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파커 시리즈 Parker Series 1
리처드 스타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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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자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Donald E. Westlake)"가 1962년에 필명인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로 발표한 "사냥꾼(The Hunter)"입니다. 이 작품 "사냥꾼"은 범죄문학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캐릭터인 "파커(Parker)"가 처음 등장한 작품으로, 2008년에 발표한 "Dirty Money"까지 총 24편의 시리즈로 이어져 왔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사냥꾼"은 "리 마빈"이 주연한 "포인트 블랭크"와 "멜 깁슨"이 주연한 "페이백"의 원작으로도 유명합니다.


출근길 차량행렬들로 가득한 조지워싱턴다리 위를 한 사내가 걸어갑니다. 구겨진 정장에 구멍난 구두는 그 남자를 더욱 궁색하게 보이게 했지만 야수같은 그의 몸에서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다리 건너편까지 태워주겠다는 운전자의 친절에 욕으로 화답한 후, 끝내 걸어서 뉴욕에 입성한 그 남자는 자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위해 운전면허증을 위조, 은행을 돌아다니며 사기를 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복수해야할 대상 중 한명인 자신의 아내를 찾아냅니다.


"난 수면제를 먹어." 그녀가 웅얼거렸다. "매일 밤 먹어. 약을 안 먹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 계속 당신 생각만 해."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끝장낼까, 그런 생각?"

"아니, 당신이 죽어가던 순간. 그때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수면제를 잔뜩 먹으면 되겠네."

그가 제안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의 범죄자 "파커"는 원래 계획되어 있던 건수가 엎어지고 난후, 우연히 만난 "말 레스닉"이 제안한 불법무기거래 현장 강탈계획에 참여합니다. 제대로 한탕을 끝낸 일당은 돈을 나누고 다음날 각자의 길로 떠나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말"의 계략에 넘어간 "파커"의 아내 "린"이 "파커"를 배신하고 그의 배에 총을 쏩니다. 몇 개월 후, 운 좋게 살아남은 "파커"는 아내 "린"과 "말"에게 복수하기 위해 뉴욕으로 옵니다. 우선 "린"을 찾아내서 그녀를 이용해 "말"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던 "파커"의 계획은 "린"의 죽음으로 살짝 틀어져 버립니다. 한편, 죽은 줄만 알았던 "파커"가 살아서 뉴욕으로 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말"은 자신이 속한 조직 아웃핏에 도움을 청하지만, 조직은 혼자 해결하라는 결정을 내리고 "말"은 조직원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호텔에서도 나가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안그래도 별것 아닌 남자였던 "말"은 조직의 보호구역을 잠시 떠나게 되어 더욱 쉬운 "파커"의 먹잇감이 되고, "말"을 찾아낸 순간 "파커"는 갑자기 "말"이 강탈해서 아웃핏에 상납한 8만 달러 중에 자신의 몫 4만5천 달러도 포함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억하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우리에겐 세 가지 대안이 있네." 그가 손가락을 꼽으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를 돕거나, 혼자 해결하게 내버려두거나, 조직에서 내쳐버리는 것. 내 생각에, 지금 당장은 두 번째 안으로 가야 할 것 같군. 이 문제는 자네 혼자 해결하는 게 어느 모로 보나 좋을 것 같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시 한 번 찾아오게. 그때 좀 더 얘기해보고 첫 번째 안으로 갈지 세 번째 안으로 갈지 정하면 되니까." 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차가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지금은 그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야."


