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빗창 - 제주4.3 ㅣ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빗창
처음에 시작할 땐 나다 어렸네 라고 하는데 첫 장에 나온 사람이 저자인 것 같진 않은데요…
네, 그 이 사건의 배경이 재주도여서 그런지 상당히 사투리가 심하네요.(설명까지 붙어있는…)
이 때가 일제강점기 이네요.
여기에 주인공(?)인 련화가 약간 비밀조직?? 같은거(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몰래)
따거!! 각오하고 이수다!!
1932년 1월 12일
구좌면 세화리 오일장에서 해녀들이 시위??를 한다.
1932년 1월 23일
구좌면 하도리
련화가 다니던 서당(?)의 선생님이 잡혔다.
그래서 선생님을 구하려다 련화가 붙잡히고
고문을 받는다...
(물고문이 가장 힘들었다고…)
련화가 풀려나고
나중에 선생님도 풀려났다.
련화는 어른이 된다.
이 때는 일본군이 물러나고 미군정이 시작될 때다.
1947년 3월 1일
제주 북국민학교
모두 3만명의 사람이 모여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시위를 했다.
(당시 제주도민 27만명, 무려 전체에 9/1!!)
1918년 4월 3일 새벽 2시
봉화가 피어올랐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어서 빨리 인민의 편에 서라. 반미 구국투쟁에 호응 궐기하라.’(유격대 호소문)
1948년 5월 1일 오라리
오라리 방화 사건이 벌어진다. 옆에는 오라리 방화사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제주도에는 잠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는 듯했다. 하지만 3일간의 평화를 끝으로 5월 1일에 오라리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밤 12시 괴청년 30여 명이 오라리 연미마을에 들어와 12채의 집에 불을 놓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불이 난 시간에 마을 남쪽에 있는 민오름에서 유격대원 20명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마을로 급히 내려왔지만, 괴청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유격대원들이 돌아간 뒤, 다시 경찰들이 총을 난사하며 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 9연대 군인이 도착하자 경찰은 사라져버렸다.
당시 경찰은 방화의 주범을 유격대라 하였지만, 현장을 답사한 김익렬 연대장과 정보참모 이윤락은 이들을 무장대로 위장한 경찰이라고 하였다. 미군정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메이데이>란 영화를 만들어 제주 민중의 잔인함을 부각시키고, 경찰의 잔인한 토벌을 정당화시켰다.
한편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나흘 앞둔 시점인 5월 6일에 미군정의 주재로 4·3항쟁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딘 미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경비대 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맨스필드 제주도 군정장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도 도경국장 등이 참석했다.
국방경비대 측은 이 사건의 원인이 경찰의 강경한 탄압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고, 경찰 측은 이 사건의 원인이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의에서 국방경비대 측과 경찰 측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익렬은 조병옥과 육탄전을 벌였다.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김익렬은 결국 해임되고 말았다.결국 미군정과 유격대 사이의 중립적 입장에서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김익렬 연대장의 후임으로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진경이 임명되었다. 박진경은 일본군 출신답게 미군정의 총애를 받으며 무장대는 물론이고, 무고한 도민에 대해 잔인한 토벌을 자행했다.)
이 이야기는 련화가 죽으며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