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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나’, 소설가 박상우가 말하는 ‘근원자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나 있던가. “진정한 나를 찾고 있는 사람들, 진성한 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여기, 내가 얻은 작은 일상의 공간을 바친다”는 그의 책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를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좋고 싫음이 분명해 나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나를 규정지었다. 이건 좋아하고 저건 싫어하니 나는 이렇다든가, 또 저건 좋아하고 이건 싫어하니 나는 저렇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근원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망상자아’를 ‘나’라고 착각해 온 셈이다.
지금, 여기에서 즐거워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판단하여 되도록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좋아하는 것만 취하며 서른 해를 넘게 살아왔다. 입버릇처럼 ‘나’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려 무진장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재미 삼아 “나는 말초적인 즐거움만 찾아”라고 말하면서. 문득 그렇게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 한마디 한마디 모여 나를 후려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등골을 서늘하게 훑어 내렸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쌓여 있는 책 무더기, 홍차 잎캔들, 어젯밤 날 새도록 게임에 열중하다가 마침내 지쳐 이불 위에 내팽개쳐둔 패드, 클래식 음반들, 수틀과 색실들, 제각각인 컵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것들은 내가 지금도 좋아하거나, 한때 열광적으로 빠져들었지만 지금은 시들해진 관심사의 파편들이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어제 좋아했던 것을 오늘 싫어할 수도 있고, 어제 싫어했던 것을 오늘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바라보던 ‘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되면 또 달라질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박상우가 말하는 ‘근원자아’가 아닐까?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에는 박상우가 “내가 나를 부르는 곳, 내가 나를 만나는 곳, 내가 나를 되찾는 곳”이 단아하고 고요하며 명상적인 글과, 또한 그만큼 멋진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의 사진 찍는 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그의 글 솜씨가 더욱 뛰어나서 그런지, 그 장소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그곳에 진정 변함없이 중심을 올곧게 잡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망상자아라도 그 또한 나의 일부이니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의 망상자아에 지치면 근원자아를 찾아 나서고 싶다. 그때는 꼭 혼자여야 한다. 내가 모르는 나와 마주할 날, 아마도 나는 가장 큰 시름 속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