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 철학사
강영안 지음 / 궁리 / 2002년 3월

과연 한국에 '한국 철학'이 있는가 질문해 보면 대답하기가 막막하다. 물론 '철학'을 하나의 지역, 혹은 국가적인 개념안에 제한 할 수 없는 영역이기는 하지만 '한국적 철학'이 없다는 사실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우리의 현 주소와 가까이 붙어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저자의 관심은 한국에 어떻게 '철학'이라는 학문이 자리잡게 되었는가하는 과정을 짚어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의 문제와 철학의 소개는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더불어 근대에 대한 반성, '포스트 모더니즘'과 오늘의 철학의 방향정립의 관계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저자는 현대철학이 당면한 근대와 탈근대의 간극을 '인격적 지식', '타자윤리', '현실의 다양성' 등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저자의 철학적 지향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과거의 철학서들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논평하는 구조를 택했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재미있게 읽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철학이라고 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학문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한국 철학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에 관심있는 입문자에게는 오히려 과연 철학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만을 더 깊게 해줄 것이며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강렬한 이론적 지식을 전해주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 4부 근대 철학의 개념어들이 수용된 과정을 연구한 부분은 많은 노력이 보이지만 제목과 같이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려주고 있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철학서들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안목과 철학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이해는 편안한 문체로 전해진다. 그래서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책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서양 철학자들을 주로 다루었는데 과연 동양철학 혹은 제 3세계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철학적 탐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