보았고, 얼마 전에 나온 그래픽노블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도 읽었는데도 원작소설을 직접 글로 읽으니 전율이 일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꼭 이 쿨내 진동하는 악당 "파커"의 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구식 마초에, 냉철한 범죄자인 "파커"의 뒷맛이 묘한 매력을 거부하실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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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묻어버린 것들
앨런 에스킨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들녘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변호사 출신의 작가 "앨런 에스킨스(Allan Eskens)"가 2014년에 발표한 데뷔작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The Life We Bury)" 입니다. 여러 미스터리 소설 관련 잡지에서 2014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뽑힌 이 작품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에드거' 상, '앤서니' 상, '배리' 상 등 여러 주요 미스터리 상이 그해 뽑는 최우수 데뷔작 부분의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일단 이 정도면 사서 읽어도 실망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이라서 이 작품을 제치고 상을 탄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인지 너무나 궁금해질 정도였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대학생인 스무 살 청년 "조 탤버트"는 시간이 촉박한 대학영어 수업 과제인 전기문 쓰기를 위해 많은 노인들이 요양하는 요양소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의 환자들 대부분은 치매나 기억력 저하로 인터뷰할 상태가 아닙니다. 그 와중에 다행으로,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나마 제정신이라 인터뷰가 가능한 "칼 아이버슨"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안도하던 "조 탤버트"는 "칼 아이버슨"의 과거를 알고는 당황하게 됩니다.


강간범에 살인범이라니. 영웅을 찾으려고 힐뷰 매너에 왔더니 대신 악당을 만나게 생겼다. 그 사람에게도 물론 이야깃거리야 있겠지만, 과연 그게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이야기일까? 다른 애들은 할머니가 흙바닥에서 아기를 낳은 이야기, 아니면 할아버지가 호텔 로비에서 존 딜린저를 만난 이야기 같은 것이나 제출할 텐데, 나는 한 여자아이를 강간, 살해하고 창고에서 그 시체를 불태워버린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 살인범을 인터뷰한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몸이 달았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랫동안 미뤄왔다. 9월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몇 주 안에 인터뷰 내용을 제출해야만 했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출발 게이트를 열어 경주마를 내보냈는데 내 말은 아직 헛간에서 지푸라기나 와작와작 씹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는 칼 아이버슨에 대해 글을 쓰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알코올 중독에 조울증 환자인 어머니와 자폐증 환자인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을 떠나 대학교로 도망친 "조 탤버트"는 자신의 삶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스무 살 청년입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과제인 전기문 쓰기를 위해 급한 마음으로 노인 요양소인 '힐뷰 매너'를 찾은 "조"는 인터뷰가 가능한 대상이 말기 암환자인 "칼 아이버슨"이라는 노인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칼"이 30년 전, 이웃집 소녀를 강간한 후 살해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창고에 시신을 버리고 창고를 불태운 악독한 범죄자이며, 지금껏 쭉 감옥에서 수감되어 있다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요양소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합니다. 운이 좋으면 전쟁 영웅을 인터뷰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무너졌지만 과제 제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한 "조"는 "칼"에게 인터뷰 의사를 타진합니다. 의외로 "칼"은 순순히 인터뷰에 응하며 "조"에게 완전한 진실만을 말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이 자신의 임종 시의 진술임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조"는 "칼"과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인터뷰가 진행될 수 록 노인을 잔인한 범죄자로 확신하게 만들던 사실들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진실들에 흥미를 느끼는 "조"는 30년 전 묻혔던 진실들을 캐내기 시작합니다.


"임종 시의 진술이란 건 법률용얼세.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를 죽인 살인자가 누구였는지 속삭이고 죽으면 그 진술은 강력한 증거 능력을 인정받아. 죽어가는 사람이 거짓말을 입에 올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 일종의 합의인 셈이지.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죄, 절대로 고백할 수 없는 죄만큼 무거운 죄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자네와 나누는 이 대화는... 내 임종 시의 진술이야. 자네가 쓴 글을 누가 읽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네. 아니, 자네가 아예 글을 쓰지 않더라도 괜찮아."


