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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온지곤지를 열면서 얻은 소득 가운데 하나는 아침을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문득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히 마음이 맞는 몇이 있어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아침 9시에 모여 소리 내 책을 읽었다. 그런데 왜 하필 루쉰이었을까?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럭저럭 한그럭저럭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투창 같은 문장. 루쉰의 <들풀>을 집어 들었다.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참으며 읽기엔 많이 거치니까. 

 

온지곤지는 길 쪽으로 창이 크게 나 있다. 아침이면 햇볕이 잔뜩 들어온다. 햇볕을 맞으며 읽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다. 30분 남짓 차를 마시며 부지런히 읽기만 하는 탓에 얼마나 깊이 있게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별 자신이 없다. 나쁘게 말하면 그저 줄곧 읽기만 했으니. 그렇지만 내 목소리로, 누군가의 입으로 루쉰의 문장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임이 틀림없다. 오늘은 《외침》을 마치는 날이었다. 문득 처음에는 읽는 게 영 어색하던 친구가 지금은 꽤 들어줄 만한 소리로 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들풀》을 이어 《외침》을 읽었다. 《들풀》은 산문시를, 《외침》은 초기 소설을 엮었다. 개인적으로는 《들풀》을 더 좋아하나 불친절한 책인 탓에 원성의 눈길이 있었다. 《외침》은 그래도 유명하니 좀 낫겠지. 〈아Q정전〉이니 〈광인일기〉니 하는 작품이 있지 않나. 필독도서라는 명목으로 예전부터 제목을 들었기에 궁금했지만 대체 왜 그리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저 두 작품이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약〉이나 〈선물〉, 〈쿵이지〉, 〈흰빛〉과 같은 작품이 더 좋다.  

 

루쉰을 본격적으로 만난 건 두 해 전이었는데, 언제 다시 읽을지 모르겠다. 언제 보아도 몇 번은 볼 책이니 책장에 한동안 잘 모셔 두어야겠다. 아침마다 루쉰을 함께 읽은 두 친구는,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책을 사지 않았다. 책값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루쉰의 글에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경험에 비춰보면 책은 좋아서 사는 것보다는 사서 읽어보니 좋은 경우가 많던데…. 잔소리할 생각일랑 접어두자. 다음에 만나면 또 다르게 만날 테니. 여튼 오랜만에 만난 우아한시크한 루쉰 씨는 여전히 좋았다. 

 

11월부터는 아침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 상큼한 아침에 읽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책이지만 그래도 읽어보도록 하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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