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아이작 B. 싱어 지음, 황명걸 옮김 / 두레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그가 1978년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타임지는 '현존하는 최대의 19세기 작가'라고 했단다. 내가 20세기에 만난 니체가 '21세기를 살았던 19세기의 사람'이라면, 21세기에 만난 아이작 싱어는 '19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를 위한 이야기와 어른을 위한 이야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작가는 이 이야기를 '이 세상의 모든 슐레밀에게, 그리고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무구한 가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전쟁과 잔인한 박해로 인해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바친다고 한다. 정말 이 책을 바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사어가 되다시피한 이디시어로 작품을 쓰길 고집하는 유대인 미국작가의 스물 두편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두가지를 인정하게 된다. 하나는 그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에 뒤쳐지는 것들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특히 '첫번째 이야기'에 포함된 여덞편의 이야기가 와닿았는데, 그것은 이 책의 제목하고도 잘 맞아떨어진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각각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로 묶여져있긴 하지만 그 관련성이 희박한 반면 첫번째 이야기에 실린 여덞편의 이야기들은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있어서 마치 정말 켈름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접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독립된 이야기로서 갖는 재미도 갖추고 있다. 또 이 여덞편의 이야기들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나머지가 철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모두가 행복했다는 결말과 따뜻함이 너무 좋다. 코메디 소재에 어울릴듯한 많은 바보들의 이야기가 이처럼 다가오다니...이 책에 쏟아진 수많은 찬사는 거짓이 아니었다.

 

합리적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우스운 이야기에나 나올법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에 나도 한번쯤 가서 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바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된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로 어떤 가치판단을 종용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남들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자신들의 우월함을 확인하든, 옛날에는 바보도 미친사람도 같이 살았다고 하는 말처럼 이들 모두를 사랑하는 작가를 보든, 우리의 현명함이 과연 현명함인지 한번쯤 의심을 갖든,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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