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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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처음 읽으면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기에 혼란스럽다. 저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게 순서도 없고, 일정하지도 않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더 읽으니 인물들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자로이다. 그는 《논어》에서 제일 많이 꾸중을 듣는 제자이다. 나서기 좋아하고 생각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공자에게 이렇게 제멋대로인 제자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로가 나오는 부분에선 혀를 끌끌 차며 읽곤 했다. 

 

이런 자로의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이 책과의 만남이었다. 이 책은 나카지마 아츠시의 단편을 모은 책으로, 총 4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제자'는 바로 공자와 자로의 관계를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이다. 《사기》, 《공자가어》, 《논어》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엮어서 하나의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단순한 조각 모음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이 둘 간의 관계에 주목하여 배움이란 무엇인가, 군자의 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자로, 그리고 그의 스승 공자는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이 책의 서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못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여태껏 가져왔던 자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로라는 인물에 주목하여 《논어》를 읽어보니 한 인간의 성숙과 변화, 자연스런 감정을 폭넓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했다고 할까? 그리고 자로를 통해 공자의 또 다른 면모도 읽을 수 있었다. 갈등하고 표류하는 한 영혼의 소박한 생애를.

 

'제자' 뿐만 아니라 다른 세 편의 단편들도 저마다 재미가 있다. 특히 '이릉'은 사마천과 소무, 그리고 이릉을 통해 엇갈린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저자는 내가 살고 있는 용산과도 연이 있는 인물이다. 1909년 생인 그는 한문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고 당시 용산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아버지는 용산 중학교 선생이었다. 그의 곡절 많은 삶은 서문에 실려 있다. 아쉽게도 그의 다른 작품은 한국에 널리 소개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집이 하나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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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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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서쪽을 퉁쳐서 아시아라 부른다. 그러나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말을 찾으라면 무척 힘들다. 아무런 동질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이란을 생각해보자. 같은 아시아에 속한다지만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백지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아는 것이라고는 축구 강국이었다는 것.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2000년 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축구 자존심을 두고 키베(키보드 베틀)이 벌어질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이란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서 많이 뛰고 있기도 했고...

 

우연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만난 건. 그저 매력적인 만화겠거니 하는 생각에 펼쳤다가 푹 빠지고 말았다.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소개 글을 읽으며 이란이 그 페르시아의 후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갑갑한 베일이 상징인 그 나라가 사실 예전에는 매우 자유로운 나라였다는 사실도. 1969년에 태어난 그는 이슬람 혁명으로 갑자기 베일을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유분방하게 자란 그에게 신체를 억압하는 베일은 낯선 물건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그의 가족은 보수 정권의 횡포 아래 큰 상처를 입는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의 공포까지. 이 만화는 한 문명이 급속도로 보수화되는 과정과 전쟁에까지 치닫는 비극을 보여 준다. 그러고보니 이 책을 2009년에 샀는데 지난 5년 남짓한 시간을 돌아보니 한숨만 나온다. 한국 사회도 과거 이란이 밟았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곱씹어 보니 무척이나 닮았다. 아마 그런 이유로 이 책에 푹 빠져들었던 것은 아닐지.

 

1권에는 보수화되는 이란 정권 아래 겪었던 다양한 고통이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가족 이야기는 공포를 이겨내는 힘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 헬조선의 현실에서 '탈출'만이 답이라는 사람들처럼 그도 이란을 떠나 유럽으로 간다. 이른바 조기 유학. 그러나 가족과 동떨어진 낯선 곳에서의 삶도 결코 쉽지 않았다. 2권은 유럽에서의 방황, 이란으로 귀향, 다시 떠나기 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1권보다 2권이 지루하다는 것은 좀 흠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권과 2권의 역자가 다르기도 하다. 

 

훗날 그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낼 것을 마음먹는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것. 흑백의 단순한 그림체는 독특한 매력을 전해준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스타일을 잘 살렸다.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감명 깊은 것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그의 할머니는 작품 속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이다. 그의 따듯한 가슴. 그의 할머니는 늘 가슴에 꽃잎을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 향기롭고도 따뜻한 가슴 때문에 작가는 역경 속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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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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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는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노자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기본적으로 나는 마음의 위안 따위를 경계하는 입장이라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읽었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성서를 읽는다는 평범한 교인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위해 성서를 읽는다. 문제는 그런 독해가 심각한 오독의 가능성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기 위해 읽기. 그런 읽기는 특정 부분만 닳고 닳도록 주무른다. 마치 관광지에서 특정 부위로 유명한 동상을 만지는 것처럼. 복을 바라는 저 손길!

 

흥미롭게도 그런 신앙인들은 교회 밖에서도 발견된다. 동양철학이라는 분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유가'에 경도된 사람들은 주희의 주석을 보석처럼 받드는 반면, '도가'에 경도된 이들은 주석 따위는 별로 상관치도 않고 생태니 자유니 하는 말을 멋대로 갖다 붙인다는 점이다. 공통점은 자구 해석에 집착한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성서에 한 점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저 신앙인들에 비견할만하다. 그러니 역사니, 해석이니, 문헌 비평이니 하는 문제는 전혀 고려할만한 게 아니다.

 

《노자》를 좀 공부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대중들이 그토록 《노자》를 사랑하면서도 그에 관한 이론적 연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삼키기 쉬운 유동식 마냥 잘 가공된 《노자》에 젖었기 때문이며, 그것만이 《노자》의 본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는 노자와 장자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자》가 사실은 권력을 취득하기 위한 방편을 제공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벽창호가 되어 버리곤 한다.

