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추리 게임 1 - 불의 도시 로마에서 초록도마뱀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지난해는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의 『율리시스 무어』에 흠뻑 빠져 있었다. 신비로운 마을 킬모어 코브와 시간의 문들은 나를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한 요소들이었다. 게다가 작가가 이야기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배치해 놓은 사소한 장치들, 이름들, 배경 묘사 하나하나까지 모두 내 맘에 꼭 들었다.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라는 이탈리아 작가는 30대로 성큼 들어서고도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내가 어떤 것에 흥분하고 두근거리고 설레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인도 일단 파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의 아기자기한 상상의 세계에서 신비한 모험의 첫발을 떼면 쿵쾅쿵쾅 뛰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꼭 아이들만 읽으라는 책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다른 해에 비해 힘든 일이 많았던 나에게 그 일들에서 조금 비껴나 딴생각에 몰두할 여유를 주어 고마워했던 작가,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의 신작이 나왔다. 처음 내 반응은 어땠을까? 역시 흥분했을까? 아니다, 그 반대다. 우선 ‘센추리 게임’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작가, 『율리시스 무어』로 재미를 보더니 ‘시간’을 또 우려먹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세상은 ‘물, 불, 흙, 공기’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을 주요 장치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끊임없이 차용되고 있는 고전적 요소들이 아닌가.) 이미 곱지 않은 첫인상을 받았으니 단번에 어머, 식상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내가 깜빡했다.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가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내 맘에 쏙 들게 끌어나가는지. 이탈리아 로마,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중국 상하이에서 각각 살았던 네 아이가 실수를 빙자한 거대한 계획에 의해 12월 29일 이탈리아 로마로 모여든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달인 2월 29일이 생일인 네 아이는 한밤중의 갑작스러운 정전의 암흑 속에서 모험의 첫발을 내딛는다. 1권에는 일단 로마 소녀 엘레트라 멜로디아가 ‘불’의 능력을 가졌음을 상징하는 단서들을 잔뜩 보여주는 것에서 만족한다. (2권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로마 = 불’의 근거로 로마 황제 네로의 이야기를 해준다. ‘물, 흙, 공기’는 어떤 도시의 아이와 어떤 역사적 사건을 긴밀하게 배치할지 무척 기대된다. 다만, 한 가지 아쉽긴 하다. 겨우 1권만 읽어놓고서 너무 섣부른지 모르겠지만, 적대 관계에 있는 캐릭터들이 너무나 살벌하고 잔인하며 ‘능력’이 출중하다. 『율리시스 무어』에서 오블리비아 뉴턴과 만프레드가 귀여웠다.

어찌 됐든 올해도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가 펼쳐놓은 이야기 그물망에서 허우적거리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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