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언 매큐언의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첫 느낌은 불편함이다. 현실처럼 잘 포장된 그의 세계를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사실에 몸을 떨게 된다. 한 발 멀리서 뒤틀린 세계를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면 이 작가가 인간의 숨겨진 추악한 욕망을 성(性)과 폭력 같은 어두운 장치로 보여주는 데 아주 능숙하다는 사실도 함께 느껴질 것이다. 특히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를 등장시켜 성적 욕망이나 폭력적인 모습을 이성적으로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불편한 세계를 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사용한다.

「입체기하학」에서 증조부에게 물려받은 ‘방부 처리된 페니스’는 소통의 부재를 이언 매큐언 식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페니스’를 부수고 조롱하는 아내를 입체기하학으로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나’는 희열을 느낀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는 17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에게 유아처럼 양육된 남자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는 17살의 아이는 결국 어머니가 애인이 생기자 버림받고 17살의 흉내를 내면서 사회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유로움을 거부하고 결국 벽장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다시 한 살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타인─비록 부부일지라도─이나 사회와의 소통의 부재는 그 상대를 말살하거나 자신이 숨는 것으로 해결된다. 이언 매큐언의 이런 방식에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수 있으며 더 나은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받아들인다.

「가정처방」에서 여동생을 ‘엄마 아빠 놀이’를 하자고 꾀어 근친상간을 하거나 「나비」에서 ‘나비’를 볼 수 있다고 아이를 속여 추행하고 결국 죽게 만드는 주인공은 호기심으로만 가득한 추악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피를 나눈 동생이거나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소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담담한 주인공의 모습이 단지 호기심이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잔혹하고 서글프다.

이언 매큐언이 자신의 세계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없애거나’, ‘죽이거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결과는 정상적인 사회의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불편함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 같은 집에서 살면서 몸이 통통해지는 어미 쥐를 보고 공포를 느끼던 연인은 어미 쥐를 죽이고 미처 뱃속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발을 꿈틀대며 희망이 없이 죽어가는 새끼 쥐를 보았다. 낚시로 잡은 장어를 놓아주고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가려는 우리. 마지막 의식을 거친 우리는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죽이거나 놓아주는 것. 잔혹한 해결책이 싫다면 이 잔혹한 세계를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