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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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또 한명의 범죄문학의 거장인 '그랜드 마스터',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이 1998년에 발표한 살인청부업자 "켈러(Keller)" 시리즈의 첫 작품 "살인해드립니다(Hit Man)"입니다.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는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에피소드 형식의 단편집인데, 이 작품을 포함한 "켈러" 시리즈 다섯 작품들 한 작품을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켈러". 그는 직업상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일을 하는 평범한 중년의 독신남입니다. "켈러"의 직업은 살인청부업자입니다. 일 때문에 여러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여러 사항들을 조사를 한 후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 끝나면 다시 혼자서 한가롭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갑니다. 죽여야 할 사람을 제대로 죽이기만 하면 끝나는 단순한 "켈러"의 일들은 가끔씩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냅니다.

 

어쨌든 켈러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이디스의 정확한 논리를 알고 싶었다면 직접 물어봐야 했을 텐데 시간 낭비 같았다. 더 중요한 점은 켈러가 그 여자를 알 기회를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모든 게 엉망이 될 뿐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내를 죽이기 위해 천 킬로미터를 달려간다면, 매 순간 입을 꾹 다문 이방인이 되는 편이 현명했다. 표적이든 의뢰인이든 다른 누구와든 이야기해서 좋을 게 없었다. 할 말이 있다면 말에게 속삭일 수도 있겠지.

 

살인청부업자 "켈러"는 화이트 플레인스의 저택에 사는 노인에게 살인의뢰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 짐을 싸고 죽여 할 대상이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 대상이 있는 곳을 둘러보고 주변을 맴돌며 죽일 방법을 연구합니다. 사고로 위장하거나 자살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그냥 총으로 쏴버리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타깃을 제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리기도 합니다. "켈러"는 살인청부업자로 오래 일 해왔기에 베테랑이지만 상황이 언제나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죽여야 할 대상과 감정적으로 얽히기도 하고, 어설프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상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부수적인 골칫거리들까지 수습하며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짐을 싸서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켈러"의 삶은 출장을 자주 다니는 영업사원이나 다름없습니다. 단지 그가 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일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이미 직업 경력이 생겨 있더군. 그게 사람들을 없애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관심이나 소질은 필요가 없더라고. 할 수만 있으면 돼. 처음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두 번째도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어. 그렇게 스스로를 규정한 후에야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 시작했지. 총, 다른 도구, 무기 없이 발휘하는 기술.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 알아야 할 것들을 말이야.

사실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 고등학교에서 직업에 대해 해주던 말과 달라. 진로는 준비하는 게 아니야. 중간에 우연히 그 일에 대비하게 만든 사건들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로는 자기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거장 "로렌스 블록""켈러" 시리즈 첫 작품인 "살인해드립니다""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부터 "켈러의 은퇴"까지 총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각 단편들은 각자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교묘하게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마치 장편소설 한권을 읽은 듯 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로렌스 블록"은 살인청부업자인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관찰자인 "켈러"를 평범하고 흔한 중년의 남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살인이란 그저 직업일 뿐입니다. 작가가 소설 속에 표현하는 살인이나 주인공 "켈러"가 자신의 직업인 살인청부업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켈러"는 뉴욕의 괜찮은 아파트에서 사는 중년의 독신남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라고는 자신의 상사라고 볼 수 있는 화이트 플레인스의 노인과 노인과 "켈러"사이의 연락책이자 이런저런 일들을 대부분 처리하는 실무자인 "도트"뿐입니다. "켈러"는 일반적으로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살인청부업자들처럼 터프하거나 과거의 깊은 상처로 우울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대신 쉽게 감성적이 되고 자주 자기 연민에 빠지는 캐릭터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날 때 마다, 자주 그곳에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사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대상이나 그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며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얽혀서 일을 포기할까 고민도 합니다. 심지어 자연사를 기대하며 시간을 끌어볼 생각도 합니다. 평소에는 궁금해 하지 않던 의뢰인이 누군지, 왜 죽이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하다가도 순식간에 냉정히 사람을 죽이는 "켈러"의 모습만이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가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인정해야겠는데,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는 아마 악당일 것이다. 별로 악당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뉴욕 독신남의 표본 같았다. 혼자 살고,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사 들고 집에 가서 먹고, 세탁물은 빨래방에 가져가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타임스 십자말풀이를 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여자들과 끝이 뻔한 관계를 시작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이 벌거벗은 도시에는 팔백만 가지 이야기가 있었고 대부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으며 그의 이야기도 그랬다. 화이트 플레인스에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받고, 가방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점만 빼면.

반박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악당이다. 사건 종료.

 

범죄문학계의 거장 "로렌스 블록"은 자신의 대표 캐릭터인 무면허 탐정 "매튜 스커더"와는 다른 "켈러"라는 킬러를 창조해서 청부살인이라는 범죄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이지만 이 작품에는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묘사는 거의 없습니다. 살인이란 행위는 짧은 한두 줄의 문장으로 표현되거나 어떤 경우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로렌스 블록"은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이런 삶과 인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물론 죽음도. 그리고 살인이라는 행위도 미화하거나 멋지게 그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켈러"의 이야기와 그의 시선, 감정을 따라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그에게 공감을 하거나 동화되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바로 냉정히 사람을 죽여버리는 "켈러"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의 감정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지극히 하드보일드적인 시선이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가끔 하는 짓이었다. 낯선 도시의 전화번호부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보는 것이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희귀한 이름이 아니다 보니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다른 도시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자기 자신, 진짜 자신을 찾았다.

 

이 작품 "살인해드립니다"는 처음 언급한 대로 단편 10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입니다. 그러나 수록된 단편들은 일반적인 미드의 에피소드들처럼 연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단편집들과는 달리 읽고 나면 장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로렌스 블록"은 처음 "켈러"를 창조했을 때만 해도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데, 이미 다섯 편의 "켈러" 시리즈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장편소설인 시리즈 네 번째 작품 "Hit and Run"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편집인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만족감을 느끼게 한 단편집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제가 단편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잘 읽지 않는데 이 시리즈는 국내에 또 출간된다면 무조건 사서 읽을 것 같습니다. 뭐, "로렌스 블록"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이 형님의 글솜씨에 대해 알고 계실테니 그저 사서 읽어 보시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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