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모두 다섯 편의 짧막한 글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생각해 볼 많은 문제들을 던지고 있다. 얇은 책 두께에 비해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전쟁과 파시즘,언론,종교,이민과 이주,관용에 대한 문제들이다. 내가 약간 놀란 것은 조원들의 '모르겠다' 식의 반응들이었는데, 에코를 처음 접하기에는 조금 어려웠나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나 '장미의 이름' 정도가 적당했을까? 지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유희로서 글쓰기나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반어법 등이 이 책의 주제에는 잘 묻어나지 않아서 약간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서문을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소담출판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에는 포함되어있다.) 조지 오웰의 서문에도 잘 나타나있지만 이 책, 특히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볼테르의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또 '자살하는 사람들 앞에서 인명의 소중함을 호소하는 것은 전쟁이 인류의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철저하게 위선'이라는 러셀의 말도 떠오른다. 원형 파시즘의 공통된 특징 14가지를 읽으면서는 '우리안의 파시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그런 제목의 책이 있었고, 시간이 된다면 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책을 부르는 경우라 하겠다. 14가지 특징을 보면서 내 안에 우리 사회 안에 여전히 그런 속성들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대개가 그렇다. 밝히고 싶지 않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부분들. 나는 이게 우리 시대에서 윤리와 도덕이 차지하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관용에 대해서 이 책은 관용이 선천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이상해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관용한다는 것은 이미 관용이 아니며, 이상해보인다는 말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가치를 포함한 말이 된다. 에코는 이 점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교육에 희망을 건다.  

이 책을 읽고 '자연스럽다'는 말이 꼭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단순한 사실이 이 책을 읽고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다. 지금까지 자본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비단 윤리뿐이 아니지만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법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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