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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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을 읽기 시작한 것은 우선 작가인 마르크 레비에 대한 내 호의적인 시선 때문이고, 이 소설과 짝을 이루는 『밤』이 있다는 점도 꽤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나는 얼마쯤 완결성이 있는 소설 두 편이 결국 또 다른 커다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식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은 너의 오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낮』과 『밤』은 다른 소설이 결코 아니다. 그냥 네 권짜리(번역본 『낮』이 두 권이니까 『밤』도 그렇겠지!) 소설 정도 되겠다.

기대와 다르면 마음속에 배신감이 들어차게 마련이니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겨우 이야기의 절반쯤을 들여다봤을 뿐이니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갸우뚱했던 것은 과학적 사고와 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고고학자와 천체물리학자의 미스터리 모험담이 줄곧 온갖 수수께끼로 모호하고 관념적이며 일종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다. 책장은 잘 넘어갔지만, 두 과학자를 내세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고고학자 키이라와 천체물리학자 아드리안의 모험은 키이라가 에티오피아 오모 계곡의 발굴 현장에서 돌보던 고아 소년 아리에게 선물로 받은 목걸이 때문에 시작된다. 그런데 이 아리라는 소년의 정체가 수수께끼나 다름없다. 목걸이도 신비롭기 그지없다. 목걸이의 메달을 이루는 돌, 혹은 보석의 성분은 물론 생성 연대도 현대 과학 기술로는 알아낼 수 없다. 단지 강한 빛을 통과시키면 4억 년 전 지구의 하늘에서 반짝이던 무수한 별들의 위치를 보여준다는 걸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돌, 혹은 보석은 한 개뿐이 아니다. 그 파편들을 모두 모으면 4억 년 전 지구의 하늘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 키이라와 아드리안의 여정은 그것들을 찾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하나는 발견되어, 국제적인 협력체 성격의 집단에서 은밀하게 보호하고 있는데, 이 의뭉스러운 집단 또한 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또 다른 파편들이 발견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키이라와 아드리안이 모험하는 도중에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신부와 승려도(그들은 모두 종교인이다!) 도대체 핵심이 무엇인지 모를 철학적인 물음들을 쏟아낸다.

