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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싱글맘, 싱글파파, 미혼모, 미혼부, 한부모, 편부모, 이혼……. 이런 단어들이 거론되는 것은 여전히 부모의 어떤 사정으로 아이가 부모 둘 중 하나와만 살아야 하는 상황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부모 한쪽의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아니라 부모가 선택한 이혼으로 한부모 가정이 되는 것은 아이에게 결핍이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여겨졌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모의 ‘이혼’은 쉬쉬하며 숨기기 바쁜 금기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고,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다. 부모와 아이는 각자의 인생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서로에게 속해 있지만(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모가 이혼을 선택하면 아이는 좋든 싫든 그로 인한 변화를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어떻게든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더 이상 애정이 남아 있지 않는 부모가 하루도 쉬지 않고 싸우면서 아이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조성하는 것보다 부모가 각자의 길을 찾아 헤어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부모가 모두 있어도 불행한 가족의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은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보따리를 싸고 싶어도 자식 생각해서 꾹꾹 눌러 참고 부부 관계를 유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 번 결혼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해야 한다는 생각은 상식의 지위를 잃었다. 결혼보다 어려운 일이 이혼이었지만, 결혼만큼 이혼도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드라마 속 설정도, 곧잘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도 그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한 사람의 아내여도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크게 주목받고, 『싱글맘 스토리』를 쓴 신현림이나 성姓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한 『즐거운 나의 집』을 쓴 공지영도 더 이상 자신이 싱글맘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은 ‘축복’이지만 이혼은 어쨌든 ‘상처’로 남지 않을까. 부부에게도, 그들 사랑의 결실인 아이에게도 극복해야 할 변화일 것이다. 스에요시 아키코의 『노란 코끼리』도 아빠가 떠나버린 집에 엄마와 두 아이가 남아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아들 요군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얼핏 유쾌한 어조로 들리지만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기계치이면서도 노란 코끼리를 닮은 자동차 운전에 도전하는 덜렁쟁이 엄마와 성인 남자 손님이 오면 아빠의 사랑이 그리워 응석부터 부리고 보는 여동생을 지켜보는 것도 요군에게는 상처로 각인된다. 물론 이야기는, 비에 젖는 아빠가 안타까워 우산을 가져다준 어린 딸에게 “우산을 빌려 가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하니 필요 없다”고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도 요군의 가족은 상처를 보듬고 행복해지리라는 희망적인 내일을 보여준다.
꼭 뭔가를 직접적으로 경험해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부모 슬하에 성장했고, 결혼했지만 아직은 사랑이 변하지 않아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 상처의 깊이를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어릴 때 피상적으로 엄마, 아빠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해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리 없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혼의 상처도 결국은 극복할 수 있는 상처라는 말도, 이혼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는 말도, 그 어떤 말도 나는 할 수가 없다. 무엇인지 정답인지, 무엇이 최선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