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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박완서의 글은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끝없이 세세한 감정을 들추어 낸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인간을 실 한오라기 없이 벗기고 그 속마저 하나씩 집어내는 그 세밀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감탄에만 그치지 않고 마치 근육조직 하나씩을 집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섬뜩함. 어떻게 그렇게 섬뜩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삶의 거짓조차 거짓된 진실로 드러난다. 속고 속이고 살아버리는 몇몇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거짓말을 담는다. 누구나 진실로 믿어버리는, 아니 오래되었기 때문에 진실이 되어버린 거짓말을 담는다. 그 거짓말은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누어진다.
여성작가가 한 남자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삶을 놓았다. 어머니, 여동생, 아내, 그의 정부(情婦)는 주변인으로 그려지지만 결국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를 둘러싼 여성들이다. 여성 작가가 한 중년 남성을 화자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 박완서에게는 성(性)의 장벽조차 가볍게 뛰어넘는가 보다. 그려낸 남성화자의 목소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의 단어들은 한 남성의 삶도 낱낱이 흩어 내버린다.
책장을 덮노라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과연 어떤 것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참 짓궂기도 하지. 벌써 등단 30년이 넘은 할머니 작가가 던지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가족조차 거짓말로 얽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속으라고 전하는 말인지. 아직도 가족을 만들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날들이 한참이나 남은 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소설은 항상 삶의 긴장, 갈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잘 된 소설 한편을 읽고나면 뿌듯함 보다는 한숨짓게 되는가 보다.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 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책 142p)
오늘 나는 누구를 속이는 걸까? 그리고 누구에게 속은 걸까? 아니, 그게 중요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