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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단순한 충동이었다. 온지곤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홍보도 되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광고'라는 형식을 빌려 어디에 자랑스럽게 내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광고'라는 형식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겠지만,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었다. 돈이 많이 드니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책에 관한 글을 써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알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별로 좋지 않을 때도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는 글쓰기가 힘들고, 이쯤 되면 무슨 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이 들기 마련이다.

 

어찌어찌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첨언하면 설사 떠밀린 일이라도 이렇게 꾸역꾸역 밀고 나가면 뭔가를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본디 시작은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사설이 긴 이유는 '대학 거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대학을 거부했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거부'라는 말이 낯설다. 그만큼 대학은 20살이 되면, 혹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려면 통과해야 하는 당연한 관문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 '투명 가방끈 운동'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수능시험 당일 고3 수험생들에게 초를 치는 이들이다. 당당하게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선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현 사회에서 거부를 외치는 존재는 결코 달갑지 않다. 그것은 그 오랜 희생 전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돌리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투명 가방끈 운동에 가장 적대적인 사람들은 현재 입시 제도의 틀 안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이들이리라. 그럼에도 이들의 존재가 의미 있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의 길밖에 없는 것 같은 세계에 또 하나의 길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는 억압적인 입시제도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을 만들어 낸다. 불편하면서도 반가운.

 

투명 가방끈 운동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찌어찌 그들의 소식을 접할 수는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항하는 이들의 당당한 목소리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입시에 허덕이는 또래들을 향해 '너희의 길은 틀렸으니 우리를 따라야 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선택은 저마다 달랐으며, 그 결과도 저마다 다르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하나의 길을 거부함을 통해 n개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온지곤지를 시작하면서 몇몇 친구들과 이 책을 함께 읽었다. 그중에는 대학의 최고봉 S대 재학생도 있었고, 작년에 탈학교한 15세 친구도 있었고, 올해 수능을 치는 것이 당연한, 그러나 학교와는 이미 멀어진 19세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4년제 대학에 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나같은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의 위치가 달랐기 때문에 책의 이야기가 다르게 와 닿았다. 그럼에도 모두 "불순한 대학거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이유는 그놈의 '순수함'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리라.

 

'저항'에 대해 사람들은 환상을 가진다. 어떤 커다란 대의를 가지고 그랬을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이 선을 넘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게 커다란 대의를 가슴에 품고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누군가는 경제적 이유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게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대의'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들의 동기는 불순하다 말하기에 부족함 없으리라. 그러나 이들의 다양한 동기야말로 '대학'이라는 단일한 욕망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왜 대학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대의를 묻는가? 그것은 거꾸로 대학 입시에 엄청나게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포털 기사를 보니 수능이 고작 10일 남았단다. 수능을 앞둔 사람에게는 위험한 제안이지만, 시간이 나면 이 책 맨 뒤에 있는 '대학거부 선언'을 읽어보자. 마음이 흔들린다면 투명 가방끈 운동에 관심을 가져보자.(링크) 집중도 잘 안 될 터이니 이들의 글은 정말 꿀잼일 것이다. 여차하면 도시락 싸들고 수능가는 길에 이들의 선언에 얼렁뚱땅 함께하는 것도 좋다. 3년간 고생한 것을 하루 아침에 홀랑 날려 버리라는 말이나며 발끈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또 어떤가? 본디 삶이란 충동과 우연을 어떻게 마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또 아는가? 그렇게 시험장 문턱에서 돌아선 그 길이 다른 삶을 '선물'해줄지. 물론 아니어도 하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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