사실 키이라가 찾는 인류의 첫 사람, 아드리안이 찾는 새벽의 시작, 혹은 우주의 기원이 되는 별, 존재의 근원이나 본질처럼 너무나 광대하고 인지 가능한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주제를 다룬다는 게 처음부터 걱정스러웠다.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한껏 기대하고 있는 독자를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낮』은 바람잡이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제 『밤』을 통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의문투성이였던 그 모든 것의 비밀스러운 신비가 밝혀질 것이다. 부디 그저 신비로 두루뭉술하게 전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확실한 무엇을 제시해 주길,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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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난감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
벳시 브라운 브라운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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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있는 엄마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자녀교육서들을 훑어보다 보면 참 아쉬울 때가 많다. 대개는 아이를 닦달하여 남들보다 똑똑하게 만들거나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이 최고라고 엄마들의 생각을 조련하는 무서운 책들이 주류를 이루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소위 ‘극성 엄마’라 불리는 친구는 말한다. 자식이 없는 너는 부모의 마음을 알 리 없다고, 내 자식이 최소한 남들만큼 누리고 남들보다 돋보이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남들’을 의식하는 마음이 부모의 왜곡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되는 일 없이 아이는 홀로 자신의 꿋꿋한 줏대대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의 기(氣)는 남들 다 다니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남들 다 배우는 악기를 배우지 않는다고, 남들 다 가진 장난감을 가지지 못한다고, 남들 다 한다는 각종 학원의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것들로 인해 아이가 풀이 죽는다면 그건 어른의 때 묻은 시선을 아이에게 주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신만의 바른 가치관을 확고하게 형성하고, 자신이 믿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여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편견을 품지 않도록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이 길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자녀교육서를 찾기가 쉽지 않은 데 대해 언제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고맙고 반갑게도 내가 열렬히 감상을 남기고 있는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벳시 브라운 브라운의 『아이의 난감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육아의 모든 상황에서(다소 시시콜콜하다 싶은 부분까지 모두!)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 줘야 아이가 정서적, 지적으로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부모가 반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 아이의 모습은 그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무의식적인 학습을 통해 아이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론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이런 책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읽지 않다가 선물할 일이 있을 때 조금은 의무감으로 하품을 하며 먼저 읽어보는 책인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책장을 넘겼다. 세쌍둥이를 키웠고 오랫동안 육아 상담도 해온 베테랑 작가답게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예기치 않은 아이의 말과 행동들 때문에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게 마련인 당황스러운 육아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아이와의 대화’가 가장 기본이라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대체로 큰마음 먹은 후 아이를 앉혀두고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도 끝내는 부모의 일방적인 잔소리나 훈계가 되기 쉽다. 벳시는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와 대화하는 요령에 대해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 내용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을 치우라는 것이다. 벳시는 이렇게 묻고 대답한다. “상사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 당신과 꾸짖는 사람 사이에 늘 책상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적이 있나요? 그 장애물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즉 친밀감과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완충지대인 셈이죠.” 커피 탁자나 식탁, 화장실 문뿐만 아니라 전화 통화나 설거지, 빨래 개키기, TV 소음도 모두 아이와의 진지한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나도 맏이로 자라서 더더욱 고마웠던 것은 “큰아이를 옹호하라”고 조언해 준 부분이다. 동생이 태어나면 맏이는 자신이 가장 바라는 부모의 관심을 어쩔 수 없이 빼앗기고, 점점 엄마와 아빠를 차지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든다. 그래서 벳시는 이렇게 조언한다. “맏이들은 동생들보다 책임질 일이 많습니다. 그런 책임감을 상쇄할 특권을 주세요. (…) 너는 맏이니까 그 정도는 알아야지!”라고 말하지 마세요. 대체로 맏이가 더 잘 알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많은 걸 참아야 합니다. (…) “동생은 아기니까 어쩔 수 없잖니. 아기가 뭘 알겠어?”라며 동생을 변호하지 마세요. 설사 그렇더라도 이렇게 말하면 동생 편만 들고 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 항상 동생을 데리고 놀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때로는 맏이가 자기 또래하고만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 내가 언제나 속상했던 점을 이렇게 콕 짚어주다니! 그건 어른이 된 지금도 작은 상처로 지속되고 있다. “나는 누나니까……”라는 말이 늘 내 마음을 묵직하게 누른다.

또 아이에게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부분은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까지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강력하다고 믿습니다. 사과만 하면 잘못을 면하고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앞세운다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게 아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그 참뜻을 이해합니다. ‘미안합니다’는 마음 깊이 후회하고 뉘우쳤을 때 표현하는 말입니다.” 부모는 대개 친구나 형제와 싸우면 화해시키려고 “미안해”라고 말하라고 강요하는데, 벳시는 그래서 더욱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이더러 억지로 미안하다고 말하게 하는 건 사실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억지로 사과하게 만들면 아이는 남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아이의 떼쓰기, 말대꾸, 고자질, 거짓말, 편식, 욕, 코 파기, 자위행위 등에 대해 실제로 적용해 볼 만한 지침들을 제시해 준다. 또한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죽었을 때 아이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히 대답하는 요령이나, 부모의 이혼은 무조건 상처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덜 상처받도록 도와주는 방법까지 조언한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건강하고 바른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아이가 자신만의 바르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형성하여,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예의 바르게 자라고, 자기 가치관에 따라 남에게 휘둘리는 일 없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행동하고 또한 자기 행동을 책임질 줄 알게 된다면 이보다 더 빛나고 찬란한 성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코웃음 칠 것인가? 그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결국은 우리 아이들을 살게 하는 것은, ‘낙오자’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낙인찍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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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조이 슬링어 지음, 김이선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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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대부분 복수할 대상을 가지고 있고 복수를 꿈꾼다. 다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교육된 이성이 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복수의 기회는 찾아온다. 그 기회들 중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도 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시간이 흘러 복수에 대한 욕망이 시들해지고 자신의 삶을 정리할 때가 가장 좋은 기회다. 이때 무상하게 늙어 버린 사람은 고민한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복수의 욕망을 오랜 세월 속에 지워버리고 조용히 삶을 마감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복수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릴 것인가. 하지만 노인들이 복수를 계획하는 것은 어쩐지 애처롭고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가 된다. 조이 슬링어의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는 이처럼 씁쓸하고 진한 맛을 가진 노인의 이야기다.