형사법 변호사로 활동하다 작가로 데뷔한 "앨런 에스킨스"의 첫 작품인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스무 살의 대학생이 죽음을 앞둔 늙은 범죄자를 만나 그가 묻어버리지 못한 진실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죄책감과 빈곤에 지쳐가는 청년은 시한부 인생의 범죄자 노인과 어쩔 수 없이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묘한 교감을 나누게 되고, 과거의 어느 순간부터 꼬여졌던 사실들이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그닥 새로울게 없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어디선가 보거나, 읽은 듯한 익숙한 전개 방식으로 시작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단점으로 보이지 않도록 작가 "앨런 에스킨스"는 익숙한 구성들과 설정들의 장점들만을 뽑아서 새롭게 조합해 상당한 재미를 주는 범죄소설을 써냈습니다.

사실 재미를 위해 범죄소설들만을 탐독하는 저에게 있어서 '재미'란 좋은 범죄소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가장 1차적인 요소입니다. 근데 이 작품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재미 이외에도 빛나는 요소들이 꽤 있습니다. 재치있는 문장들, 영리한 플롯, 서스펜스의 구축하는 방식 등 모두 데뷔작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이고 작가 스스로가 책을 쓰면서 중심을 잘 잡아서인지 신인 작가들이 흔히 부리는 과욕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중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치밀하게 구축된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주요 캐릭터들과 그들의 주변 이야기들은 단 한군데도 낭비되지 않고 조화롭게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받쳐주는 중요한 축이 됩니다. 이런 캐릭터들 간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은 자칫하면 무모해보일 수 있는 그들의 행동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불어 넣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작가가 이 부분을 가장 공들여 쓴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죄책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떤 얼빠진 힘이,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중력이 나를 뒤쪽으로, 남쪽으로, 오스틴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학으로 도망을 가기만 하면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나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가지는 아주 쉽게 부러질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서 완전히 손을 떼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동생? 그 두 사람을 떠나는 대가는 뭘까?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은, 그 대가가 보석금으로 삼천 달러를 날리는 것이었다고.


보통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나, 무의식의 저편에 묻고 있던 진실들이 끊겨있는 연결고리를 찾아내거나 비어있는 퍼즐의 숨겨진 조각을 찾아내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당연히 이 작품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서도 비밀이나 묻혀있던 진실들이 그런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죄책감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연결시켜 사람들이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죄의식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려고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술과 도박, 남자문제를 일으키는 어머니와 자폐증 환자인 동생을 어린 시절 부터 돌보다 성인이 되자마자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청년 "조"와 과거의 어느 순간부터 인생을 포기해버린 60대 노인 "칼"은 서로 자신들이 짊어진 죄의식들을 털어놓고 나서야 손자와 할아버지와 유사한 유대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살고 싶어하는 노인을 보며 "조"는 두 번 다시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진실 찾기에 몰두하고, 노인의 죽음을 보고난 후에는 자신이 책임져야할 부분을 받아들이며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첫 발을 내딛습니다.


"할아버지를 빼고도 이 건물에 살인자가 열 명이나 더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을 죽여본 사람이? 아니면 살인자가?"

"그게 다른가요?"

아이버슨 씨는 내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떻게 대답할지보다는 내게 대답을 해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자잘한 턱 근육을 몇 차례인가 움직거리는 듯싶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래. 차이가 있지. 나는 둘 다 해봤네. 사람을 죽여보기도 했고... 살인도 해봤지."

"차이가 뭐죠?"

"해가 뜨기를 바라는 사람과 뜨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차이라네."


짧게 요약할 수도 있는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써놓았지만 결론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쓰고 싶었습니다.^^;; 작가 "앨런 에스킨스"의 두 번째 작품인 "The Guise of Another"가 미국에서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국내에도 조만간 소개될 예정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서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맥스 루퍼트" 형사의 동생이 주인공이라고 하니 읽으면서 소소한 이 작품의 흔적들을 찾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완벽하다거나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데뷔작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완성도 높은 오락소설입니다. 미스터리/스릴러 소설들이 갖추어야할 기본들에 충실하며 진정으로 말 하고자하는 주제를 향해 달려 나가는 솜씨가 꽤 수준급입니다. 거기다 지루한 주말 저녁에 펼치시면 바로 그날 다 읽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재미도 보장합니다. 새로운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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