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고전평론가? 낯선 이름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단어 그대로만 보자면 '고전'을 '비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과 '평론'의 만남이라... 낯설고 어렵고 복잡한 무엇이 아닐까? '고전'이라면, 그것도 저자가 공부한다는 동양 고전은 한자로 된, 읽기도 어려울뿐더러 지겨운 책들이 아니던가. '평론'도 마찬가지이다. '평론'이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고전평론가'가 영화로 책을 썼단다. 영화 제목을 살펴보니 전혀 '고전'이나 '평론'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뿐이다. 괴물, 황산벌부터 밀양과 라디오스타까지...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책에 언급된 영화를 한번쯤은 보았을, 적어도 신문과 방송에서 지겨울 정도로 들어보았을 만한 '대중' 영화들만 꼽아 놓았다. '고전평론가의 영화읽기' 이 어색한 만남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전과 근대(Modernity)  - 이것이 내 공부의 두 축이다. '근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말해 준다면, 고전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를테면, 고전은 아득한 과거이자 '미-래'에 해당한다. 여기서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언제든 현존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도래할 시간을 의미한다. 하여, 그것은 늘 '지금, 여기'와 인접해 있다. (5쪽: 책머리에)
 
   

'미-래'로 고전을 읽기, 바로 이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란다. 이 때문에 저자가 읽는 고전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현실과 만나고 있다. 첫번째 꼭지, '위생권력과 스펙터클의 정치, 괴물'에서 저자는 위생권력이라는 생소한 지점을 짚어본다. 괴물과 위생권력의 기묘한 동거! 저자가 보기에 진짜로 스펙타클한 것은 이 영화의 영상과 사운드를 통해 등장한 기묘한 괴물이 아니다. 오히려 괴물을 잡기 위해 등장한 '에이전트 옐로우'로 대표되는 위생권력이다. 괴물에서 바이러스로 공포의 대상이 전이되는 순간 이것은 아주 순수한 공포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 공포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아주 '정치적'인 근대적 정치권력의 산물이라는 점! 저자는 근대와 동시에 탄생한 위생권력이 어떻게 이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괴물=바이러스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탈출구를 좌충우돌, 당최 가능성이라고는 싹도 안 보이는 박강두와 그의 가족에서 읽어낸다. 이른바 야생성의 힘! 세계적인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권력(?)의 힘으로도 잡아내지 못한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그것도 아주 낡은 무기로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괴물은 고작 화염병과 화살에 쓰러진다. 그리고 콘크리트로 된 표지판에 맞아 죽는다!! 용가리와 디워에 열광했던 괴수영화 마니아라면 탱크와 제트 비행기를 기대했을 법하다. 그러나 괴물은 그런 현대적 무기가 아닌 아주 원시적인 무기에 쓰러진다. 이 역설을 저자는 위생권력=괴물을 무너뜨리는 '소수자들의 연대'로 설명한다.

   
  푸코에 따르면, 고전 주권론이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리라면, 19세기 이후 근대의 생체권력bio power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권리다. 다시 말해, 근대 권력은 개별 신체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가", 곧 '인구'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임상의학이 권력의 핵심기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출산율, 사망률, 평균수명 등 계량화된 수치일 뿐, 개별 신체들의 다양성과 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개별 신체들을 인구라는 전체 단위로 흡수.통합해 버리는 것, 그것이 근대권력의 콘셉트이다. (30쪽: '계몽'과 '지연': 위생권력의 전략)  
   

그러고 보면 괴물-위생권력의 담론은 지금 한창 뜨거운 쇠고기 문제와 닮아 있다. 영화 괴물에서 나타난 것이 괴물로 대표되는 공포의 문제라면 지금의 문제는 쇠고기와 광우병의 문제이다. 그 둘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점이라면 영화 괴물이 괴물로 대표되는 위생권력에 저항하여 현서를 '살리고자' 하는 박강두 가족의 몸부림이라면 쇠고기 문제는 광우병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다. 흥미로운 점은 괴물에서는 '권력'이 공포를 만들고 부풀렸다면 지금의 '권력'은 도리어 공포를 덮어두고 축소하느라 바쁘다는 점이다.

드러나는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영화 괴물에서 박강두에게 반말을 까며 하대하는 의사와 위생관련 공무원들은 쇠고기 문제에서는 확률을 들먹이는 과학자와 통상 공무원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인을 통제하고 길들이던 위생권력은 다른 형태로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강두 가족과 같은 야생성, 소수자의 연대가 아닐까? 촛불집회가 보여주는 예측불가의 모습들, 시위 현장을 웃음과 놀이의 현장으로 바꾸는 힘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야생성이 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조직도 없이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저 한 장소에 모인 무리야 말로 바로 소수자의 연대가 아니겠는가!

자, 이렇게 저자는 영화를 쪼개고 자르고 이어붙인다. 여기에는 미장센이니 영상미니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에 주목할 것! 영화가 어떤 것을 보여주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영화가 어떻게 읽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저자에게 영화는 그저 하나의 텍스트일 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속칭 영화평론가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영화를 읽어내고 있다. 대중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새롭게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터! 이 책에 소개된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았던 사람이라면 역시 읽어 읽어보기 권한다. 저자의 호쾌한 문장으로 머릿속에 조각으로 남아있는 영화의 단편들이 새롭게 편집되는 기묘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음! 답답한 한국사회의 탈출구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저자가 항상 이야기하는 탈주와 모험의 지평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나침판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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