자신을 배신한 아내와 동료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남자의 여정을 담고 있는 "사냥꾼"은 너무나도 유명한 캐릭터 "파커"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걸작 범죄소설입니다. 최고의 하드보일드 소설 캐릭터들을 꼽을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필립 말로""루 아처""샘 스페이드""매튜 스커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커"는 앞에 언급한 캐릭터들과 한 가지 큰 다른 점이 있습니다. "파커"는 범죄자입니다. 은행이나 현금 수송차량을 주로 터는 프로페셔널 범죄자. 그는 한탕 멋지게 끝낸 후 휴양지의 호텔에서 생활하며 즐기다가 돈이 얼마 이하로 떨어지면 그때야 다시 한탕을 계획합니다. 패거리 없이 그때 그때 다른 프로 범죄자들을 불러 모아 일을 처리하고 돈을 나눈 후에 깨끗이 그곳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번엔 일이 틀어져 버립니다. 6년 전 조직원일 당시 만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멍청한 짓을 저질러 조직에서 쫓겨난 "말"의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이 일이 틀어져 버린 시작점이라면 그 끝은 아내 "린"의 배신이었습니다. 벨트 버클에 총알이 박히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파커"는 자신을 배신한 두 명을 찾아 복수 하기위해 뉴욕으로 가서 급기야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전국적인 조직인 아웃핏에 싸움을 겁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파커"의 행동들은 너무도 냉정해서 차갑게 느껴집니다. 복수의 순간에서 조차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살인행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주저없이 죽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끝냅니다. 친구로 삼기엔 찝찝하지만 적으로는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할 남자입니다. 복수극으로 시작하고 중반까지 "파커"의 복수 행위들을 따라가긴 하지만, 이 작품 "사냥꾼"의 백미는 전국적인 범죄조직 아웃핏에게 자신의 돈을 받기 위해 싸움을 거는 "파커"의 모습과 그후의 행동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웃핏을 찾아가서 자신의 돈을 돌려달라는 "파커"의 말을 조직의 간부들은 일개 강도 나부랭이의 정신나간 헛소리로 치부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점점 "파커"가 정신이 나갔을지 몰라도 냉철하고 강인한 실력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아웃핏은 당황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파커"라는 남자와 엮이게 되는 악연의 시작일 뿐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누구는 그걸 갱단이라 부르고, 깡패나 매춘부 들은 아웃핏이라 부르더니, 당신은 조직이라 부르는군. 부디 이런저런 명칭으로 불러대면서 실컷 즐기길 바라겠소. 나야 당신네들이 그걸 적십자라 부른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그게 나한테 4만5천 달러를 빚졌으니, 좋든 싫든 간에 당신네들이 그걸 갚아야 하는거야."

카터의 차가운 미소가 다시 입술로 돌아왔다.

"이보게 친구, 지금 자네가 어떤 상대와 싸우려 드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건가? 전국적으로 우리 조직에 소속되어 밥을 벌어먹고 사는 고용인 수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은 가나? 얼마나 많은 도시에 얼마나 많은 지부가 있고, 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역, 얼마나 많은 주를 얼마나 많은 임원들이 관리하고 있는지 알기는 하나?"

파커가 어깨를 으쓱했다.

"체신부만큼이나 큰가 보군. 그렇다면 예산도 많으니 내 돈을 돌려주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아닌가?"


전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범죄소설계의 거장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는 많은 필명으로 엄청나게 많은 범죄소설들을 써냈었습니다. 그리고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하면서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얻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작품들 중에는 많은 걸작 소설들이 포함되어 있고, 전설적인 캐릭터들도 창조해냈습니다. 그 캐릭터들 중에는 케이퍼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_운 빼고는 모든 것을 갖춘 절도 전문가 "도트문더(Dortmunder)"와 냉철한 프로 범죄자 "파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미국 문화계에서는 천천히 전통적인 영웅상에 반하는 반영웅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주자 그룹에 바로 이 작품 "사냥꾼"의 주인공 "파커"도 있습니다. 냉철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해치우고 오로지 자신의 원칙만으로 살아가는 나쁜놈 "파커"의 인기는 엄청났고 많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얼마 전 "테일러 핵포드"감독이 연출하고 "제이슨 스타뎀"과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한 "파커"도 이 시리즈인 "Flashfire"를 영화로 만든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양식이 있다. 그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조용하고 단순하지만 곧 바뀌게 될, 그런 양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파커에게도 삶의 양식이 있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양식, 그러나 그것도 바뀔 것이다. 이제 곧.


제가 이 글에서 어쩌구 저쩌구 평가하기도 죄스러울 정도의 대가가 써낸 걸작 작품 "사냥꾼"은 속도감과 긴장감이 정교하게 조율된, 정말로 훌륭한 범죄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포인트 블랭크"와 "페이백"을 이미 오래전에 보았고, 얼마 전에 나온 그래픽노블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도 읽었는데도 원작소설을 직접 글로 읽으니 전율이 일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꼭 이 쿨내 진동하는 악당 "파커"의 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구식 마초에, 냉철한 범죄자인 "파커"의 뒷맛이 묘한 매력을 거부하실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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