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기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다.
무엇에 미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 자신도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나는 너무나 민감해서 현실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나는 그 점을 알고있기에 그 광기를 어쩔수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미치면 미칠수록 내가 설정한 목표를
더 잘 달성하게 된다.
광기는 각자의 머리 속에 숨어있는 사나운 사자이다.
그 사자를 죽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의 정체를 알고 그것을 길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순치된 당신의 사자는 어떤 선생,어떤 학교,어떤 마약,
어떤 종교보다도 당신의 삶을 훨씬 더 높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광기가 힘의 원천이 된다고해서 그것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위험하다.
때때로 사자는 극도로 흥분하여 자기를 길들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광기' 전문
2.
신
신은 존재하는가?
신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존재다.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정의된 바대로
신은 어디에나 있고,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신은 자기가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 전문
3.
유토피아 이야기:오로빌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
오로빌(오로르빌)의 모험은 인간이 시도한
가장 흥미로운 이상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1968년 벵골 철학자 스리 오로벵도와
프랑스 여루 철학자 미라 알파사(<어머니>라 불리었음)는
그곳에 이상형 마을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곳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라로부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절대적 이상향을 추구하던 유럽 인들이 오로빌로 모여들었다.
남녀 모두 풍차, 수공업 공장, 배수로, 정보 센터, 벽돌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 작물을 심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영적 경험을 세세히 기록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어머니>를 신으로 받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영예를 사양했다.
그러나 스리 오로벵도가 죽고 나자,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힘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라 알파사는 오래지 않아 숭배자들의 요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들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살아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죽은 여신이라도 되라고 강요했다. 미라 알파사는 스스로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미라 알파사는 억지 춘향으로 여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머니>는 아주 쇠약해 보였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과 숭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폭로하려 하자, 숭배자들은 그녀의 말을 막고 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는 자기를 숭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매일매일 가하는 고통 때문에
점점 쭈그렁 노파가 되어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자기의 옛 친구들에게 은밀한
전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은 여신, 즉 더 쉽게 숭배할 수 있는 여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원 요청은 헛된 것이 되었다.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들은 즉각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최후의 통신 방법으로, 그녀는 갇혀있던 방 안에서 자기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어머니>는 1973년에 죽었다. 십중 팔구는 치사량의 비소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오로빌 공동체는 그녀를 여신으로 예우하면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다.
이상 세계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그들은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이 벌인 많은 소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때 가장 야심만만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실험의 하나였던 오르빌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유토피아 이야기:오로빌'전문
4.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곰덫을 사용한다.
그것은 커다란 돌덩어리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 놓은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곰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하고 다가와 발길질을 하면서 돌덩어리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돌덩이가 진자 운동을 한다.
앞으로 밀려갔던 돌덩이가 뒤로 되돌아올 때마다 곰을 때린다.
곰이 돌덩이를 더 세게 치면 칠수록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곰을 후려친다. 마침내 곰은 나가 떨어진다.
곰은 '이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할 줄 모른다.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더욱 안달을 할 뿐이다.
'저 놈이 나를 때렸겠다. 그렇다면 본때를 보여줘야지!'라고
곰은 생각한다.그러면서 곰의 분노는 점점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곰이 돌덩이 때리기를 중단하면 돌덩이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곰은 돌덩이가 일단 멈추고 나면 그게 밧줄에
걸려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 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면 남은 일은 이빨로 밧줄을 잘라 돌덩이를
떨어뜨린 다음 거기에 묻은 꿀을 핥는 일뿐이다.
-'인디언의 곰 덫' 전문
5.
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면서 위안이 찾아온다.
그것은 왜 그런가?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패배는 방향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다.
-'승리'부분
6.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옛날에는 정보를 대중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단순하고 노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체제에 도전하는 서적들을 간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검열의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정보를 차단하지 않고 정보를 범람시킴으로써
검열을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오히려 한층 효과적이다.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무의미한 정보들 속에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텔레비젼 채널이 늘어나고,프랑스에서만도 한달에 수천종의 소설이
쏟아져 나오며 온갖 종류의 비슷한 음악들이 어느곳에나 퍼져 나가는
상황에서 혁신적인 움직임이란 나타날 수 없다.
설령 새로운 움직임이 출현한다해도
대량 생산되는 정보들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결국 이 거대한 진창 속에서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상품들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상품들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마음놓고 소비한다. 텔레비젼에서는 게임과 쇼,
문학에서는 자전적인 사랑이야기,
음악에서는 '수려한 육체를 지닌'사람들이
단순한 선율에 담아 제시하는 사랑노래들이 판친다.
과잉은 창조를 익사시키고 비평은 마땅히 이 예술적 범람을
걸러낼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홍수 앞에
주눅이 들어버린다. 이모든 것이 빚어내는 결과는 자명하다.
기성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음에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