발렌타인은 청과 도매상으로 일하다 은퇴한 여든 한 살의 노인이다. 그는 아내를 죽게 만든 망나니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데 망나니 한 놈이 우연하게 죽어 버린다. 발렌타인은 복수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 수도원에 사는 다른 늙은 노인들은 죽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손님들이라 불릴 뿐, 이런 곳에서 바쁘고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발렌타인이 다른 노인들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복수에 관한 발렌타인의 이야기는 소문을 거쳐 과장되고 전설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도원 집행 위원회는 세계의 악한 사람들을 처벌해 나간다. 하지만 스스로 전문가들임을 자처하고 거대한 활동을 하는 노인들이지만 말 그대로 노인들의 모임일 뿐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죽어 나갈 뿐이다.

발렌타인의 이야기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지만 복수라는 행위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아내를 죽게 만들고도 망나니 1, 2, 3과 같이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로 등장한 복수의 대상에게 경의를! 이처럼 망나니라는 복수의 대상은 조이 슬링어의 발렌타인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이는 더 큰 세상을 향해 통쾌한 복수를 감행하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유쾌한 이야기 속에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은 그 세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노인들의 분주하고 애처로운 모습 덕분이다. 수도원 집행 위원회라는 작은 집단에 소속되면서 자신들을 버린 세상 속과 같은 곳에 다시 편입되었다는 순간의 안도감은 이들이 원하는 복수라는 행위와 묘하게 대조되며 대비를 이룬다. 발렌타인과 그의 동료 노인들은 자신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세상에 대한 복수보다는 그 세상 속에서 일부로 다시 존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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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라이프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Life 라이프 1
이이지마 나미 지음, 오오에 히로유키 사진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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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지마 나미가 영화 「카모메 식당」(원작 무레 요우코의 소설 「카모메 식당」)과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원작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 식당」)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데 마음이 사정없이 끌려서 나답지 않게 요리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실용서는 거의 사지 않고(사지 않는다는 말은 곧 읽지 않는다는 말! 아, 손뜨개 책은 몇 권 사서 봤구나!), 더더구나 먹는 일이라면 모를까, 요리 자체에는 도통 취미도, 소질도 없는 터라 요리책을 들춰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정겹고 따뜻한 이이지마 나미의 음식에 반해서 『라이프』를 펼쳐 들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참 난감했다. 도대체 그야말로 요리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책은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빠짐없이 읽어야 한다는 관성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이보다 더한 난제는 없다.

나는 처음에는, 집 안에 있는 책들 중 두 번 읽지 않은 책은 카탈로그뿐이라 카탈로그까지 꼼꼼히 읽었다고 말한 앤 패디먼(‘카탈로그 독서’, 『서재 결혼시키기』)의 강박증으로 ‘이 책에 나오는 조미료에 대하여’와 이토이 시게사토의 ‘첫머리에, 잠깐’부터 한 글자라도 빠뜨릴 새라 꼼꼼하게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다니엘 페낙(‘무엇을 어떻게 읽든…’, 『소설처럼』)을 따라 “건너뛰며 읽을 권리”와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를 마음껏 누렸다. 소담한 음식 사진들이 눈이 아니라 입으로 먼저 넘어갈 것 같은데 글자의 순서 따위를 지킬 겨를이 없었다. 일단 『라이프』에 담긴 요리들을 주욱 구경하고, 특히 맛있어 보여서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음식들을 다시 구경하고 레시피를 여러 번 낭독했다.

