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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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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섬>을 읽었을 때는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중학생 수준에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섬에서 뭘 어쨌다는거야? 소설도 아닌 것이 고양이나 묻고 음.... 이런 수준으로 이해했었다. 하핫. 그런데 그 어린 마음에도 기억 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까뮈가 쓴 서문이었다. 맨 마지막에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도저히 이 문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책 한권에 바치는 찬사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이 헌사를 읽을 무렵의 나는 스무살이 당당 먼 어린 아이였지만 까뮈의 스무살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쟝 그르니에의 다른 책들은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섬>은 편안하고 게으르며 느슨할 뿐 아니라 따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 까뮈가 쓴 이 아름다운 서문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의 스무살에 빛나는 기억을 안겨준 책이라면 읽어볼 만 하지 않겠나? 그것도 그 누군가가 까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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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전집 1 - 생명연습 외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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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김승옥씨...라고 해야하나? 김승옥 선생님이라고 하자. 하여튼 그 분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김승옥 선생님은 소설가로서도 유명하지만 한국영화사에 몇 안되는 전문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수업에 시나리오를 가르치러 왔었고 솔직히 말해서 수업 엄청 재미없었다. 기독교식의 꽉 막힌 세계관을 가지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그 양반... 정말이지 지겨웠었다.

그런데 다들 나처럼 그 수업을 지겨워하면서도 희한하게 수업시간엔 꼭 들어가는 것이다. 나 참... 왜들 배신을 때리는겨? 물으면 그들은 '김승옥'이니까라고 대답했다. 생명연습도 안읽어봤니? 우씨,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쫀심 상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안읽고 만다. 곱게 양복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시고 춘천인가 꽤 먼곳에서 우리를 가르치러 와주셨던 김승옥 선생님... 그 분과의 한학기는 그렇게 곱게 끝났다. 학점은? 기억이 안나는 걸 보아 보나 안보나 b 아님 c 였겠지?

그리고 나는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그 양반.... 결국 '자존심' 안 내세워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보고 말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쨍하게 정신을 일으켜세우는 그의 60년대를 말이다. 아,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이게 그 교회 목사님처럼 넥타이 단정하게 매던 노인네의 청춘이란 말인가... 나는 울고 말았다.

그의 문장들은 맑고 선명하며 섬세하다. 그리고 시니컬한 듯 통찰력있게 후려치는 카리스마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이 소설들이 수십년 전에 이미 씌여진 것이라는 것을 절대 느낄 수 없게 하는 그 세련된 언어와 삶에 대한 비수같은 통찰력들에 뒤늦게 찬사를 보낸다.

아, 정말이지 나는 바보같았다. 대작가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가르쳐달라고 애원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ㅠㅠ 후회해봐야 무엇하겠나. 그저 내 수중에 있는 그의 글을 되씹고 그의 시대를 되돌이켜 사랑하며 그의 청춘의 눈으로 나와 내 시대를 바라보는 연습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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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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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는 참 비밀도 많았다. 이건 너와 나 만의 비밀이야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마...라고 말하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던 많은 일들. 생각해보면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었다. 친구 한 명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네로 탐험(!)을 가서 발견한 붉은 황토 마당을 가진 이상한 이층 양옥집. 우린 틀림없이 그 집에 외계인이 산다고 믿었고 그 집을 알고 있는건 그애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동네에서 맨날 공기놀이(전라도에서는 작자꾸리라고 한다 ^^)를 같이 하던 애와 함께 땅파고 공깃돌을 묻으며 그것도 우리만의 비밀이라며 새끼 손가락을 굳게 걸었었다. 그리고.... 다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클로디아 고 맹랑한 계집애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하나둘 다 생각이 난다. 음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비밀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그래서 그땐 그렇게 하루하루가 빨리 갔었나? 매일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애들과 하는 놀이와 똑같은 말다툼에도 그렇게 지루한 줄 몰랐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솔직히 클로디아라는 애는 좀 얄미울 정도로 꼼꼼하고 나의 열두살과 비교해볼 때 너무 똑똑한 경향이 있어서 처음에는 정이 안갔다. 무슨 애가 이렇게 지적이냐....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게 생기더군. 히히.. 그래도 역시 넌 애야. 그렇지만 니가 크면 아주 까탈스럽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되겠구나.

이 책은 비밀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클로디아의 비밀이 뭔지는 불문에 부치겠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났을 때 조금 아련하고 기분좋은 추억에 잠길 것이라는 건 보장하지. ^^ 아마 갑자기 비밀 하나씩 만들고 싶어질 것이라는 것도. 요새 난 비밀이 없었다. 남 뒷다마 깐 후에 서로 입단속하는 비밀 말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비밀을 만들었다. 뭐냐고? 비밀이다. 하하하핫.

<클로디아의 비밀>은 어른이 된 후 오래간만에 읽은 동화책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뭐든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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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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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체질적으로 착한 사람이 싫다. 내가 착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착한 사람들은 착한 나름대로 다 속내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혹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착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착한 사람 문성현> 안에는 여러 종류의 고통을 안고 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떤 이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어떤이는 얄밉기도 하고 어떤이는 답답하기 그지 없기도 하다. 누구나 갖고 있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들 그리고 현재의 고달픈 삶을 다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펼쳐지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한 편 한편 다 잘 빚어진 도자기 같다. 그런데 첫번째 단편부터 상처를 송곳으로 후비듯 냉철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쑤시던 작가는 세상에 더없이 착한 사람을 보여주고 책을 마무리 한다. 마치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듯이 말이다.

잘 모르겠다. 착한 사람이 뭔지... 그래서 이 윤영수라는 작가가 결국 착하게 살라고 하는건지... 이런 사람도 있다는건지... 어쨌든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또 뜨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맨 앞의 연작처럼 상황이 묶여있는 세 개의 단편을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 특히 여고 동창생 두명의 재회담인 '해묵은 포도주'. 이건 정말이지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나를 서늘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무엇때문이냐고? 궁금하면 한 번 읽어보시라. 역시 부끄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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