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호주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로보텀(Michael Robotham)"이 2008년에 발표한 "산산이 부서진 남자(Shatter)"입니다. 호주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마이클 로보텀"은 영국으로 넘어가서 대필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4년 데뷔작 "용의자(The Suspect)"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이제는 호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범죄소설가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 "조 올로클린"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엄밀히 말하자면 네 번째 작품이 될 수도 있는)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현수교 위에 한 여인이 나체 상태로 투신을 하려고 합니다. 경찰은 여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급히 대학교로 전문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새롭게 강의를 시작하게 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를 데리고 현수교로 갑니다. 얼떨결에 경찰을 따라가게 된 "조"는 우선 투신자살 시도를 하는 여인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다가 갑니다. 하지만 나체의 여인은 현수교 난간위에 서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조"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조"에게 '당신은 이해못해'라는 말을 남기고 나체의 여인은 몸을 날립니다.


왜 자학을 하는 걸까? 어째서 벌거벗고 있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설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진다.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하고 싶은 걸까? 어쩌면 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을 잃었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벌을 줘서 속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협박일 수도 있다. '당신이 나를 버리면 죽어버릴 거예요'라는 식의. 벼랑 끝에 몰린 여자들의 최후의 수단.

아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다.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10대 아이들이라면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여자는 허벅지가 투실하고 엉덩이가 셀룰라이트로 우둘투둘한, 중년에 접어드는 여성이다. 거기다 제왕절개를 했던 흉터 자국도 보인다. 아이를 낳은 어엿한 어머니라는 얘기다.


클리프턴 현수교의 안전망 밖으로 한 여인이 빨간 하이힐만 신은 알몸으로 서 있습니다.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에이번 강에 투신자살을 하려는 그 여인을 막기 위해, 바스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시작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중제자로 불려옵니다.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조"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누군가와의 통화에만 집중 하는 그 여인의 배에는 '걸레'라는 단어가 립스틱으로 쓰여져 있고, 통화를 끝낸 그 여인은 "조"가 어찌해보기도 전에 에이번 강으로 뛰어내립니다. 자살을 막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던 "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얼마 뒤, 한 소녀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현수교에서 뛰어내린 여자 "크리스틴 윌러"의 딸 이며, 자신의 엄마가 자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니, 최소한 현수교에서 투신자살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엄마 "크리스틴"은 심한 고소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조"는 자신의 친구이자 은퇴한 형사 "빈센트 루이츠"에게 도움을 청해서 함께 조사를 시작하고, 자살한 "크리스틴"이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뛰어내렸을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몸에 부츠만 신은 채 죽어있는 또 다른 여인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 전까지 "조"가 제시한 가능성을 묵살하던 경찰들도 두 여인의 죽음의 연관성을 알아차리고 수사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빈센트가 강력범죄 수사의 요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용의자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와 정반대다. 나는 피해자를 알아감으로써 용의자도 알아낸다.

살인범들이 반드시 한결같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틴 윌러는 성적 매력이 넘쳐나거나 외모로 남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타입은 아니었을 것이다. 옷을 보수적으로 입었고, 유흥을 즐기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여자가 강압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무슨 말을 했을까? 누구에게 의지하려 했을까?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물리적 힘을 전혀 가하지 않고 말로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부수어 버리는 살인자와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사람들을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다룬 심리 스릴러입니다. 실제로 전화통화만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협박하고 조종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범인은 자신의 특기와 재주들을 총 동원해서 전화통화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박살냅니다. 한 사람의 동선과 주변을 전부 파악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 뒤,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압박을 가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범인의 행동과 수법은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을 미련하게 생각했던 저 조차도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긴다면 나도 당할 수 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합니다. 거기다 이런 짓을 벌인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라면 정말 위험한 살인방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더 증거를 찾기도 어려워지고 범행을 입증하기도 힘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부분이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조금만 눈치 있는 분들이시라면 50페이지 정도 만에 대충 짐작하실 내용들입니다. 이 작품은 '누가', '어떻게' 보다 '왜?'가 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부수어 파멸시키는 범인을 뒤쫓는 우리의 주인공 "조 올로클린"은 한때 런던에서 잘 나가던 임상심리학자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부러워할 미인이자 멋진 성격의 완벽한 부인과 딸이 있는 행복한 가정생활과 심리학자로서의 명성을 동시에 누리려고 할 때쯤 파킨슨 병이라는 불청객의 방문을 받은 불운한 남자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의 환자가 그의 인생과 가족을 파멸시키려는 일이 발생하고, 간신히 위험을 넘긴 "조"는 요양 겸 새출발을 위해 런던에서 서머싯으로 이사를 옵니다. 아픈"조"를 대신해서 그의 아내 "줄리안"이 직장생활을 하고 "조"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하다가 바스 대학에 시간강사 자리가 나서 일을 시작한 첫 날, 기묘한 자살사건에 얽히면서 "조"는 또 다시 위험천만한 범죄에 얽히고 맙니다. 멋대로 경련이 일어나는 팔, 굳어지는 다리, 때로는 사랑하는 이에게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게 굳어지는 얼굴근육 등으로 힘겨워 하던 "조"는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인간임을 느끼며 사건에 집착하지만 범죄 희생자들을 조사해서 범인에게 점점 다가갈 수 록 "조" 자신도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간과해버립니다. 결국 범인도, 피해자도, 그리고 그들과 얽혀있는 다른 사람들도 부서져 버립니다.