왠지 요리책이니까 그 레시피대로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오기가 불끈 솟기는 했지만, 음식은 좋아해도 요리는 좀처럼 즐기지 않으니 그에게 부탁해야겠다. 이이지마 나미의 요리들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오하기! 『라이프』 속의 음식들은 모두 평범한 일본 가정에서 매일 먹는 것들을 이이지마 나미식으로 요리한 것이라고 하는데, ‘가정식’이라는 소박한 말에 담긴 어감은 나라를 초월하여 엄마의 손맛을 떠올리게 할 만큼 따스하고 친밀하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매혹이나 거부감과는 별개로 말이다. “할머니의”라는 관형격이 붙은 ‘오하기’도 그렇다. 오하기는 낯선 음식이지만, 찹쌀과 쌀을 섞어 지은 밥으로 조물조물 경단을 만들고 또 조물조물 팥고물로 정성스레 에워싸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끝을 상상하면 낯설었던 경계심은 어느새 사라져 그리워진다.

『라이프』는 분명 이이지마 나미의 레시피만으로도 충분한 요리책이다! 요리마다 그 음식을 먹을 최선의 상황을 정답게 묘사하고 있고, 일본 작가들의 짧은 에세이 4편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에세이들은 요리의 풍미를 더해 주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단골이던 인도 카레집의 주인들이 우연치 않게 연이어 죽었다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제외하고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작가들이다. 그런 줄 알았는데, 핫케이크에 대한 집착을 재미있게 이야기한(핫케이크는 팬케이크와 다르다고, 이상적인 핫케이크를 줘!) 다니카와 슌타로는 『이십 억 광년의 고독』을 썼다. 이토이 시게사토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소울 메이트』를 공저했는데, 내가 반한 오하기에 관한 에세이(밥이든 간식이든 상관없다!)를 썼다. 양배추롤에 대한 추억을 잔잔하게 풀어놓은 시게마츠 기요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꽤 많은 청소년 소설들이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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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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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가 되었다. 풍부한 자원들과 값싼 노동력을 가진 아프리카는 유럽 여러 나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소말리아의 경우 공식적으로 식민지화 된 적은 없지만 영국과 이탈리아의 패권 다툼에 희생양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어진 소말리아의 비극은 아직도 이어지는 내전과 해적들의 악명으로 유명해진 슬픈 땅이 되었다.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의 작가 나디파 모파헤드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다. 자신의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아버지의 삶과 여정을 기록한 이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나라 선대 사람들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덴의 뒷골목에서 자란 소년 자마, 아버지는 어린 여동생이 돈을 벌기 위해 오래 전에 떠나 버렸고 어머니 암바로는 12시간을 일하고 있어 자마를 보살펴 주지 못한다. 병이 든 암바로는 약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고 자마는 아버지를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유럽에 의해 점령당한 아프리카 대륙은 어린 소년이 헤쳐 나가기는 너무 험한 곳이었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며 노숙을 하고 병에 걸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청년으로 자란다. 아프리카의 참혹한 운명을 상징하듯 자신의 동족을 향해서도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용병인 애스카리가 된 자마는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뿐,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던 아버지는 백인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버지와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자마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했다. 단지 하룻밤을 보낸 부부였지만 아이가 생기게 되고 자마는 자신이 그렇게 찾았던 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한다. 아프리카를 떠난 자마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다시 아프리카로 향한다.

소말리아의 슬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악명 높은 해적 뿐 아니라 군부의 이해관계가 얽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내전 때문에 자마의 삶을 살게 되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총을 들고 살아간다. 오히려 자마보다 더 비극적인 삶을 사는 아이들, 자신의 키만 한 총을 익숙하게 다루는 아이들이 현재 소말리아 아이들의 삶이다. 어른의 끝없는 욕심이 아이들마저 서로 죽이게 만든다. 나디파 모파헤드의 다음 이야기는 내전 중에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여인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국의 아픔을 처참한 마음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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