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다 눈물 범벅이 되는 감동적인 소설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을 때 절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더니 은이 언니가 그해 생일선물로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주었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은 눈물 콧물을 억지로 짜내는 내용이나 슬픔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어휘들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데도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샘에서 절로 눈물이 솟는다는 점이다. 그 눈물은 특별히 누군가 죽었다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고 해서 동정하며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작가와 깊은 공감을 나누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을 때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흘리는 눈물이다.
“아! 작은 나무…….”
이것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머릿속에 수없이 맴돈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자신이기도 한 ‘작은 나무’는 혼혈 체로키 인디언으로 누구보다 인디언으로서의 삶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꼬마이다. ‘작은 나무’의 꿈은 할아버지 웨일즈나 윌로 존처럼 멋진 인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인디언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꿈이 어린 ‘작은 나무’가 가슴에 품기에 얼마나 고단한 꿈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웨일즈나 윌로 존, 할머니 보니 비가 ‘작은 나무’에게 심어준 꿈은 삶의 진실된 의미와 뿌리가 되어주었다.
대자연, 어머니인 대지 모노라보다 더 넉넉한 품이 있을까. 자연에 감응하는 ‘작은 나무’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공존, 즉 어울림과 조화, 그리고 순리였다. ‘작은 나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배웠으며, 모노라의 품에서 진정한 행복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웨일즈가 들려준 자연의 이치는 오히려 너무나 간단해서 깨닫기 쉽지 않은 진리였다. 보통 동물을 사냥할 때는 가장 튼실한 놈을 고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웨일즈는 그것이 얼마나 몰상식한 일인지를 알려주었다. 이 책에서 그가 ‘작은 나무’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자연과의 행복한 공존과 공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혼을 아름답게 정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자연의 이치, 곧 순리를 따르는 그들의 삶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더욱 감동적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저기 있는 소나무 옆에 묻어주게. 저 소나무는 많은 씨앗들을 퍼뜨려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를 감싸주었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걸세. 내 몸이면 이년치 거름 정도는 될 거야.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윌로 존도, 웨일즈도, 보니 비도, 그리고 혼자 남겨진 ‘작은 나무’조차 죽음을 순리로 경건하게 받아들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접했다고 해야 할까, 호들갑스러운 슬픔의 몸짓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죽음 앞에 눈물이 앞을 가린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대신 ‘나는 너를 이해해’라고 마음을 표현하는 체로키 인디언들. 이해할 수 있으면 사랑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그들 앞에 백인들의 잔인한 만행조차도 무색해져 버리고 주책없이 자꾸만 흐르는 내 눈물도 부끄럽다.
새벽이 올 때마다 삶 속에 죽음 있고 죽음 속에 생명 있음을 알게 되리니. 모노라의 지혜를 배우면 체로키의 영혼을 느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