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쪽: 옛 책들 가운데 개인 저작물로서 현재 알려진 가장 조기의 것은 «논어»이다. «논어»는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대화체 중에서도 극히 간략한 형태이다. «맹자», «장자»에 이르러서야 간략한 대화에서 정연하게 배열된 대화로 진보했고, 더욱이 우언寓言을 설정한 대화도 등장했는데, 이는 전국시대 제자문체諸子文體의 제1단계였다. 그후 대화체를 버리고 제목을 달고 논술하는 것이 생겼는데, 예컨대 «순자»의 일부가 그것이다. 대화체를 버리고 제목을 달고 논하는 방식은 전국시대 제자문체 진보의 제2단계였다.
주23)에 보면 '부사년(傅斯年, 1896~1950) 선생의 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다. 흔히 전국시대 저작을 읽으면서 저서와 저자를 혼동하는 일이 많은데 그러다보면 텍스트 형식에 상관없이 그 저서는 저서의 이름에 해당하는 인물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본래 이 부분은 «묵경» 가운데 일부가 묵자 후대에 쓰여진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노자» 따위에 적용해도 무리는 없다. 형식적으로 보아 «노자»는 «논어»보다 후대에 쓰여진 것이라 보아야 한다.
678쪽: 유儒는 '사士'의 일종이었다. 귀족정치가 붕괴되기 전에는 아마 '사' 계급은 없었을 것이다. 소위 사계급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오로지 기예와 재능을 팔아 생계의 방편을 삼았던 부류의 사람들이다. 귀족정치가 붕괴되기 전에는 기예와 재능을 갖춘 전문가들은 모두 귀족에 전속되어 부양되고 기용되었으므로, 즉 모두 관官에 있었기 때문에, 자체로 계급을 이루지는 않았다. 귀족정치가 붕괴된 후 관의 전문가들이 민간에 유랑하며 그들의 기예를 팔아 생계를 도모하자,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임시로 그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사계급이 출현했다. 사士라는 글자의 본 뜻은 재능을 갖춘 사람들의 통칭이었던 듯하다.
 
679쪽: 이러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졌는데, 한쪽은 지식과 예악의 전문가요, 한쪽은 전쟁 전문가였다. 후대의 용어로는 한쪽은 문文의 전문가 혹은 문사文士요, 한쪽은 무武의 전문가 혹은 무사武士이다. 당시의 용어로는 한쪽은 유사(儒士, «묵자» <비유하非儒下>에 보이는 명칭)요, 한쪽은 협사俠士이다.
 
712쪽: 사실상 역사적 위치로 보아 공자는 후세의 문성인으로 손색이 없으나, 관우와 악비의 위치는 공자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관우와 악비를 무성인으로 삼아 공자와 필적시키는 것은 사실상 맞지 않다. 공자에 필적할 무성인의 칭호는 실로 오직 묵자라야 합당하다.
재미있는 결론이다. 결국 묵자는 주대 협객의 무리 가운데 출현했으며, 공자의 버금가는 무武의 측면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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