 

대체 왜 이런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동양 철학'을 소비하는 특정한 버릇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연, 자유, 평등, 생태... 이런 개념을 버리고 다른 식으로 읽을 길은 없을까? 나에게는 저 말들이 내용없는 껍질처럼 느껴진다. 마치 십자가 아래 부르짖는 공허한 소리들 처럼. 그런면에서 이른바 노장철학이라는 것을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데 기독교적 관점이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숙고해볼 만한 부분이다. 

 

여러 곳에서 발표한 논문을 묶어서 한 권의 책이라기 보다는 논문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나름 한 권의 책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장점이 많은 책이다. 《노자》와 《장자》를 공부한다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은 뒤 《노자》나 《장자》를 읽을 욕망이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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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의 예수 - 예수의 민중운동
안병무 지음 / 한국신학연구소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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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zgz.net/bbs/?t=4j


매일 책을 한 권씩 소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책장을 둘러보며 내가 얼마나 편향된 독서를 해왔는가를 깨닫는다. 좋게 말하면 한 분야를 깊이 공부한 것이겠지만 사람들과 널리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은 책방 지기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오늘은 책장을 둘러보다 이 책을 골랐다.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 때문에 책을 줄여야 할 때도 제법 끝까지 남을 책이다. 찾아보았더니 지금은 절판되었더라. 이 좋은 책이 널리 읽히지 않고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귀한 것은 널리 사랑받지 못하는 법이다.


동아시아출판협회에서 100권의 책을 선정한 일이 있다. 한국 책 목록은 아래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링크) 그 가운데 신학 관련 서적이 들어있다는 것은 의외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지성이라 부를 만한 것 가운데 어째서 안병무의 이 책이 꼽혔을까? 그것은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예수의 모습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민중운동'이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예수의 삶을 하나의 운동으로, 더 자세히 말하면 민중 운동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작년에 성서를 읽는 세미나를 하면서 읽었다. 오랜만에 가슴 뛰고 설레는 글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민중신학에 대해, 안병무에 대해 아는 것이 일천하지만 그의 글에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읽은 책 가운데 크로산의 책과 더불어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는다. 하나를 꼽으라면 이 책을 꼽겠다. 예수의 삶에 대해, 예수의 실천에 대해 명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나안 성도'를 자처하는 입장이다. 제도적 교회 안에 더는 머물기를 거부한다. 기독교인 부모는 늘 걱정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신앙에 열과 성을 바쳤던 때가 있었는데 믿음이 식어버렸다는 거다. 과연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현 교회의 모습을 볼 때 그곳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혹은 '믿음'을 확증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도리어 싼값에 팔릴까 두려워 교회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다.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 이유는 이런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예수의 삶과 실천에 가까워지고 싶다. 진실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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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게임 -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콘유 3부작
박해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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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불로소득으로 몇 배의 이득을 취한 이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불안한 주거 문제가 앞으로도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 에 대한 절망도 아니었다. 도리어 책을 펼쳐 들고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잘 몰랐는가 하는 점이었다. 단순한 산수 수준의 계산도 잘 못 하니 땅값을 두고 벌어지는 수준 높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수학 계산 능력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세상을 정말 순진하게 살았구나 하는 자기반성.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영리해 보겠다고 한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아파트 단지의 등장과 함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중산층이 부동산을 통해 부를 축적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저자를 따라 한국 현대사 속에 있는 아파트 성장 신화를 보고 있노라면 땀 흘려 일해서 돈 번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를 알 수있다. 그보다 몇 배나 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무엇하러 일하겠는가? 아니, 일은 해야 한다!! 왜? 부동산 게임에 참가할 최소한의 게임머니를 위해서. 게다가 특정한 자리를 꿰차면 게임에 이득이 되는 핵심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로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부자'라 불리는 이들도 사실은 일만 해서, 공부만 해서 부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불편한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뼈아픈 현실은 두 가지. 하나는 아파트와 같은 주거 공간에 투기하여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갔으므로 그 자본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노릴 것이라는 점. 아파트를 통해 불어나던 자본이 이제는 상가로, 특히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큰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이야기. 그러면서 소개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경리단 옆, 해방촌의 현실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사이에 상업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투기자본이라 부를 만한 것이 동네를 망치고 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다른 하나는 이제는 '집' 대신 '큐브'라는 다양한 방들의 네트워크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부분. 이제 생활과 살림의 공간이었던 집은 해체 되는가? 그렇지 않더라도 과거에 성행했던 '스위트 홈'과 같은 풍성한 이미지의 집을 더 이상은 꿈꿀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2년 마다 재계약에 목을 매고, 혹여나 그것도 안 되면 집을 찾아 유랑해야 하는 삶에 낭만이 무슨 이야기인가? 게다가 주변 시세는 어느새 올라 점점 변두리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할 것을. 

 

그럼에도 박노자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의 지난 수십 년을 지탱해온 성장 신화는 꺼질 줄 모른다. 성장 가능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어도, 실재 경제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더라도 성장에 대한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파트의 몰락은 아직도 멀었다. 미분양 사태니, 거품이 꺼질 것이니 하는 말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사실은 여러 성공 서사를 통해 공유된 경험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부터 만들어진 '욕망의 덩어리 - 믿음'이야 말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믿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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