"조, 나는 사람이 희망을 모두 잃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긍지, 기대, 믿음, 욕망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지배해. 완전히 장악해버리지.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는 아니야. 그렇다고 심장이 저며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소리도 아니지. 그건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아연히 상상하게 되는 소리야. 가장 강력한 의지가 무너져내리고,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어오는 소리. 너무나 높은 고음이라서 지옥의 사냥개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네게도 그 소리가 들리나?"


호주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중 한명인 "마이클 로보텀"이 쓴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며, 작가가 창조한 또 다른 캐릭터 "빈센트 루이츠"가 나오는 다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은 서로가 메인 캐릭터가 아닐 때에는 조력자로서 작품에 등장합니다. 파킨슨 병에 걸린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과는 반대로 전직 런던경찰국 형사 "빈센트 루이츠"는 시골 출신의 구식 형사입니다. 엿같이 행동하는 범죄자를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발로 뛰는 수사에 최적인 거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 둘은 첫 작품인 "용의자"에서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수사관으로 처음 만나서 시작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The Drowning Man/Lost"이후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그 후로 번갈아 가며 메인 캐릭터가 되는데 "빈센트 루이츠"가 등장하는 "Bombproof""The Wreckage" 등은 전직 형사라는 캐릭터에 맞게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반면 "조 올로클린"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심리 스릴러가 주를 이룹니다.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도 역시 심리 스릴러인데 단지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에 관한 예리하고 통찰력있는 문장들이 상당히 많아서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더 인기가 많습니다.

 

내 몸이 파킨슨병의 메시지를 처음 보낸 건 4년 전이다. 손으로 적거나 타이프 친 메시지는 아니었고, 부지불식간에 손가락이 이따금씩 꿈틀거리는 식의 신호였다. 유령 같은 비현실적인 움직임이었지만 그림자가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현실이었다. 그게 내 뇌가 정신과 헤어지려 한다는 신호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둘의 이혼 절차는 오랫동안 질질 끌며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재산 분배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일 일도 없는데 말이다.

 

올해,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신작 스탠드언론 "Life or Death"로 그동안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던 CWA 골드대거를 수상한"마이클 로보텀"은 골드대거를 수상한 두 번째 호주 작가가 되었습니다.(첫 번째 작가는 또 다른 호주 출신의 거장 "브로큰 쇼어"의 "피터 템플"입니다.) 호주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시절, "마이클 로보텀"은 당시 호주를 들썩이게 했던 탈주범 "레이먼드 존 데닝"과 우연하게 인연이 닿아 친분을 쌓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기행과 도주, 범죄행각, 체포 그리고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같은 또래인 자신들을 이렇게 다른 길로 가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범죄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고스트라이터로 활동하다 이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 느꼈던 의문들과 인간의 어두운 내면들이 범죄소설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디어는 백지에 연필로 그리는 스케치에 가깝다. 선이 덧그려지고 윤곽이 잡히고 명암이 또렷해지면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난다.

나는 크리스틴 윌러와 실비아 퍼니스를 죽인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범인이 내 마음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상상 속에서 그려나간 가공의 인물이 이제는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 되어 내 귀에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수수께끼도, 허구도 아니다. 나는 그놈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첫 작품 "용의자"가 국내에 출간된 지 거의 십 년이 지나고 절판이 된 지금에서야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가 출간되었는데 다행이도 나머지 작품들인 "Bleed For Me"와 "Say You're Sorry"가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들이 인기를 얻어서 작가의 다른 캐릭터인 "빈센트 루이츠"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나와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몸이 굳어져가는 불치병에 걸린 심리학자와 인간의 내면을 조각조각 부셔서 파멸로 이끄는 범죄자가 벌이는 추격과 심리전을 다룬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정말로 훌륭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기발하지만 설득력 있는 범죄행위를 바탕으로 영리하고 탄탄한 플롯, 예리한 심리묘사, 현실감 넘치는 상황묘사가 합쳐진 일급 스릴러입니다. 단지 범죄뿐 아니라 운명이, 인간이 어떻게 사람들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그 조각들이 어떻게 연쇄반응을 하는지를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추천사 단골 작가가 되신"스티븐 킹"의 추천사가 못 미더우신 분들도 이 작품 "산산이 부서진 남자"를 읽고 나면 "스티븐 킹" 형님이 비록 추천사를 남발할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실 겁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 전날 밤이나 중요한 약속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로 후회하실 정도로 책에 빨려 들어가게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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